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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해연 Aug 07. 2022

예민한 엄마의 육아 번아웃이란 죄책감

요즘 나의 상태는 설명하기 어려웠다.

처음엔 단순히 더위를 먹은 줄 알았는데, 더위는 그냥 원래 상태에 소스를 첨가하는 자극 정도였고 알고 보니 '번아웃'이었다.

아니, 하는 일이라곤 (당연하다고만 여긴) 육아, 가사, 아주 조금 외부 일 이 고작인데.

번아웃이라니. 싶지만 그랬다.


어린이집 방학을 하기 전 아이랑 평일에 어린이집 결석을 하고 (소아과 여러 번, 비뇨기과에 이어) 피부과에 가던 날이었다. 피부과가 청주에 유일한 백화점 옆이라, 진료를 받고 아이와 밥먹고 쇼핑도 할 겸 백화점에 들러서 서점에 갔다가(계획한 게 아니었지만 서점 안에 있는 장난감 코너를 보고 있는 아이를 옆에 두고..) 하필이면 부모, 육아 코너에서 우연히 육아 번아웃에 관한 책을 딱 읽을 수 있었다.

나도 모르게 끌리듯 제목만 보고 목차를 훑고 한두 페이지 정도만 읽었는데, 용한 점집에서 시원한 점괘를 본듯했다.

책은 나도 잘 모르겠는 요 근래 내 상태를 쭉 읊어 주고 있었다.



단순한 피로 누적 또는 불안장애 초기 증상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아이와 관련된 사소한 일들에 불안도가 필요이상으로 높았다.

매 순간 자고 싶었고, 쉬고 싶었고, 지금 가장 간절한 소원은 아침에 알람 없이, 아이의 깨움 없이 푹 자보는 것이었다. (이 문장을 쓰는데도 죄책감이 든다. 아이가 깨야 일어나는 엄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밥도 안 먹고 계속 쉬고 싶었다. 기분전환을 위해 좋은 곳으로 놀러 가거나 여행하고 싶다는 생각도 전혀 없었다. 가장 하기 싫은 일은 주방에 들어서는 일이었다. 식사 메뉴 정하는 일, 고민하는 일, 실제로 하는 일, 차리고 치우는 일, 밥 먹는 일이 그렇게 싫었다.

이런 나 자신의 사고 회로와 동시에 죄책감이 늘 뒤이었다. 그러다 피로가 극도로 쌓이거나 하면 이상하게 가슴이 답답하다거나 머리가 띵하기도 했는데, 이러다 다음날 내가 죽어있으면 어쩌지? 이런 생각이 들어서 이상한 불안에 떨며 한번 울기도 했다(난 눈물이 없는 편이다). 이상한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그나마 잘 수 있는 밤 수면의 질도 떨어졌다. 증상이 있기전 평소에는 아이가 밤잠에 들고난 뒤에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다 자곤 했는데, 그 의욕조차 사치가 되었다. 아이를 재움과 동시에 나도 자기 바빴다. 자는 중에도 깨어있을 때 하던 사소한 걱정을 이어서 했다. 어쩌다 혼자 있을 때도 온전히 그 시간을 내 것으로 누리지 못하고 불안해하고 쉬면서도 죄책감 느끼며 쫓기듯 지냈다.


하지만 내가 아주 예전에 경험했던 불안장애를 떠올렸을 때 확실히 그건 아니었고, 그렇다고 우울증도 아니고, 무기력 증도 아니었다. 그리고 눈에 띄게 나를 괴롭히는 스트레스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있어도 지나갔다고 생각하는 게 많았고.

번아웃이라는 용어는 풀타임으로 일을 할 때나 겪는 것이라고 여겼다.

출산, 육아의 삶은 어떻게 고되나 외부의 일에서 겪는 스트레스와는 질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절대 육아가 쉽다는 얘기가 아니라, 어려워도 당연히 불만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게 있었던 것이다. 힘들다고 하면 안 되는 일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들다고도 했고, 내뱉지 않아도 힘들다고 생각되는 적이 많았지만 그럴 때마다 엄청난 무책임함과 죄책감에 사로잡혔다.


무엇보다 육아로 절대적으로 힘든 시기는 지났다고 여기지 않았는가. 완전히 통잠을 잘 수 없는, 출산으로 몸이 약해져 있는 시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시로 젖이 돌고 돌이되는 시기, 난생처음으로 아이를 돌보는 시기, 신생아 시기 말이다. 이제는 아이가 만 네 살이 돼가는 한국 나이 5살이 되어 자기표현도 할 줄 알고, 나와도 소통이 되지 않는가. 몸도 이제 제법 편해진 시기 아닌가. 그래서 번아웃이란 용어를 떠올리지도 않았고, 떠올린다 쳐도 그 용어의 원인을 육아에 덧대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런 와중에, 우연히 내 상태를 정확히 짚어주는 책을 알게 된 걸 다행으로 생각한다.  무슨 심린지 모르겠는데, 내 상태와 거의 확실해 보이는 용어를 알고 나니, 좀 시원한 기분이 들었고 시간이 좀 걸려도 이겨내보고 싶다는 희망이 크게 들었다. 그 일환으로 책들을 읽고 있다. 주로 육아 감정에 관한 책이고, 철학 책도 있다. 어떻게 육아를 하라는 그런 책이 전혀 아니고, 육아 삶과 관련한 주관적인 에세이 책들도 아니다. 나는 감정을 공감받으며 마음을 나누는 걸 넘어서 객관적으로 내 상황, 나를 볼 수 있는 문장들을 읽고 있다.

