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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해연 Dec 30. 2022

아이가 헐크가 되는 순간

귀엽고 재밌지만, 유쾌하지만은 않은

 가끔 남편과 재미로 웃고 떠들며 격하게 장난을 친다. 그때마다 5살 아들이 '앜!!' 하는 내 소리를 듣고는 달려와서는 우리 사이로 점프하고 낙하하는데 오늘은 그 모습이 정확히, 새끼 헐크 같았다. 심지어 내가 먼저 남편에게 장난을 쳐 놓은 상황인데도 아들은 무조건 나를 구하겠다는 의지가 투철하다. 5살의 악력과 힘이 만만치 않아서 38 먹은 성인 남성도 손을 들어준다. 그러곤 그 38짜리 남자는 엄마는 좋겠다며 웃는다.

되게 유쾌하고 재밌는 순간이었다.

 

처음엔 별 생각이 없었는데, 오늘 본 아들 신비의 모습은 정말 헐크 같았어서 귀여움이 한도초과되고 든든하기까지 했다. 연인시절 꿀 떨어지는 눈빛을 보내주던 남편이 가고 대신 아들이 온 건가 싶기도 했다. 헐크의 본편은 보지 않아서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어벤저스 편에서 본 헐크는 우락부락한 겉모습처럼 무지막지만 하기보다는 오히려 간절한 순간에 뛰어들어주는 스피드와 힘이 후련했던 기억이다. 오늘 신비는 정확히 안방에서 거실로 초스피드로 달려왔고, 우리를 두고 1m 반경에서 제자리 점프해 아빠에 가까운, 우리 가운데로 낙하했다. 마치 얄미운 로키가 자꾸 말을 안 듣고 덤벼서 다른 영웅들까지 난관에 빠져 맘을 졸여갈 타이밍에 창문을 깨고 달려와 악당 로키의 대사가 채 끝나기도 전에 한 손으로 들어서 냅다 땅에 내리꽂아주는 그 장면이 생각났다. (남편이 악당이라는 소리는 아니지만 그 장면이 생각나는 걸 어쩌겠는가.)



 5살이라 이제 꽤 어린이 느낌이 나지만, 딱 봤을 때는 아직 어린이보다는 아기느낌에 가까운데 말 좀 한다고 생각이란 걸 하고 그 생각이 온전히 자신의 기쁨이나 욕심에 우선한 게 아니라 엄마를 지켜야 한다거나 가까운 사람의 기분까지 헤아리려는 것을 보면 기특하다기보다 우려스러운 마음과, 내가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앞선다.

헐크가 되어 나를 구하러 오는 아이를 보고, 엄마를 지켜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아이를 보고, 

그냥 귀엽다 끝내면 될 것을 이런 생각까지 하는 게 좀 개연성이 없는 거 아닌가 싶긴 한데 나름의 이유가 있다.




 우리의 육아는 아이의 건강하고도 온전한 독립에 목표를 두어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다. 최근에야 알게 된 거지만, 내 엄마는 나를 그러지 못했고, 나는 그걸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감정적으로 독립한다는 게 쉽지 않았다. 그런 나는 당연히 엄마의 많은 것들에 나도 모르게 감정적으로 휘둘려서 힘들 때가 많았다. 지금은 혼자서라도 고군분투하며 온전한 정신적 독립을 위해서 조금씩 꾸준히 연습 중이다. 더불어 나는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자식에게 조금도 되풀이하지 않으려고 한다.  


 더 얘기를 해보자면, 나는 일단 꽤 독립적이거나 개인적이거나 이기적인 기질이었던 것 같다. 불화가 많은 부부 아래서 자라면서도, 엄마나 아빠를 도와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내가 그 갈등을 조정해야 한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엄마는 그걸 아쉬워했고 심지어 원했고, 서운해했다. 엄마의 한풀이를 아무 말 없이, 끝없이 들어주지 못하는, 한 번은 쓴소리를 내뱉던 초등학생인 나를 두고 세상이 꺼질 듯 울며 원망했다. 아마 20대 초반 갓 성인이 됐을 무렵 완전한 이혼의 길목에서 아빠와 심각한 갈등이 있을 때도 내가 그 사이에서 아빠에게 엄마 편을 들으며 쓴소리를 하기를, 엄마에게 유리한 것이 오게끔 하기를 바랐다. 그래서 그 사이를 조정해주길 바랐고 아빠에게 엿을 먹여주길 바랐다. 갈등이 싫었고, 거기에 껴드는 것도 싫었던 나는 자주 이리저리 끌려다니긴 했지만, 끌려만 다녔을 뿐 뚜렷하게 뭔가를 하지 않았다. 껴들어 봤자 무슨 말인들 잘했을까 싶다. 때문에 나는 이혼위기부부의 '자식'인데도, 똑바른 소리를 못하는, 야무지지 못한 애라는 여기저기서 아쉬운 눈초리를 받기도 했다. 끝까지 나는 중간 역할을 제대로 하지도 못했고, 안 했지만, 거기에 실제로 내 의무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기저에는 은근한 죄책감이 자리하고 있다는 걸 이십 대 중반 즈음 알았다.


