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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해연 Nov 11. 2022

송내남부역에서의 그 밤들

옛 기억 소환

   혼술 하는 유튜버를 우연히 보다가 문득 생각이 몇 가지 스쳤다. 먹방은 보지 않을뿐더러 싫어하는 쪽인데, 왜 이 유튜버가 포장마차에 혼자 가서 카메라를 켜놓고 음식과 술을 마시는 영상은 보게 됐을까. 그리고 심지어 이분이 먹는 음식들, 소주 한잔 너무 맛있어 보였다. 이내  혼술 하는 여유와 패기가 부러워졌다. 그 유튜버는 알고 보니 내 또래였고, 똑똑하고도 착해 보이는 인상의, 안경이 잘 어울리는 직장인이었다.  

렇게 길지 않은 몇 분가량을 멍 때리고 영상을 보다가, 한 때 나도 일 끝 거리에서 혼술은 아니어도 혼자 먹곤 했던 그 장면이 떠올랐다.  

 

드라마 쌍갑포차 이미지 일부


 때는 내가 갓 직장생활을 시작했을 때. 스물다섯, 여섯 즈음. 학원강사 일을 하던 나의 출퇴근 시간은 늘 늦었다. 보통 9시 반에서 10시 사이에 퇴근을 해서 서울 5호선이나 2호선에서 지하철을 타고 파란 인천행 1호선으로 한번 갈아타고 오는 종착역은 부천의 송내역이었다. 그중에서도 최종역은 남부역이었다. 몇 번 출구가 아닌 북부역 남부역을 구분하는 버릇은 부천사람들만의 특징이라는데 믿거나 말거나. 역사 안 유명한 천 원짜리 오리지날 와플가게(너무 먹고 싶어서 임신했을 때도 청주에서 부천까지 먹으러 갔다.), 다양한 화장품 로드샾을 거쳐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남부역으로 내려오면 아마도 주황색 지붕의 포장마들이 5개 정도 줄지어 있었다. 떡볶이를 좋아하다 못해 사랑하지만, 혼자 먹는다는 것이 아직 내키지 않아 그냥 스치는 것이 자연스러워질 무렵, 한 번은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내 기억에 모든 포장마차는 떡볶이를 기본으로 한 분식을 팔고 있었는데, 어느 날은 뽀글 머리 할머니 동이, 어느 날은 중간 쪽 아주머니동이 어느 날은 맨 끝쪽의 아주머니 동이 붐볐다. 사실 나는 그때 저녁을 거의 굶고 일하는 날들이 기본이었으므로 집에 올 때 즘이면 서럽기도 하고 허기도 많이 졌었다. 혼자 먹는 용기보다 배고픔 해결이 더 간절했던 어느 날, 가장 오른쪽에 있는 포장마차에 들어가서 인사를 했고, 또 그중에서도 구석구석으로 들어가 떡볶이 한 사발 보다는 낮은 레벨로 보였던 어묵 한 꼬치를 집었다. 포장마차에 혼자 가보기는 처음이었으므로 그게 뭐라고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한 나머지 아마 사람이 최대한 없는 곳을 선택했을 것이다. (귀여웠다 나..) 


 우연이었던 선택인데 기쁘게도  순간  어의 신세계를 맛보았다. 세상의 오뎅은 다 같은 맛인 줄 알았는데 그 포장마차에서 나는 어묵이 다 같은 맛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버렸다.  첫날은 가볍게 어묵 한 개를 시작으로 나 홀로 포장마차 경험을 마쳤다. 운 좋게도 처음 간 그곳이 맛집이었다.(가끔 그 동이 너무 붐벼서 다른 동에서 먹어봤는데 한번 가고 다시는 가지 않았을 정도로 맛이 없었다.) 그 이후로 나는 어묵은 거의 갈 때마다 먹었고, 어느 날은 떡볶이도 한 그릇 도전했다. 원래는 떡볶이 1인분, 튀김 1인분이 따로였지만 감사히도 센스 있는 사장님이 딱, 내 양에 맞춰서 튀김과 떡볶이를 1인분으로 맞춰 주셨었다. 지금 생각하니 키오스트 범람하는 요즘 시대에 더 감사하고 따뜻하며 인간미 넘치는 부분이었다.


