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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할 수 있을까

by 양해연


“돈 번다고 유세냐.


좋다 이거야. 나는 인정해 줬잖아. 우리가 부부고, 아이가 있으니 누구든 돈 버는 거는 당연한 거잖아. 그치만 나는 그 행위조차 한 번도 당연하게 여긴 적 없어. 좋은 일이든 싫은 일이든 바깥일이란 게 쉽지 않잖아. 당신도 힘들게 일하고 있잖아. 새벽이고 밤이고, 불평불만도 없이 열심히 하고 있는 거 알아. 그래서 당연한 것도 당연하다고 하지 않고 힘들지 고생했지 해줬잖아.


그렇다고 내가 주로 돌보는 가사나 육아가 당연해지는 건 아니야. 또한 내가 모든 살림을 잘 해야 하는 것도 아니야. 정확하게, 너만 돈 벌러 나가게 된 이후로 가사나 육아, 솔직히 온전히 내 몫인 양 여기는 네 그 태도가, 당연하다고 여기지 않았던 너의 일도 뻔하게 모두가 똑같이 힘든 일로. 그냥 닥치고 해야 하는 일이 되게 만들어. 이어서 하나도 감사하지도 않고 고맙지도 않다고.


나도 돈 많이 벌 수 있어. 너는 새벽부터 일어나서 일하지? 나는 늦게 나가서 새벽까지 일하다 올수 있어. 솔직히 나는 아이 낳고 나서는 바깥일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더라. 심지어 이 바닥 벗어나서도 경기든 서울이든 어디든 가서 잘 할 자신 있다고.

너 있잖아, 한 번이라도 시안이 아프니까 오늘 일 어떡하지 이런 걱정 해본 적 있어? 없지? 그거 다 내 덕분이야. 나는 고작 파트타임으로 강의일 하면서도 그런 걱정 해본 적이 수도 없이 많아. 아니, 항상이었어.


한 번이라도 너는 일하는 중간에 애가 아프니까 가봐야 될 것 같다고, 혹은 일가기 전에 애기가 아파서 오늘 휴가 써야 될 것 같다고 해본 적 있냐고. 없잖아. 그거 다 내 덕분이라고. 내가 결국 어떻게 했냐. 더 이상은 원장님한테 편의 부탁하는 경우는 내가 못하겠으니까 그 몇 시간짜리 학원 일도 그만뒀잖아.


이제 나는 평일에 누구한테도 손 안 벌리고 내가 온전히 시안이 돌볼 수 있게 되었어. 너는 내가 일을 하든 말든, 아이가 아프든 말든, 그대로지. 그거 다 내 덕분이라고. 그런데 그거 알아? 엄마니까, 이런 양육 당연한 거야. 생색내고 싶지 않다고. 그런데 내가 당신 일하는 거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다고 한 것처럼, 나도 당연하지만 당연한 거 아니야. 당신이 애써서 일하고 돈 벌어다 주는 것처럼, 나도 집에서 고군분투하면서 아이 양육하고, 내 시간 갈아서 그나마 살림도 하는 거야.


왜 자꾸 내 업적을 돌아보면서 생색내게 만드냐. 당신 진짜, 내가 양육은 포기 못해도, 집안일 엉망인 거는 자신 있는데 진짜 막장 집꼬라지가 뭔지 보여줄까? 나 냅두면 오후 네시까지 자고 일어나서 밥도 안 먹고 다시 밤에 잘 자신 있는 사람이야. 너- 마음가짐 똑바로 해 진짜. 앞으로 나에 대한 생각이며 말, 행동 똑바로 하겠다는 대답 없으면 여기서 끝이야.


어디서 유세야 유세가. ** 진짜.”


한 해 먹은 나이만큼 시간이 빨리 가서 설이 설인지 추석인지 모르겠던 을사년의 구정 전날에 간 시댁의 주방 앞에서 나는 남편에게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평소에 이런 따박따박 어조와는 거리가 먼 내가 큰소리를 내자 의외로, 남편은 꿀 먹은 벙어리마냥, 그렇지만 동조는 할 수 없다는 무표정으로 후라이팬 앞에 서있었다. 그리고 반대로 평소에는 표독스럽게 할 말 없는 말 다 하는 동서가 그날따라 울면서 나를 말리는 건지 뭐라고 하는데, 어처구니가 없을 뿐 들리지도 않았다.


눈치 없는 도련님(나보다 나이 많은 결혼한 시동생인데 죽었다 깨나도 서방님이라고 할 수 없어 여태 도련님이라고 하는)은 후라이팬 앞에서 쓸데없이 군고구마를 열심히 굽고 있었다. 무엇보다 이 모든 걸 멀지 않은 곳에서 시어머니와 시아버지도 보고 계셨다. 시부모님은 둘째 치고 이미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말들이 그날만큼은 아이들 앞이라 다툼을 참아야 한다는 내 철칙을 산산이 부수고 있었다. 그런데 신기한 건 그런 말을, 그 모든 사람들 앞에서, 뒷목도 잡지 않고, 울먹이지도 않고, 해내고야 마는 나 자신이 기특해서 꽤나 만족스럽기까지 한 것이었다.


꾸준히 모으고만 있었던 그 말들을 둘만 있는 장소도 아닌 설날의 시댁에서 해버리고 나니 더 극적이고 잠자고 있는 곰의 위력을 보여준 것 같아 몸이 떨리면서도 이내 싫지도 않았다. 그런 묘한 쾌재도 잠시, 누구 하나 말리지 못할 정도의 내 발악으로 모조리 싸해진 주방을 박차고 나왔다. 그제야 얼굴 위로 올라오는 열과 피를 식히고자 화장실로 갔다. 말한 건 좋은데, 이 자리 이 사람들 앞에서라니. 시부모님께 죄송한 건 사실이었다.


