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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해연 Jan 25. 2023

그림 그리기의 치명적 매력

반전과 의외의 기쁨


 작년 더워진 봄즈음, 취미 미술을 시작했다. 더 오래인 약 2년 전 아파트 도서관에서 했던 보태니컬 수채화 무료수업에서 색의 매력과 기쁨을 느꼈고, 그때 알게 된 선생님과의 인연을 이어가기로 했다.


 그림은 시작의 마음이 글을 꾸준히 써보기로 했을 때와 비슷했다. 미술은 전공까지 할 정도는 아니지만 학교정규수업에서만큼은 자발적으로 열심이었고, 자연스럽게 해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모든 학업들이 그렇듯, 과제를 제출해야 하든가, 이왕이면 A를 받아야겠다든가, 어쨌든 잘, 해야 하거나 해야만 한다는 결과지향의 작업만 하다가, 취미 미술을 접해보니 어떻게 해야 한다는, 어떻게 하라는, 언제까지 제출하라는 압박감 없이, 정답도 없이 그냥 해보라는 편안한 분위기가 좋았다. 심지어 곁들어하는 캘리그래피도 그전까진 어떻게 해야 한다는 규칙이 있었는데, 이 선생님은 캘리그래피에도 도구조차 정답이 없다며, 그저 하는데, 좋은 글을, 마음을 표현하는 것에 의의를 두라는 조언에 마음이 많이 움직였다.
 
 내게는 수채화는 꼭 스케치까지만. 색칠하면 망한다. 는 망나니뚱딴지같은 법칙이 있었다. 그래서 (미술자체는 좋지만) 수채화는 어려운 것, 색칠하면 망하는 것, 당연히 재미까지는 없는 것,이었는데 모든 법칙이 완전히 무너지는 계기였다. 어찌저찌 각종 나뭇잎의 스케치를 끝내고, 색을 칠했을 때 잘 됐든 망했든 물에 퍼지고, 입혀지는 물감의 색채에서 생전 처음으로 물감채색의 아름다움을 느꼈다. 이미 완성된 그림이나 작품을 단순히 보는 것과는 달랐다.

수업 초기 작품



 무료수업을 끝으로 약 2년을 쉬다가, 왜 그림을 그려봐야겠다고 생각했을까.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아 일부러 생각을 해야 했다. 아, 수업 이후 유튜브나 일상에서 수채화 영상과 그림들이 눈에 들어왔었다. 그전엔 보이지 않았던 거였다. 한번 그려보니, 쉬워 보이는 수채화들조차 쉽진 않았지만, 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것을, 해보고 싶고, 이쁘던 색감을 계속 보고 싶었다. 심지어 유튜브에 뜨는 쉬운 수채화 영상들은 그렇게 간단해 보일 수가 없었다. 그 쉬워 보이면서도 예쁜 수채화만 계속해보려고, 거기에 캘리그래피도 더 하겠다는 심정으로, 꾸준히 해서 재택의 수익화 같은 것도 해볼 야무진 생각이었다.

 팩트는 이랬다. 간단한 수채화만, 꾸준히 할 거다.


 성인 되고 나서 내 돈 내고 처음 해보는 미술수업은 무료강좌 때 보다 종이가 컸고, 작업은 훨씬 세세했다. 더 큰 꽃과 식물 풍경위주를 그렸다. 당연한 것이지만, 수업의 퀄리티가 높아지자 선 긋는 것 하나 보통이 아닌 것임을 깨달았다. 그래서 재미가 없을 뻔했다. 뭘 잘하려는 것보다 '꾸준히' 하는 것이 목적이었기에 그래봤다.
 일주일에 한 번 2시간. 어느 날은 꽉 채워서 2시간을 했지만, 어느 날은 한 시간만 할 때도 있었고, 아이가 아프거나 변수가 있는 날은 그마저도 몇 주씩 못하기도 했다. 우리 아이를 이뻐해 주시는 선생님이 편의를 많이 봐주셔서, 자주 아이와 함께 화실에 가기도 했고, 정신없는 1시간을 그리는 둥 마는 둥 해보기도 했다. 그렇게 반년이상을 지냈다. 꾸준히 했다는 것이다.

초기작품2 주로 식물화다.


 한 타임에 작품을 완성하는 날은 거의 없었다. 그나마 2주 안에 그림을 완성하는 날은 운이 좋았다. 최근에 완성한 그림은 6주도 넘게 걸렸다. 가장 마지막에 그린 그림은 연필만으로 그리는 인물화였는데, 이걸 완성하면서 느낀 게 강렬해서 글로도 기억해보고 싶어졌다.