 포장마차 먹방의 매력은 또 있었다. 알고 보면 모든 사장님들이 그러시진 않았을 건데 그 포장마차의 사장님은 내가 혼자 있거나, 여유가 되실 때 음식을 내어주실 뿐만 아니라 대화를 먼저 걸어주시는 분이었다. 처음엔 내가 무슨 일을 하고, 뭐가 서러웠고 하는 가벼운 내 얘기들 위주로 됐었는데, 거기에 가는 횟수가 많아지고, 사장님과도 꽤 친해지는 기분이 들자 가끔은 사장님도 열불을 내시며 자기 얘기를 하시기도 하셨다. 그러다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나도 다소 무겁게 여기던 고민도 얘기하고 그랬다. 이 기분이 이 시간이 생각보다 엄청 좋았다. 생각하면 떡볶이 먹다가, 어묵 국물 마시다가 쳐 울지 않은 게 다행이다 싶다 싶을 정도로 사장님과 나의 대화도, 밤도 깊었다. 

 어리고 콧대만 높아서 첫 사회생활은 당연히 쉽 않았는데, 늘 지치고 서럽다고 생각했다. 터덜터덜 도착한 송내역에서 때로는 어묵 1 꼬치, 어느 날은 떡볶이 한 그릇, 어느 날은 설탕 케첩 머스터드 다 묻힌 핫도그 하나로, 거기에 어묵 국물 한 컵과 사장님과의 담소로 속도 따뜻해지고 마음도 풀린 채로, 그렇게 어느덧 서러움은 털어내고 든든함은 채운채집에 들어왔던 기억이다. 거기서 혼자 뭐든 먹다 보면, 다른 사람들도 오가며 먹는 걸 볼 수 있었는데, 그냥 스치듯 볼 때는 몰랐던 낯설고도 정겨운 장면다. 이를테면, 이 시간에 포장마차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고, 거의 혼자라는 것. 그리고 그들은 다 나처럼 사장님과 안면이 있다는 것, 그래서 다들 사장님과 자연스럽게 친한 듯 대화하며 어묵을 먹었다는 것이다.  


 


 다시 유튜브 얘기로 돌아와서, 내가 그 혼술 하는 34살 직장인 여성분의 영상을 보면서 이 기억이 난 이유를 가늠해보기로 했다. 나는 지금 아이 엄마가 되었고, 풀타임 직장일과는 아주 많이 동떨어졌지만, 풀타임 아니 24시간 풀로 육아일을 하고 있고, 내 시간을 갖는 것은 아주 사치로 느껴지기도 할 만큼 큰 기쁨이 되었고, 혼자 밥을 먹거나 무언갈 먹는다는 것은 용기 내거나 심지어 창피하다고 여겨지는 일이 아닐뿐더러, 무엇보다도 여유로우며 심지어 제발 하고 싶은 일이 돼버렸다. 그래서 퇴근길에 먹던 그 어묵이, 떡볶이와 김말이가, 그 어묵 국물이 맛있고 좋으면서도 속으로는 처량 맞거나 피곤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잊을 수가 없는데 이제 다시 그때로 가면 너무나도 당당하고 더 기쁘고 여유롭고 편안고도 아주 맛있게 먹을 자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때도 섭섭치않게 누구보다 가장 맛있게 먹었을것이다 나란사람.) 그리고 이내 바쁘고 피곤하고 처량 맞은 종착지였던 송내역 남부역 거리가 그리워지기까지 했다. 


부천에, 그중에서도 송내역에 가본지는 아주 오래되었다. 아마 많이 바뀌었겠지. 궁금해졌다.

여전히 인천과 부천을 가르는 붐비는 버스와, 11시가 넘어도 많았던 사람들과 포장마차가 줄지어져 있을까. 그때 그 포장마차 사장님은 잘 지내실까, 많은 이들의 송내남부역은 어떻게 지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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