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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해연 Jan 26. 2023

너 진짜 잘 돌아다닌다

쫄보의 운전공포극복사례

요즘 난 잘 돌아다닌다. 자차 운전을 시작해서다.


제목은 나의 그 모습을 본 남편이 한 말이었다. 그래서 나도 말했다.  

" 응, 맞아! 나 엄청 잘 돌아다녀!! "


부천에서 청주로 이사 오고 가장 맘에 안 들었던 건 대중교통이다. 교통체증이 적은 건 큰 장점이었지만, 교통 체증이 없을 수밖에 없을 만큼 버스 수는 적었고, 그나마 있는 것도 우리 동네를 지나는 버스 노선은 이런 뺑뺑이 뺑뺑이가 없었다. 임신했을 때조차 참을만했는데, 아이가 생기니 불편함을 넘어서 조바심이 생기고, 주변 사람들(전혀 눈치 주는 사람들이 아님에도)에게 부탁을 해야 하고, 이 눈치 어린 부탁의 끝은 과도하게 감사하는 상황들이 이어졌다. 주말부부라 더 그랬다.  


더 최악은 기분 탓인진 모르겠지만, 운전해 준다는 남편의 유세였다. 남편이 운전면 나는 고맙다거나, 고생했다고 꼭 할 정도로 감사한 마음을 장착한아낙네인데 런 고마움과 달리, 꼴사나움은 별도다.

솔직히 택시 타고, 가끔 버스 타고 다니는 생활 불편한 대로 적응하려고도 했다. 운전이 무섭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지만, 유지비 많이 든다는 핑계로, 환경에 좋다는 핑계로 버텨 보려고 했는데, 어떻게든 불편한 점들은 물리, 정서적인 것을 넘나들어 넘쳐났다. 마침내 나는 운전을 해야만 하는 가장 큰 이유를 찾아냈다.  



운전공포를 극복해 낼 것,

남편의 유세로부터 독립할 것.  2가지다.


그리하여 나는 작년 가을 운전연수를 시작했고, 연수 중에 내 첫차를 샀고, 끝내는 선생님 없이 홀로 첫 운전을 시작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거의 매일 혼자 운전을 하고 있고, 열심히 초보 운전 중이다.  



 이십 대 초반에 1종보통 운전면허를 장내에서 두 번이나 떨어지고, 운전면허시험장 앞에 세워둔 내 자전거 앞에서 어이없이 울어가며 결국에 면허를 땄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아빠차로 운전연습을 어렵지 않게 했는데, 장롱면허가 되어가는 동안 나는 이상하게 운전 공포가 심해져 있었다. 시험에 몇 번 떨어지긴 했지만, 분명히 연습 당시도 절대 공포 수준의 감정이 아니었다.  


"그래서 한동안 버스고, 차 타기 싫 했던 거 기억 안 나, 누나?"


친동생이랑 얘기하다 알게 됐다. 이십 대 중반쯤 버스사고가 있었다. 버스 맨 앞자리에 앉아있었고, 내가 탄 버스가 소형한대를 들이받은 것을 눈앞에서 봤다. 다행히 큰 사고는 아니었음에도 버스 앞부분과 사고당한 소형차의 손상은 상당했다. 사고 난 차에서 나와 우는 운전자, 나와 같이 버스에 내려 당황하던 승객들. 그 밤의 모습이 제서야 기억에서 비집고 나왔다.  

한동안 두려워하다가, '운전=사고=두려움'이라는 상황 없는 공식만 남긴 채 이유는 잊고, 공포만 남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면허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내가 언젠가는 운전을 할 거라고 마음조차 먹지 않았다. 막연하게 겁이 나서. (돈 아낀다는 이유도 있었고.)



 그래서 안 버티려고 했는데! 운전하는 남편의 예민보스는 점점 순한 양인 나를 거친 늑대로 내몰았다. 어디 갈 때마다 아니, 가기 전날부터 차 막히는 거 투덜거려, 주차 투덜거려, 가기 전부터 주차 투덜거려, 늦게 오면 늦게 와서 주차 투덜거려.  


