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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D로 대통합

by 양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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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의 우리가 떠오르는 장소에 가거나, 추억을 생각나게 하는 사람을 봤을 때 드는 아련함을 두고 나는 자주 꿈을 꾼 것 같다고 했고, 지헌은 전생 같다고 했다. 정확히 아이를 낳고 기른 다음부터 우린 꿈과 전생이 많아졌다. 그전까지는 엄연한 기억이었던 것들이, 꿈이 되고 전생이 되었다.


지난 추억이 꿈이 되고 전생이 된 건, 그만큼 현생과는 거리가 멀어진 걸 뜻했다. 그런데 가끔 꿈과 전생이 현생이 될 때가 있다. 과거의 스타가 최근 무대에서 공연을 펼쳐줄 때이다. 15살이었던 꼬마 셋이 30대가 돼서는 한자리에 모이는 일이 20대 만큼이나도 쉽지 않은 것처럼. 우리가 흠모했던 스타가 그룹일 경우 특히나 한자리에 모이는 무대를 만들기란 얼마나 어려울까. 지헌, 우희, 해연, 혜성이었던 관계가 혜성이 빠진 채 3인 체제가 된 것처럼, 스타들 역시 처음의 모습 그대로를 재현하는 게 불가한 경우도 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음악을 만들고 무대를 보여주는 스타들이 있는데, 그중의 한 명이 GD라고 불리는 권지용이다. ‘지Dragon’이라 불리는 권지용을 두고 한 때 나는, 그의 팬이었던 우희에게 G드래곤이 뭐냐며 '이름도 유난'이라고 눈을 흘겼다. 이어 ‘탑이 짱’이라는 말도 놓치지 않았다. 지용의 용을 드래곤으로 바꿔서 칭하는 게 유치해서 나는 끝까지 그를 권지용이라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유치를 그의 '철학'으로 인정하기 시작한 건 정확히 2023년부터였으니 (그를 처음 알았던 2006년을 기점으로) 꼬박 17년이 걸린 셈이다. 학교의 운동회나 회사의 야유회 같은 곳에서 시작을 알리는 노래의 멜로디가 ‘삐딱하게’라는 것을 알았을 때이었다. 그렇게 넘의 행사에서 열렬히 메아리치는 삐딱하게는, 이어폰이 귀에 직접 때려주는 품질 좋은 멜로디와 비교가 안 되는 짜릿함이 있었다.


운동장 음악이 들릴 정도의 가까운 학교에서 운동회가 열리고, 내가 베란다에 빨래를 널 무렵의 날씨였으니 따가운 여름은 갓 지난 햇살 좋은 가을 아침이었을 거다. 얼굴도 모르지만 듣기만으로도 지루한 교장선생님의 말씀이 끝났고, 조만간 GD '삐딱하게'의 전주가 흘렀다. 정확히 첫마디가 끝나기 전에 학생들이 폭발적인 고함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그 소리에 설레는 건 분명 그들 뿐은 아니었다. 길 건너 아파트 12층 아줌마는 빨래를 널다 말고 삐딱하게 전주에 한번 동공이 확장되고, 삐딱하게에 반응하는 너희들의 함성에 두 번 심장이 흔들렸다.


이만큼 지디노래는 선생과 제자들, 길 건너 아파트에서 빨래 너는 아줌마까지도 알 만큼 익숙했다는 것인데. 찾아보니 삐딱하게 발매 연도가 2013년이었다. 나는 정확히 10년 만에 삐딱하게의 매력에 빠진 셈이었다.




2

“언니, 있잖아. 내가 지드래곤 삐딱하게를 좋아하거든? 요즘엔 일종의 노동요야. 설거지할 때마다 틀어놓는 노래들이 있는데 그중에 일 순위가 이거거든. 근데 내가 이걸 얼마나 많이 듣는지는 몰랐는데 어느 날 시안이가 혼자 이러더라?”

'영원한 건- 절대 없어- 결국에 넌- 변했지- (...) 오늘 밤은, 삐딱하게'


“지드래곤이 대단하긴 하다. 유진이도 지디를 알더라? 너는 삐딱하게지, 나는 그 뭐더라?