 그 과정에서 한 가지 또 도움이 되는 사실을 발견했다. 내가 예민한 엄마라는 사실이다.

'육아 번아웃 + 예민한 엄마'의 콜라보 상태가 지금 나였다.

육아 번아웃이나, 육아 감정에 대한 책을 읽던 중 예민한 부모에 관한 책도 알게 됐는데, 설마 하며 해본 예민한 부모 체크리스트를 보니 난 70% 이상 예민한 엄마에 속했다. 예민하다는 표현은 진짜 내가 별로 안 좋아하는 용어였는데, 아이를 낳고 키우다 보니 그렇게 됐다. 나 혼자만 있을 땐 둔하다 싶을 정도로 예민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었는데.. 여전히 난 무던한 사람이고 이어서 무던한 엄마이고도 싶은데..


어쨌든, 다행히 책과 문장이 눈에는 들어오는 상태여서 책의 문장 속에서 나의 상태, 기분을 회피 않고 마주하려고 애쓰고, 더 나은 상황으로 갈수 있는 방법들을 알아가고 있다. 알아가는 것들을 구체적인 실천으로까지 가게 하고, 익숙해져서  단단한 사람 담대한 엄마가 되는 것이 목표다.


다음엔 예민한 엄마가 육아번아웃을 알고, 마주하며, 헤쳐내 가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써보고 싶다. 요즘 읽고 있는 책들은 밑줄 치기를 포기했다. 너무 많이 다 기억하고 싶어서 이러다 책 전체를 다 밑줄 칠 것 같아서다. 그만큼 기억하고, 공유하고, 실천하고픈 것들이 많다.

싶다에서 끝나지 않길 바란다.



나 홀로 이 세상을 살아나가는 것도 쉽지 않다고 생각했다. 부모가 될만한 완전한 사람은 아니란 걸 알았지만, 충분히 시간을 들여 각오를 하고 아이를 만나게 됐다. 아이를 어느 정도 키우고 나서는 나름 보람도 느끼면서, 만약 내가 아이를 낳지 않고 살아갔다면, 영원히 투덜거리면서만 살았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그렇지만, 조금 지난 지금은 생각처럼, 그리고 생각보다 더 육아의 길, 아니 육아와 함께하는 삶 안에서 나를 단단하게 키워 나와 아이 모두 강건하게 성장시켜가는 일은 더 쉽지 않은 일임을 느끼고 있다. 대단하거나, 복되다는 표현으로 치장만 할수는 없는 노릇이란 말이다.


어리숙해서 더 고됐던 직장 생활에서 느꼈던 번아웃의 가장 손쉬운 해결책은 그 직장을 때려치우는 것이었다. 실제로 했건 안 했건 최후에는 어쨌든 그 포기의 카드를 쓸 수 있었다. 육아번아웃의 가장 큰 차이점이 여기에 있다. 육아는 포기란 카드가 없다. 좋으나 싫으나, 기쁘나 슬프나, 아프든 말든 무조건 해야 한다.

그것은 선악과 부관한 부모의 의무이자 책임이다.



육아번아웃과 관련된 기사에 이런 댓글이 달렸다. '우리 엄마들은 인터넷이 뭐냐, 세탁기 청소기 없이도, 심지어 시부모님 모시고 살면서도 힘들다 소리 한마디 안 하고 다 견뎠다며. 할 일이 더럽게 없어서 그런 소리가 나오는 거라고.. ' 아니 이런 댓글을 쓰는 사람들이 왜 그 기사는 읽었는지 모르겠다. 그냥 자기 관심거리나 읽지 왜..  


육아번아웃이란 용어를 알게 됐고, 인정하게 된 지금 나도 이상한 죄책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저 댓글러와 비슷한 생각이 내리에 깔려있어서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자주 나의 엄마나 시어머니 앞에서는 뭔가 육아나 가사로 '힘들다'는 말을 꺼내기가 너무 죄송스럽고 실제로 잘 쓰지 못한다.


해결되지 않은 요상한 양가감정이나, 생각들이 요동치는 말인 것 같다.  육아번아웃이란 것이. 때문에 글이 아주 두서가 없다.

하긴 글도 그렇다. 언제는 두서가 가득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정하고, 한발 두발 내밀려 한다. 불안함도, 어리숙함도, 무지함도, 기쁨도, 슬픔도, 뿌듯함도, 다 받아들이고 헤쳐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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