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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해연 Nov 15. 2022

오늘은 빼빼로데이였구나

11월 하루의 기록

 포실한 구름 낀 하늘도, 떨어진 낙엽도 이쁜 날이었다.  

이쁘지 않은 건 가라앉은 내 마음뿐이었다.

떨어진 낙엽들이 유난히 이쁜 날이었다.

거의 완전하게 평범한 하루 중 하나였다. 그저 감사할 수 있을 날이었단 뜻이다. 근데 나는 아비와, 남편의 못난 모습의 고백에 그리고, 그들을 부끄럽다고 생각하는 내 모습에 화가 나서 부끄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우울을 환기시켜주는 움직임이 있었다. 우연히 들른 빵집에서 점원들이 평소보다 바쁜 모습이었다. 알고 보니 막대과자에 초코와 알록달록 토핑으로 꾸민 수제 빼빼로를 포장하느라 분주한 것이었다. 오늘은 빼빼로데이였다. 심지어 나는 그래서 마트에 들러 학원 아이들에게 줄 막대과자 한 상자를 사고, 빵집에 들른 것이었다. 좋은 날에 좋은 사람들에게 좋은 마음을 전해줄 생각을, 준비를 하면서도 이 날 자체의 설렘을 잊고 있던 나 자신이 아쉬웠다. 그런 식으로 내 마음이 도통 환기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 와중에 이름도 모르는 손님들을 위해 수제 빼빼로를 만들고 바쁘게 포장하는 점원들의 모습, 매장의 분위기를 느끼고 오늘이 빼빼로데이라는 걸 생각했다. 학창 시절 다른 날은 몰라도 이날은 친구들과 선생님께 줄 빼빼로를 준비하고 주고받느라 늘 분주했다. 누군가들을 위해서 무언갈 준비하는 분주한 마음이 좋았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그 이벤트에 별 의미를 두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 학창 시절의 기억 덕분에 난 11월 11일을 그냥 좋은 날로 여긴다. 그런 좋은 날이었구나. 오늘이. 그날이었다.  


 그런데 다시 깨달은 이날이 1%라도 우울로 물드는 게 억울했다. 밖은 환하고 바빴고, 내 마음은 먹구름이 꼈는데 빵집 점원분들의 움직임으로 안개 정도로 바뀐 듯했다. 다행이고 고마운 일이었다.  


 일터에 도착해서는 아이들에게 내가 준비한 좋은 마음만 전해주려고 애썼다. 평소랑 똑같이 집중해서 수업했지만, 아주 조금이라도 나의 불편하고 어두운 마음이 전달되지 않도록 힘썼다는 뜻이다. 감사하게도 어떤 아이들이던지 함께 집중해서 수업을 하고 나면, 신기하게도 좋은 기운을 받는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기본적으로 아이들과 함께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은 복된 일이었다.  


 그리고 학원의 아이들과의 일을 끝내고 집에 가면 진짜 내 아이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아이와 놀아주고, 밥을 하고, 먹이고, 놀고, 씻기고, 자야 한다. 그러다 보면 짙은 먹구름은 어느덧 지나가는 듯하다. 우울의 근원이 되는 일에, 내 감정에 집중할 여유가 없다. 다행인 걸까. 그래서 그냥저냥 비는 오지 않고 적당히 맑은 하루가 다시 돌아오는 듯하다. 아이든 나든, 가까운 누구든 누구 하나 크게 아프지 않은 감사하기만 하루가 온 듯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아무렇지 않은 일상을 평범한 일상으로, 간절하고 겸허한 일상의 감사로 받아들일 만큼의, 격하지는 않아도 잔잔해는 보일 기쁨의 원동력이 없다는 게 아쉽다. 나도 알지만 가끔 우울의 한 조각이 나의 많은 것들의 밝음을 어둡게 비추는 것이 아쉽다.



 말은 해야겠는데, 말을 할 의욕이 나지 않는다. 원가족은 내가 짊어지고 가야 할 어쩔 수 없는 십자가라 치자. 결혼 후의 일상에서 부딪치는 일들은 결국 내가 선택을 잘못한 건가, 내가 잘못 산건가 라는 출구 없는 물음을 낳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의 하찮거나 하찮지 않은 그런 일들을 모두 잘 견디어 내고, 심지어 극복해내고, 마음의 벽을 허물어 살고 있을 나의 중년이, 우리의 중년과 노년이 미래가 기대된다. 잘, 할 수 있다. 잘은 못해도 어떻게든 할 수 있다. 고 오늘은 마음을 먹어야겠다. 나야, 우리야, 힘을 내자. 오늘은 기쁜 날이다.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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