 미술 선생님은 그림을 그리는 데 있어서 방향이나 추천은 많이 해주시지만, 강요가 없으셨다. 그래서 처음에는 식물 위주의 쉬운 수채화를 하고 싶다는 내 취향에 맞춰서 이런저런 그림들을 추천하시다가, 펜드로잉?이나, 단순 데생 같은 작업도 추천하셨는데 그 과정에서 나는 해보고 싶은 그림과 사진이 다양해지고 자유로워졌다. 글감을 생각하는 것과는 또 다르게 그림감을 고르는 것은 새로운 즐거움이었다.

한 번은 선생님이 인물화를 추천하셨다. 다른 사람이 그려놓은 인물화들을 몇 개 봤는데, 무슨 용기인지 나는 그냥 내 자식을 그려보고 싶다고 했다. 그전까지는 이미 완성된 다른 사람의 작품을 따라 그리는 것이었는데, 이번엔 영혼을 담아서, 사적으로 좋아하는 마음을 담아서 소재부터 내가 정한 그림을 그려보고 싶었다. 그렇게 우연히 아들의 사진을 데생으로 했는데, 선생님이 도와주시긴 했지만, 완성했을 때 성취감이 그전에 비해 월등했다.
정확히 인물화(아들) 작업을 마치자, 그리기의 매력을 달리 깊게 느끼기 시작했다.

아이 사진 데생을 시작한 지 2회 차 정도 됐을 때인가. 대충 윤곽만 그렸을 때만도 완성인 줄 알고 그만하려고 했다. 그때 선생님은 '더 그려보라'라고 하셨다. 그렇게 2주 이상을 투자해서 아들 얼굴을 완성했다. 과정은 그전에 했던 식물 수채화 보다 훨씬 어려웠고, 조심스러웠으며, 잘 그리고 있는 게 맞는지 눈에 확연히 보이지 않아 애매하고 답답했다. 그렇지만, 식물화를 그릴 때보다 그리는 대상을 수백 수천번은 보고 또 보고 가까이서 봐야 했다.

아들 인물화 완성작
무려 완성인줄 알았던 스케치




 명암작업까지 연필로 완성했는데, 결론적으로 그림에 색을 입히지 않아도, 인물화의 매력과 성취에 기뻐하며 몸을 떨었다. 놀라운 건 처음에 완성이라고 생각했던 게, 완성 후 다시 보니 낙서 수준의 성의 없는 스케치에 불과했다는 것이었다. 분명 더 이상 할 게 없어 보였는데, 눈매도 힘을 줘서 덧입힐수록, 머리카락도 한올이라도 더 진하게 그릴수록, 옷의 주름도 더 입힐수록, 할 게 보였고 그림도 사람도 더 살아났다. 신기한 노릇이었다. 더 그려보라는 선생님 말씀을 듣길 잘했다. 그러고 나서 나는 풍경화만 하나 더 그린 뒤 인물화를 한 번 더 해보고 싶다는 열망으로 가득 찼다.

더 신기한 건 그 데생 이후로 일상을 살아갈 때, 사람하나 일상하나 어떤 풍경 하나 사진 한 장이, 심지어는 사람 몸의 태가(주로 연예인..), 얼굴 선이 아름답고 멋있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번엔 특히 더 이쁘거나 멋진 사람들을 그려보고 싶어졌다. 탑 연예인이나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들 중 한 명을 고를 거다. 처음에는 분명 남자 연예인을 그릴 거라고 호언장담을 했는데, 막상 하고 보니 생각보다 너무 어려워서 성별을 바꾸고 대상을 바꿨다.

 무채색의, 눈을 거의 감은 듯한(눈을 감고 있어야 부담이 적으니까) 검은 옷을 입고 있는(역시 그래야 그리기 그나마 나으니까) 전지현(님)을 그리기로 했다. 무시무시한 도전이었다. 내 손을 거쳐서 이 여신님이 제발 망하지 않기를. 식물화를 그릴 땐, 잘은 하고 싶었지만, 못해도 그만, 망하는 건 없다는 이상한 자기 합리화가 팽배했지만 이번엔 달랐다. 절대, 조금도 망치고 싶지 않았다. 망하면 왠지 진짜 앞으로 그림 그리기 싫어질 것 같았다.

그래서 고른 사진 전지현님.



미대를 나온 것도 아니고, 잘 그리지도 못하는 절대 아마추어 나는 그 무모한 도전을 시작했다. 선생님이 속으로 진짜 용감하다고 생각하실 것 같았지만, 그냥 하고 싶은 걸 그리기로 했다. 구도를 잡는 시작부터 확실히 어려웠다. 너무 당연하게도 정면응시를 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선생님의 예리한 판단으로 구도를 살짝 수정했다. 선이 굵고 확실한 남자연예인이 그리기 더 쉬울 거라고 생각했던 나는 완전히 틀렸다. 여자연예인으로 넘어오니 내 생각엔 후자가 훨씬 편했다. 얼굴이며 눈, 골격이 더 유연하고 부드러웠다. 잘 그리고 싶다기보다 망치고 싶지 않단 생각이 워낙 강해서 그런지 그전보다 더 조심스럽게 연필질을 했다. 덕분에 진도도 느렸지만, 그런대로 만족했다.