그냥 ** 투덜거렸다.

투덜이스머프


그냥 평화롭게 어디든 가고 싶었던 나는, 태워주는 사람의 입맛에 맞게 늘 서둘렀고, 종종거렸고, 늘 긴장했다. 운전은 몰랐지만, 주차장은 있는지, 어딘지 가끔 알아보기도 했는데 하나같이 싫은 짓거리였다. 그런 행위 보다도 남편이 싫은 것을 하지 않기 위해서 내가 '과도하게 종종거리거나 긴장하는 게' 싫었다. (배우자가 싫어하는것을 하지않으려는 것 자체는 좋은행동이지만)


그래도, 제대로 운전 안 해봐서 몰라서 그런 줄 알고, 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나는 그 차를 탈 수밖에 없고, 아무 말도 할 수 없다는 현실에 점점 분개했다. 열받은 김에, 내 안의 공포를 극복해 보는 것도 진짜 해보고 싶어졌다. 운전 공포를 극복해 내는 것은 마치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이 그걸 극복하는 단계라고 보면 될까. 극복의 미학을 느끼리라. 실은 불편과 불만을 해소하는 게 급선무였지만, 막연한 두려움을 극복해 보겠다고 마음먹은 것 자체가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아, 결국 나를 일어서게 하시네,

땡큐 남편 ** 고마워.  



 운전공포를 극복하고 운전하는 나는 이제 아이를  태우고, 남편이 싫어하는 고양이 카페에도 가고, 그 복잡한 골목에 몇 바퀴를 돌더라도 차분히 주차를 할 곳을 찾고, 교통체증이 있어도 전혀 화가 나지 않고 오히려 여유 있게 운전대를 잡는다. 내가 차를 몰고만 갈 수 있다면, 아무도 시간을 가지고 뭐라고 하지 않는다. 청주 구석구석에 택시가 올 것 같지 않은 곳에도 차를 타고 가고 그 차를 타고 올 수 있다.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자리가 없으면 밖에 대면되고, 가까운 데가 없으면 다른 동에 대면된다. 목적지에 갔는데 주차를 절대 할 수가 없으면, 나와서 못 가면 그만이다.  


내가 신경 쓸 것은 그저 안전 운전이다.  


청주에 친구가 놀러 와도 터미널로 내가 데리러 갈 수 있다. 남편이 없는 평일에도, 아이가 아플 때나, 일을 하러 가야 하는데 아이를 급하게 부탁드려야 하는 밤에도, 아이를 태우고 그곳으로 내가 갈 수 있다. 누구한테도 굽신거리지 않고, 택시가 잡힐지 안 잡힐지, 잡혀도 거기까지 가줄지 아닐지 걱정 않고.  

책 보러 먼 곳으로 갈 수도 있다.


운전하면 다 저렇게 남편처럼 예민한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나는 (운전 자체에 긴장은 하지만) 꽤나 편안하고, 유연하고, 자유롭다.  

이제라도 해서 다행이다. 좋다.


차를 전혀 모르는 내가 차를 살 수 있게 모든 것을 알아봐 준 남편에는 참 고맙다. (진심)


홀몸이었어도 이렇게 뿌듯하고 자랑스러울 수 있을까. 완성형 쫄보인 나는 트라우마급의 운전공포를 극복해 냈고, 극복해 냈다는 것도 모자라 자유대견함까지 느끼고 있다. 그리고 많은 날 훨훨 청주 구석구석을 오다닌다.   

그런 나를 보고 남편이 얘기했다.


"너 진-짜 잘 돌아다닌다."


그래서 내가 대답했다.  


"응! 나 완전 잘 돌아다녀!!"  

(통역 : 응~ 너 운전 없이도 훨씬 자유롭고 편안해. 나 ** 잘 돌아다녀~! )


왜인진 모르겠는데 슈퍼주니어의 시원,려욱 에피소드가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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