‘나도 어디서 꿇리지 않아-’ 이거 뭐지?”


“아, 하트브레이커-!”


“어 그거, 나도 모르게 그 노랠 몇 번 틀었나 봐. 그런데 유진이가 듣더니 대뜸 이 사람 누구녜. 그다음에 GD를 알려주고 유명한 노래들 몇 개 같이 들었는데, 이후에 빅뱅 노래들을 좋아하더라고.

특히 지디는 아예 오빠가 됐어.”


“삼촌 아니고, 오빠라고? 저기 언니. 지디, 언니랑 동갑이잖아. 카카카”


“어, 맞아(...)”




3

70대 시아버지, 60대 시어머니, 30대 나, 10살 시조카, 7살 아들, 이렇게 5인이 탄 차 안에는 엿가락 소리가 튀어나올 것 같은 신명 나는 고속도로 트로트가 쉴 새 없이 흘러나왔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왜 맨날 이런 노래만 들어?”


속으로 ‘아, 다른 노래 듣고 싶다-.’고 하고 있었는데, 5명 중 최연소 어린이가 대뜸 그렇게 말했다. 시부모님께는 슬쩍 죄송하지만, 현대판 벌거벗은 임금님 이야기를 눈앞에서 본 것 같았다.

이어 옆에 있는 10살 조카가 거들었다.


“맞아, 큰엄마. 지다 노래 틀어주세요. 파고파고, 지디노래 파고파고 나 이거 제일 좋아.”


‘파고파고가 뭐지? 지디 노래 중에 파고파고가 있었나.’ 가만 생각해 보니 파고파고는 조카가 작년 발표해서 한창 유행했던 GD의 노래 “Power” 가사를 들리는 대로 말한 거였다. 시부모님께는 송구하면서도, 말이 나온 김에 한번 바꿔보자며, 나는 슬쩍 아이들 뜻에 내 노래를 묻기로 했다. 그렇게 70대부터 7살까지 모인 차 안은 한동안 그의 노래로 꽉 찼다. 이 정도면 나름 Home sweet home이지 싶었다.




4

그때도 잘나갔고, 지금도 잘나가주는 스타들을 보면 어느덧 이제 같이 늙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실상은 스타의 외형과 분위기는 그대로, 나만 노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지긴 하지만, 그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여전히 라떼의 에너지를 그대로 뿜어주는 그들을 보면서 마치 음악과, 무대와, 스타를 중심으로 시간을 공유하는 느낌이 들어서다.그런 의미에서 지난겨울 일본 오사카 돔에서 열린 2024 MAMA AWARDS에서 GD무대는 특별했다. 나는 마치,

그가 살아 돌아온 것 같았다.


'장난 아니라'며, 일단 한번 앉아서 보라는 남편의 말에 못이겨 소파 앞에 시큰둥하게 앉은 나였다. GD의 무대를 보며 생각지도 못하게 두 눈이 시큰거리기까지 했던 건 어린 지용을 보는 큰 지용의 뒷모습이었다. GD는 살아 돌아왔을 뿐만 아니라 이렇게나 건재하다고 보여주는 것 같았다. 이렇게나 성장한 (구 한국 나이) 서른여덟 살 지용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았던 걸까. 그리고 '어린 자신을 보는 현재의 자신'을 느끼는 사람들은 어쩐지 GD뿐만은 아닌 것 같았다.


그렇게 한동안 TV 앞에 40대 아빠와 30대 엄마, 7살 어린이는 GD가 이끄는 3인조 빅뱅 무대를 넋 놓고 보았다. 이런 식으로 우리 집 주변에서 권지용은 지드래곤에서 GD가 되어 는 30대 아줌마, 40대 아저씨, 초3 어린이와 각각의 일곱 살 남자애, 여자애 모두의 사랑을 받는다. 그렇다고 권지용을 우리 모두의 지디라고 칭하고 싶지 않다. 권지용 자체로서의 지디 당신이 오래오래 살아주었음 좋겠다.

어디서도 꿇리지 않게, SWEET HOME에서 누구보다도 계속 삐딱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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