두번째 인물화 초기



오늘은 꼭 완성하리라고 마음먹고 간지 3주 만에, 한 달이 뭐냐 6주도 넘게만에 전지현 님을 완성했다. 채색을 하는 것도 아닌데, 선을 칠하면 칠할수록 더 할게 보였다. 까만 머리도 칠하면 칠할수록, 손끝도 다듬으면 다듬을수록, 검은 옷도 칠하면 칠할수록 더 성의 있어졌고 보기 좋아졌다. 까만 옷이고, 흑백사진이라고 그렇게도 쉬운 건 아니었다.

완성아닌 완성 중. 두번째 사진때부터 연필 덧칠만에서도 묘한 희열을 느끼기 시작했다.



인물화를 그릴 때 꼭 똑같이만 그리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는, 자기는 살짝 미화시켜서 그리는 걸 좋아한다는 선생님은, 똑같이 그린다면서 역설적으로 망해가고 있는 전지현(님)의 코를 손봐주시기도 했다. 전문가의 잠깐의 손길은 다시 그 연예인을 빛나게 해 주었다. 이 과정을 보는 것도 신비스러운 낙이었다. 묶은 머리 옆으로 삐져나온 잔머리를 살리는 것으로 대장정의 데생을 완성했다.
 오랜 작업 끝의 성취에서 오는 희열은 뛸 듯이나 할 줄 알았지만, 묵직하고 차분한 와중에 진했다. 대신 그림을 완성해 가는 시간 동안, 그림을 그리지 않을 때에도 나는 사람이나 물체, 풍경이 주는 아름다움을 더 열심히 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마치 글쓰기를 취미로 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일상의 많은 것들이 글감으로 느껴지고, 꼭 써보고 싶다고 느껴지는 것과 비슷했다. 그러면서 사소한 일상조차 가치 있고, 소중하게 느껴지는 마음과 비슷했다. 글쓰기로 새로 보이는 게 눈에 보이지 않는 스토리가 있는 일상이었다면, 그림을 그리면서 보게 된 것은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 '자체의 아름다움'이라는 게 차이다. 주변을 보는 새로운 시각이, 마음이 생기니 일상에 색이 입혀지는 것 같았다. 수채화 색의 아름다움을 처음 느꼈을 때처럼, 일상에서 아름답고 이쁜 것은 더 미모스럽게 다가왔다. 얼마나 행복한 시선이고 발견인가.

전지현님 완성작. 절대 같지 않다는거 안다. 그래도 만족스럽고 기쁘고 좋다.



그동안 오랫동안 연필화를 위주로 그렸으므로, 다음엔 물감 채색의 화사함이 가득한 것을 그릴 것이다. 그다음엔 다시 인물화에 도전할 거다. 이번엔 진짜 남자다. 이런 그리고 싶은 것들이 많아지는 마음이 사소하지만 꾸준하고도 기쁜 설렘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또 하나, 그림의 매력을 알아가는 나를 보고 느낀 골 때리고도 웃픈 사실을 발견했다. 수익화라던가 그림조차도 좀 핫한 수채화를 그려보겠다던가 하는 야무지거나 트렌디한 행위는 참 나랑 안 맞는구나 하는 것이다. 초반에 적었지만, 나는 그냥 딱 보기에도 간단하고 쉬워 보이는 수채화만 할 생각이었고, 캘리그래피를 더해서 멀리 보고는 그걸 수익화도 해보고 싶다는 계획이지 않았는가. 하지만 나는 쉽게만 보이는 그 그림들은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아 졌다. 어렵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데, 유행도 아니고, 아무도 관심 없고, 그냥 나만 좋은 밋밋한 연필그림, 그냥, 평소에 내가 아름답다고 여기는 것들을 그리기로 하지 않았나. 허허

비록 돈을 버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졌지만, 보이는 것을 더 아름답게 보는 시선과 마음, 아름다운 것을 찾고 더 마음에 장착해 두려는, 다 자세히 보고 느껴보는 절대 가볍지 않은 일상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 철딱서니 없는 것도 같지만, 그냥 그런대로 그 자체로 좋다고 내버려 두기로 했다. 어떻게든 대세와는 거리가 먼 나. 인싸가 되고 싶지도 않지만, 체질적으로 먼 나.

 근데 솔직히 괜찮기도 하고,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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