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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초의 어떤 마음

by 양해연

올해도 한창 여름이고,

그중에서도 이제는 8월이다.


언젠가부터 도통 여름을 에너지와, 여름 방학, 휴가의 계절로 여기지 못하는 나는, 올해는 초여름 즈음에 보약을 한재 해 먹는데 돈을 아끼지 않았다. 30대부터인가, 이십 대 후반부터인가, 여름 한낮의 태양에 조금만 노출돼도 더위를 먹는 느낌이 허다했고, 그나마도 더위를 먹지 않으면 작년에는 난생처음 겪는 방광염으로 고생하지 않았던가. 방광염이 아니어도 어떻게든 한두 번씩은 여름엔 꼭 홀로 아이를 돌보는 게 불가능한 정도로 몸이 아팠다.


아이가 생기고 난 다음부터는 건강염려증과, 불안장애까진 닿지 않지만 일상 전반에 서려있는 잔챙이 불안들과 매사를 싸우느라 고생인데, 이왕이면 그중에 내 몸 하나만큼은 0순위로 지키고 싶었다. 어쩌면 아이건강보다도 내 건강이 우선이었다. 아이가 건강하든 아니든, 모든 상황에서 내 건강은 베이스로 깔려야 모든 생활이 비로소 생활이란 모습으로 흘러갈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말하면, 내가 아프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소리였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 여름은 몇십만 원이 드는 보약을 먹어서라도 지킬 수 있다면 지키려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침 점심 저녁으로 아주 꼬박꼬박은 아니더라도 내 체질에 맞게 지어주셨다고 믿는 한약을 꾸준히 챙겨 먹고 있다. 그렇게 긴 7월을 지냈다. 학교에 처음으로 갔던 아이가 첫 방학을 맞이했고, 그 방학을 2주 지낸 뒤 8월도 왔다. 이제 대략 한 달만 무사히 넘어가면 되는 것이었다. 이 지독한 여름은.


그런데 한 가지 귀엽고도 슬픈 고민이 생겼다. 8월이 지나면 9월이었다. 9월은 어쨌거나 가을의 시작이 되는 달이고, 가을의 산산함과 동시에 한 해가 저문 느낌을 주는 달이란 말이다. 가을은 좋지만 한 해가 꺾이는 것은 어쩐지 싫었다. 나는 올해 얼마 전에 크리스마스트리를 치웠던 것 같단 말이다. 1월이 아니라 12월의 마지막 밤이 엊그제 같단 말이다.


이렇게 '버티는' 마음으로 한 달을 보내기 싫었다. 바람직한 자세로 '즐기고' 싶지만, 현실은 하루 중 한 시간도 맘 놓고 내 시간을 지내기 어려운 전업주부와 엄마의 삶을 살고 있었다. 쌓이는 책들은 정말 5초 단위로 겨우 읽어 가는 것 같았다. 그나마 책이라도 잡으면 다행이었다. 애초에 글과 멀어진 지는 오래였다.


나는 현재 초등학교 1학년 아이 한 명을 돌보는데 어떤 돌봄 시스템도 이용하지 않고 있는데, 정기적으로 하루 중 유일하게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은 아이가 태권도 학원에 가는 시간이 전부였다. 2시에서 3시, 화, 목은 12시 반에서 3시가 그것이었다. (정말 태권도 사범님들 늘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



아무리 봐도 즐길 구멍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도망가거나,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을 생각도 없다.

탈출할 수도 없고, 어떤 맘에 드는 문이 보이지 않는 상황을 보고, 도돌이표 되는 생각을 읽고 있자니 이런 생각도 들었다.

'내가 이토록 자유를 원하는 인간이었나.'

'애초에 결혼이나 육아에는 자질이 없는 인간이었나.'


재작년에 파트타임강사직마저 그만두기 전까지, 모든 외부기관에서의 일의 경력을 두고, 지금 육아 경력 꼬박 7년을 넘는 경력은 어디에도 없었다. 책임과 버티기보다는 아니다 싶으면 돌아서길 잘했던 나였는데, 내리 7년을 도망치지도 않고, 도망칠 생각도 않고, 내리 해내고 있다니. 어쩌면 저런 생각이 드는 게 당연한 것 같기도 했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할까.


육아도, 살림도 야무지고 지친 모습마저 도 황홀하게 해내는 마음도,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그런 종류의 사람이 아니었다. 지칠 틈도 없이 계속되는 육아와, 그렇다고 제쳐놓을 수도 없는 살림. 솔직히 순수한 활기란 찾을 수 없는 일상. 일부러라도 충분히 감사할 수 있는 삶이랄 수 있겠지만, 우러나오지 않는 어쩐지 이런 감사는 위선 그 자체로 여겨질뿐더러, 할 수 없었고 하고 싶지도 않았다.

지금은 가면 쓴 긍정주의자로 사느니, 지금만큼은 솔직한 위선자가 날 것 같다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어쩐지 날 선 위선자, 날카로운 비관주의자, 고독하고 방탕한 자유주의자로 남고 싶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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