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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해연 Feb 02. 2023

서툰 우리, 가족

사랑은 쉬운 줄만 알았다.

 한 때, 배우 조정석 님(존중을 표하나 이하 호칭은 생략합니다)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가끔 가수 김종민을 닮았다는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나도 너무한 걸 알아서 말은 안 했지만 속으로 정우성, 장동건 같은 선이 굵은 남자배우들의 얼굴도 있다고 생각했다.
조정석 닮았다며 나대는 나를 두고 어떤 친구는 미안한데라며, 슬쩍 개그맨 박성광을 닮았다고 했고, 다른 사람은 더 조심스럽게 개그맨 정형돈을 닮았다고 했다.

사진제공 문화창고/ 내남편아니고 거미님 남편,내최고연예인 / 아, 한때 남편한테 '연예인'이라고도 나댔다 .



 조정석, 김종민, 정우성, 장동건, 박성광, 정형돈을 닮았다는 이 사람. 도대체 어떻게 생긴 지 가늠이 안 되겠지만, 그래 바로 내 남편이다. 콩깍지가 제대로 씌었었다. 미남배우 닮았다며 매일 잘생겼다고- 잘생겼다고- 해줄 때는, 본인도

'아니니까 제발 조용히 좀 해달라'고 어쩔 줄 모르겠는, 그렇지만 웃는 표정을 하는 사람이었다.
진짜.. 감사하자 남편.. 한 때나마 그렇게 생각해 줬던 여자가 있었다는 게.

연애시절 먹고 웃었던 스위트자몽..



 나의 콩깍지는 콩깍지도 아닌 줄 알았고, 설마 그게 콩깍지라 할지라도 영원할 거라 자신했다. 당연히 콩깍지는 사실이고 현실이었고, 벗겨지다 못해 까발려졌다. 아이를 낳고서도 난, 엄마가 되면 행동은 아이를 우선시하겠지만, 마음은 변함없이 남편을 뒤로하지는 않을 자애로운 아내가 될 것이라 말했다. 그 자신은 자만이 되어 무너지고 지하 땅굴로 파고 들어갔다. 아이를 낳고 나니, 아이의 얼굴이 이토록 귀엽고 옆얼굴의 선까지 이렇게나 부드럽고 동글동글 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남편의 얼굴을 봤는데, 세상에 이런 큰 바위 대왕킹바위 얼굴이 얼굴이 아닐 수 없다. (나도 별 수 없지만) 후.

남편, 아빠가 된 구남친, 우린 둘에서 셋이 되었다.


  
 웃프게 표현하긴 했지만 말하고자 하는 바는 남편의 외모가 아니다. 남편을 바라보는 내 시선과 인식의 변화다. 콩깍지에 씌더라도, 낭만적 사랑을 추구하던 나는 최근, 벌써 몇 해 동안 이런 변화에 낙심했고, 심심했고, 한심했다. 아이가 신생아시절까지만 해도, 꽤 좋은 부부사이와 대화 예절과 품위를 지켜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이 핑계를 대서 미안하고, 부끄럽긴 한데, 아이가 커갈수록 남편과 나는 부딪칠게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나는 정서적인 면과, 집안에서 느끼는 부당함들에 예민해져 갔고, 남편은 주로 물리적인 위험이나, 외부의 안정성, 집안 내부의 청결 같은 것들에 더 예민해져 갔다. 처음엔 남편이 변했다고만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남편도 육아가 시작되고 처음 보는 자기 모습이었을 것 같다. 분노와 서운함은 많아져 가는데 말을 할 시간도, 말을 할 체력도, 여유도 없었다.
 
나는 오랫동안 나쁜 사람이 되어있었다. 마음엔 많은 순간 남편을 향한 분노가 가득했고, 실제로 험담도 많이 했다. 당연히 들 수밖에 없는 분노였지만, 그 분노를 아이 앞에서 표출하지 않는다는 핑계로 착한 사람인척 했다. 머리와 가슴 악을 품고.
괴로웠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라고 조건 없는 사랑을 말했던 죽기 직전의 예수님 말씀을 기억한다. 듣는 순간 내 인생의 모토가 됐다. 그런데 누구보다도 사랑과 거리가 먼 사람이 되어있었다. 내가.
가장 쉬운 게 사랑이라고 생각했고, 모든 문제의 실마리는 사랑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가장 가까운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를 위해서나, 아들을 위해서나, 남편을 위해서나, 결국 모두를 위해서 개선하고 변화해야 했다. 그래서 나는 작년 겨울에 가까운 가을 무렵부터는 나름의 방식대로 그 사랑을 다시 새로운 방식으로 지키고 키워가려고 노력 중이다. 마음을 참지 않고, 서툴러도 말로 표현하고, 남편이 싫어하는 건 더욱 하지 않으려고 하고, 웬만하면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은 좀 더 부지런해 보려고 하는 것 등. 다방면에서 그렇다. 그것들이 쉽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싫지도 않았다. 좀 아쉬운 건 나. 만.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친구와 나는 맨날 이랬다.
"아니, 왜 맨날 그 노력을 우. 리. 만. 하냐?"
억울하다고나 할까.