그런데 마지막에 남편은 끝내 제대로 하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주제에 끝장을 보잔 소린가. 일단 나가서 아무렇지 않게는 못하겠는데, 그럼 짐을 싸서 아이와 함께 집으로 가버려야 하나. 이런저런 생각을 이어가던 중 문밖으로 남편을 나무라는 시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정확한 대사를 똑바로 들을 순 없었지만 그를 나지막이 타이르고 있음이 확실했다.


그래, 여기서 짐을 싸서 나가면 그 이후 관계는 걷잡을 수가 없으니.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여기서 해결을 하고 나가자. 겨우 한김을 식히고, 화장실 문을 나섰는데 또 눈치 없는 도련님이 군고구마를 쓸데없이 노릇노릇하게 구워 식탁 위에 놓고 있었다. 그리고 아버님은 어디서 사 오셨는지 추어탕을 한 김 끓여서 식탁에 앉은 한 사람당 한 그릇씩 놓고 계셨다. 큰소리 내고서는 화장실서 한참을 있다가 나온 나는 뭐든 안 먹을 작정이었다. 그런데 아버님이 나를 보자마자 추어탕 한 숟갈 먹으라며 앉으라고 하셨다.


아버님이 주신 추어탕이라면 먹는 시늉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마지못해 앉았다. 내 자세는 꼿꼿이 정자세였지만 정자세에서 발하는 시선은 그 누구의 눈동자에도 두지 않았다. 내 자리 위에도 아무 말 없이 추어탕 한 사발이 주어졌는데, 그 와중에도 추어탕이랑 군고구마에서 너무 맛있는 냄새가 났다. 그러나 먹고 싶다는 생각은 아무래도 들지 않았다. 자꾸만 한 수저 뜨라는 아버님의 성화에 겨우 추어탕 한 숟가락을 떴는데 그 순간, 고개가 밥그릇 가까이로 떨구어지고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추어탕 한 숟갈은 커녕 뭐든 먹을 수가 없었다. 이제 와서 눈물이라니. 이건 좀 아니잖아. 근데 완벽한 시나리오다. 큰소리였고 예의도 없었지만, 할 말은 했고, 이때 눈물이라니 역시 나란 사람은 완전한 악인이 아니라는 걸 증명해 주는 것 같잖아.라는 생각도 잠시, 이내 일그러지는 얼굴과, 터져 나오는 눈물과, 흐느낌이란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고개를 떨군 채 찡그리며 흐느끼다가,

눈을 떴다.



나 분명히 엄청 울고 있었는데, 떠보니 맺혀있는 건 고작 왼쪽 눈 끄트머리 한 방울이었고, 얼굴은 꿈속 그대로 흐느끼고 있었다. 차라리 눈물범벅이라도 돼 있지, 이토록 흐느끼다 깼는데 눈물 한 방울이 뭐람. 그것도 흐르는 것도 아니고 애써 겨우 맺혀 있는 정도라니. 분명 악몽인 것은 분명한데, 완전히 악몽이라고 할 수 없었다. 내가 살면서 그토록 성을 내 본 적이 있었나. 하더라도 그렇게 또박또박 눈을 부라리며 해본 적이 있었는가 말이다. 기껏해야 단숨에 내뱉을 수 있는 한 문장 정도의 썽이 끝이지 않았는가.

어쩐지. 너무 잘한다 했다. 그런 와중에도 군고구마와 추어탕에서 너무 꿀이 뚝뚝 떨어지더라니. 너무 꿈이잖아.


잠에서 깨서도 찡그린 얼굴을 온전한 상태로 되돌리는 데는 누워서도 한참이 걸렸다. 꿈 속인지라 울어봤자 실제 기껏해야 몇 초를 울었겠냐마는 눈물을 머금고 울면서 마지막으로 보았던 추어탕 그릇 위에서 부들거리던 수저가 아른거렸다. 아무리 그래도 거기서 그렇게 폭발하는 며느리에게 아무 말씀 않고 조용히 아들을 타이르는 시어머니와, 말없이 추어탕을 건네는 시아버지의 손길만큼은 결코 꿈이 아닌 듯했다.


눈물의 이유를 조금은 헤아릴 수 있었고 끝내는 마저 다 헤아릴 수가 없었다. 그러다 이내 정신이 들었는데 내가 ‘참말이나 억울한 아이’처럼 울고 있다는 걸 유체이탈한 듯 볼 수 있었다. 이런 식으로 울어 본 게 얼마 만인가. 솔직히 꿈속에서 그 찰나에 터져 나오는 눈물에 어처구니가 없으면서도 말로는 차마 다 하지 표현할 수 없었던 모든 것들이 씻겨 내려가는 기분을 느꼈다. 이 기분이야말로 오랜만이어서 마치 방금의 눈물이란 내 것이 아닌 것 같았다.


아무도 울지 않는 때에 시도 때도 없이 고여버리는 감동의 눈물에는 취약해져 있지만, 슬픔이나 억울함 같은 내면의 먼지들을 눈물로 쏟아내는 일에는 스스로 관대하지 않은 탓인 줄만 알았다. 그러고 보니 내가 잃어버린 건 ‘말을 하는 것’ 뿐만이 아니었다.

일어나 보니 나는 말하는 것도, 속시원히 우는 법도 잊고 사는 그런 어른이 되어 있었다.



* (거의 다 사실이긴 한데) 약간의 허구를 가미한 에세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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