 그리고 결국 부모님이 이혼을 한 다음엔 그 둘의 관계에 껴야 될 스트레스 상황이 결혼 때 빼고는 거의 없었지만, 이상하게 엄마의 감정과 상황에 필요이상으로 휘둘리는 나를 발견했다. 문제가 문제인지도 몰랐을 때까지는, 항상 뭐가 우울하다는 엄마가 기분 좋게 하려고 일부러 좋은 감정을 과장해 표현하기도, 좋은 날 꽃을 보내보기도, 맛있는 걸 먹으러 가기도 했다. 반면에 엄마가 기분이 좋지 않거나,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내 일상은 평균 이상으로 불안해졌다. 내가 잘못했다 하면 미안하지 않은데도 그렇다, 미안하다 했고, 고맙단말, 좋다는 말도 평화주의자라는 명목으로 많이 했다. 그러면 될 줄 알았고 잘은 아니지만 뭔가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부모와 나는 가족이지만 나는 서른도 넘은 성인므로 엄연히 독립된 관계여서 부모의 컨디션에 따라 아이도 그 기운을 받는 듯이 휘둘릴 필요는 없었는데, 분명 문제가 있었다. 그걸 깨달은 지 몇 년이 안 됐다. 아기를 낳고도 한참 지난 뒤에 알았으니 2년 정도도 채 되지 않은 것 같다. 몇 년이 안 됐어도 깨달은 게 얼마나 다행인지.


 그때 난 알면서도 더 다짐했다. 아들 신비에게는 나와 남편이 단 1%도 자식에게 의존하지 않게끔 마음가짐을 할 것이며, 설사 남편과 내가 일상에서 다투는 순간이 있더라도 절대로 거기서 아이에게 중간역할을 하게 한다거나 책임감을 느끼게 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그러기까지는 비교적 완전한 평화의 모습이 최선이겠지만, 그건 최대한 바른 언어와 이성적 태도로 부부가 의견을 조정해나가는 방향으로 보여야 할 것이라고 마음먹었다.


 나름대로 일상에서 이런 촉을 세우고 있는데, 마냥 장난꾸러기만일 것 같은 아들 신비랑 재밌는 대화를 하다 보면 자기가 엄마아빠를 구할 거란 얘기를 할 때가 있다. 예를 들면 뭐 공룡이 우리 시대에 오는 것과 같은 상상발언을 할 때,

'내가 엄마 아빠 지켜줄 거야!'라고 한다. 그럼 그때 덜컥해서,

'아니 신비야, 엄마 아빠는 어른이라서 엄마 아빠가 시환이를 지키고 엄마 아빠도 스스로 우리를 지킬 수 있어.'라고 얘기해준다.

 이 아이는 또, 자기가 아닌 사람이 기분이 안 좋을 것 같은 모습을 간파하고 위로의 손짓과 눈빛을 보낼 때도 많다. 남편이나 친정엄마에게 내가 톤을 높여서 말할 때가 있는데, 나를 보다가 대화가 끝났다 싶으면 내 머리나 엉덩이를 쓰담쓰담 토닥토닥하는 것이 아닌가.

후- 이젠 말을 더 잘해서 때론 어른의 말들을 듣고, 이해를 한 뒤, 해결책을 제시해 줄 때도 있다.

아이의 동정어린 시선이, 위로의 손길이 기특하기 전에 절대 따뜻하게만 달갑지 않다.


 이 아이는 생각보다 감정적 촉이 발달한 것 같다.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잘 표현하는 것은 좋은데, 많이 느낀다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그래서 나와 남편이, 우리가 더 어른 다운 태도로, 아름다운 말로 삶을 살고 이 순간만큼은 보여줘야 할 필요를 느낀다.



 이 아이가 헐크가 되는 순간은 자신의 삶에서 필요할 때만 되기를 희망한다. 헐크가 돼야 하는 이유가 우리가 되지는 않게.

정확히 내일모레 서른다섯 되는 덜 으른 된 내가 많이 노력해야겠다. 무겁지만 희망이 기쁨이 따라오는 노력이다.

잘해보자 어른, 엄마, 나야. 남편아, 아빠야. 우리야.

행복하자 우리, 노력하자 나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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