 그렇게 나만 애쓰는 줄 알았는데, 저번주에는 남편도 그러하다는 걸 느꼈다. 오랜만에 집에 와서 하는 말은 잔소리 투덜이던 사람이었다. 그럴 만도 한 게 나는 물건을 고장내거나, 잃어버리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TV 리모컨 배터리 뚜껑은 잃어버리고 못 찾은 지 3주 차 됐고, 상다리하나는 부러져서 조마조마하게 쓰고 있은지 2주 차 되던 때였다. 그날에 남편은 아직도 안 찾았냐는 말대신 한참을 앉아서 뚜껑을 만들고, 상다리를 고치고 있었다. 포인트는 고쳐줬다는 게 아니라 그전에 내 행동에 대한 한마디 투덜거림도 없었다는 것이었다. 또 다른 변화가 있을 것 같지만 그뿐이다. 그뿐이, 그 하나가 아주 큰 긍정적인 메시지이고 변화였다.
구 잔소리 대마왕, 정리요정 남편도 노력하고 있다는 게 과감하게 느껴지니, 좋았다. 이어서 나도 힘을 내서 꾸준히 노력하고 잘 살아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남편보다 절대적으로 내가 아이와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나만 엄마인 모습이 익숙하다고 생각했는데, 남편도 오글 탕 쪼글탕하는 톤으로 아이를 대하고, 나와는 또 다른 자기만의 방식으로 아이가 좋아하는 것들로 육아에 자연스럽게 임하는 아빠가 된 남편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나름대로 '해나가고' 있다고 느꼈다. 엄마가 되니, 남편이 나한테 뿐만 아니라 아이에게도 특별히 잘해주는 게 느껴지면 마음이 풀어지고 편안하고 풍족해진다.

아이를 낳고 나서 알게 된 면인데, 육아에 있어서 나는 예민한 사람이었다. 이것저것 따지는 것 좋아하는 그림의 예민이 아니라, (그렇게 따지지 못할뿐더러.) 아이의 일상과 정서 전반에 엄마의 촉각이 필요이상으로 서있다는 뜻이다. 남편은 다행히 나와는 다르게 정서적인 면에서 평탄한 편인데, 안전 같은 외부 요인에 예민하더라. 이런 것들이 부딪치고 쌓이면서 우리는 화목한 가족의 모습과 멀어지는 듯까지 했다. 아이의 교육에 있어서 최고와 최선은 부부의 사랑이라고 누누이 기준점을 잡고 있던 나였기에, 절망이 더 컸다. 쇼윈도로 살아가긴 싫은데. 이렇게 살다 간, 이혼만 안 했을 뿐, 결국에 나도 내 아이에게 내 부모가 나에게 보여줬던 악습을 끊어주긴 커녕 답습하는 최악이 되는 건 아닌가 걱정했다.



그러다 나는 어색하고 싫었지만, 변화를 위해 애썼고, 남편도 그러했다. 내가 남편이 그러함을 느꼈던 것처럼, 남편도 먼저 그것을 느꼈던 걸까. 우리는 더 좋은 우리, 부모, 부부를 향해 힘내고 좋은 의미로 인내하고 행동했다.

 빛나는 잘생기거나 싱그러운 앳된 얼굴, 서로를 향한 낭만적 로맨스는 사라졌어도, 염색약 이마에 묻혔다고 투덜거려 가며 결국은 누군가의 흰머리를 염색해줘 가며, 서로를 반반씩 닮은 생명 하나를 영혼 갈아 넣어 키워가며 살아가고 늙어가는 우리의 모습은 지극히 평범하고, 감사했다.



 상대가 멋지고, 이쁘고, 나를 먼저 사랑해 줄 때, 나도 그를 사랑하는 일은 쉬웠다. 반면 그 사람이 변하고, 때론 나를 향해서 돌을 던질 때, 그때도 그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예상하지 못한 어려움이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라고 하지 않았는가. 방법이 방법인지 모르겠고, 하는 게 잘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사랑하고 있다. 오늘의 무탈함이, 감사함이, 딱 거기까지 길 바란다.

 어려울 때조차 끈을 놓지 않고, 함께 걸어가는 우리의 모습이 감격스럽고, 때론 미래가 기대된다. 대단한 걸 바라는 게 아니다. 그냥 그 자체로 성장해 있거나, 함께 늙어가고 있을 우리 모습이 감격이 될 것이란 걸 안다.
사랑, 어렵지만 해볼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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