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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해연 Feb 06. 2023

아무도 관심 없는 설거지 이야기

그치만 중요한 집안일



 끼니당 한 번만 미루어도 쌓이고, 두 차례나 미룬다면 산더미로 불어나는, 그러나 하지 않으면 물 한잔 마실 수 없게 만드는. 결국 해야만 하는 중요한 일.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누군가는 해야 하지만 귀찮음의 끝판왕, 대명사. 그 이름은 설거지. 나는 오늘도 아침저녁으로 설거지를 한다.
 10대 아니, 20대 초중반 까지도 설거지를 한 적이 거의 없었다. 엄마를 도운다는 생각도 없었고, 애초에 엄마도 나 공부하라고 시키지도 않았다. 그래서 하지 않았지만, 잠깐 해본 희미한 기억에 따르면 그저 더러운 그릇들을 거품 수세미로 닦고 건조대에 엎어 놓는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신혼 초 때까지도 그랬다. 부실했단 뜻이다.



 내가 아닌 남편(정리요정)이 설거지를 해 놓은 다음에는 뭔가 달랐다. 근데 그 뭔가가 뭔지 몰랐다는 게 맹점이다. 분명히 했다는 사실은 같은데 하고 난 뒤의 광경은 확연히 달랐다. 내가 한 뒤는 자연스러웠지만(이런 식으로 합리화), 남편이 한 뒤에는 눈에 띄게 깔끔했다. 비결이 뭐였을까. 좋아는 보였지만, 잘 까지는 할 생각이 없었기에 궁금해 본 적이 없지만 설거지에 대해 글을 쓰겠다고 앉았으니 이제서 한번 떠올려 봐준다.

 결혼 햇수와 동일하게 순수 설거지 경력 7년 차에 입성했으니, 이 짓거리에도 과정이란 게 추가 됐는데도 정리요정의 설거지 후와는 거리가 있는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하고 있는 이 짓거리, 대단한 일이라고 치켜세우고 싶어서 써보기로 했다.

 본격적으로 설거지를 하기 전에 할 게 있다. 건조대에 엎어져 있는 다 마른 그릇과 컵들을 제자리에 올려둔다. 컵은 컵대로, 국그릇, 밥그릇, 접시들, 이왕이면 크기별로 해두면 좋다. 그리하여 건조대는 새 젖은 그릇들이 갈 수 있게 비워둔다. 얼마 전까지도 하지 않았던 행위다. 내 설거지 후가 깔끔하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다.
 이렇게 건조대가 빈 상태를 만든 후, 수세미에 세제를 짜고 거품을 내서 그릇을 닦는 메인 업무를 시작한다. 고무장갑이 있지만, 끼지 않은 지 오래다. 육아가 시작된 뒤로 설거지 중에 아이한테 가볼 일이 많이 생겨서다. 고무장갑을 꼈다 벗었다 하는 일은 정말 귀찮고, 몇 번이나 반복하기에는 더욱 싫은 일이니까. 애엄마에게 고무장갑은 사치다. 대신 쌩으로 만져도 주부 습진이 생기지 않고, 손이 지나치게 건조해지지 않는 주방세제를 섭렵해 놓는다.
 물컵이나, 채소를 담았던 기름기가 묻지 않은 비교적 깨끗해 보이는 그릇들을 먼저 닦고, 점점 이물질이 많은 순으로 그릇의 종류를 옮겨간다. 숟가락 젓가락까지 물세척이 완료되고 나면 가스레인지 쪽에 놔둔 국냄비나, 프라이팬들을 닦는다. 기름기는 버리는 마스크나, 대충 쓴 키친타월등으로 닦아낸다. 이 큰 그릇 닦기들이 싫어서 매번 미뤄뒀었는데, 그러다 굳은 기름때는 정말 지독하게 지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안 뒤로 그냥 그때 그때 하려고 한지 얼마 안 됐다.

 나는 아무래도 좀 많이 대단한 것 같다. 설거지를 하는 많은 사람들이 기본으로 하는 일이지만, 나는 너무 하기 싫은 이 일을 매일 같이 하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대단하다. 솔직히 그렇다. 대형 조리 도구 세척까지 마치면 끝. 이러면 하수인 거다. 마지막으로 싱크대에 이물질이 없게 물로 한번 쭈악 흘려내 준다. 개수대에 고인 음식물찌꺼기도 쓰레기 봉지에 모아줘 본다. 박박 긁진 않는다. 그건 매번은 아니다. 언뜻 싱크대가 깨끗해졌다. 끝. 아니다.
진짜(고수에게는 아닐 수 있다) 마지막으로 행주를 접어서 싱크대 주변과, 바닥을 닦아낸다. 그렇지 않으면 물바다를 경험한다.
미안한데 더 있다. 설거지를 시작하기 전에 올려둔 전기포트에서 끓는 물로 아이 컵이나 숟가락 같은 것들을 대충 소독한 뒤 남은 뜨거운 물은 수세미에 부어준다. 그나마 기름기가 제거돼서 오래오래 쓰기 위함이다.

모든 과정이 필요하지만, 귀찮고, 언제 아이가 나를 찾을지 모르고, 빨리 가서 아이와 놀아주던지 책을 읽던지 해야기에 최대한 후다닥 해치운다. 세상 대충이지만 혹여나 음식물찌꺼기나, 거품이 마저 붙어있지는 않은지 확인하기도 한다.

장하다. 오늘도 한 차례 했고, 집에 들어가면 또 한차례의 설거지가 나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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