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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해연 Apr 25. 2023

엄마의 치킨과 침대

병결 육아 생각

아 치킨 먹고 싶다.  


정확히는 한밤중에 시켜 먹는 바사삭 치킨. 평소 같으면 양념치킨이 기겠지만, 한밤중에는 이상하게 바삭함이 살아있는 오리지 후라이드가 땡긴다. 한 번은 그냥 먹고 한 번은 양념 찍어먹어야지.  

이런 상상을 다. 한밤중에 치킨 먹는 상상.


아이가 연거푸 유행성 질환에 호되게 걸리는 바람에 엄마인 나는 약 3주 동안 사생활이 올스탑이었다. 그래봤자 아이가 어린이집에 갔으며, 나도 학원일을 쉬는 날 혹은 가기 전 알차게 하곤 했던 소소하지만 내 딴엔 대단한 마음으로 유지했던 취미활동들. 이를테면 지금 하는 글쓰기, 책읽기, 일주일에 한 번씩 가는 미술수업,10분 정도씩은 해보려고 했던 홈트레이닝. 그리고 멍 때리기. 하물며 아이가 잠든 밤에 깨지 않고 편히 자기. 모든 것들이 일시정지 된 것이다.


 아이가 아직 없을 때는 내가 아프면 그냥 병원 갈 수 있음 가고 그도 아니면 약이나 먹고 푹 쉬면 됐는데, 그도 아니면 그냥 좀 서러운 건 아파도 일해야 하는 것뿐이었는데, 아이가 아프다는 것은 정신 육체 모두 고돼도 너무 고된 일이다. 더군다나 육아할 때의 마음이 예민한 축에 속하는 나는 아이가 아플 때 정신까지도 많이 혼란을 타는 탓에, 약국에서 파는 한방신경안정제인 안정액이나 우황청심원 같은 약들을 사서 몇 번 털어 넣기도 한다. 그리고 아이가 잘 못 먹음과 동시에 식욕을 싹 잃고, 먹을 시간도 잃어서 그전엔 그렇게 빠지지도 않던 살이 빠지기도 한다. 볼품없게.  


 아이가 밤에 불편한 속에 괴로워하고, 자다가 속을 다 비워내고, 작은 몸으로 놀라서 울다가 겨우 진정해 다시 자면서도 괴로워하고, 아침나절부터는 열이 나서 앓다가, 겨우 병원에 가서는 작은 손에 링거바늘을 꽂았다. 그렇게 회복이 되기까지 일주일을 꼬박 조심해 가며 버텼는데 일주일 만에 다시 지독한 유행성 감기에 걸렸다. 시작은 내가 먼저였다. 좀처럼 감기에 걸리지 않는 나인데 이번에는 목이 까슬까슬한 거로 시작해서 목소리가 완전히 나가버린 게 3일을 넘어갔다. 목이 쉬니 소리를 내는 데도 평소보다 힘이 빠지고, 이렇게나 목이 가버렸다는 사실 자체가 힘이 빠지는 이었다. 그래도 열이 나는 건 아니어서 버틸만하다고 생각할 때 즘 아이가 콧물과 고열증상이 시작됐다. 제발 그 하루로 끝나주길 바랐는데, 그다음 날부터는 고열과 기침이 시작됐다. 나도 동시에 기침이 나왔다.


 아이와 엄마가 동시에 콜록대는 꼴이라니. 참 가관이었다. 기침은  보기엔 별게 아닌 것 같은데 그 작은 몸으로 열과 기침을 하는 것은 그렇게 힘겨워보일 수가 없다. 이번에 나도 기침과 며칠밤을 동침해보고 나니 기침은 내 의지대로 멈춰지지도 않을뿐더러, 자꾸 온몸에 기운을 빼놨다. 같은 증상이어도 만 4살이 버티기에는 더 힘겨웠을 터. 아이는 3일 이상을 열과 기침과 싸웠다.  관건은 잘 때였다. 자다가 기침하다 울다가 다시 내장이라도 토할 듯이 무섭게 콜록 이 아니라 걸럭거렸다. 아이가 잠들 무렵즘 나도 자꾸 열이 올랐지만, 몸져누울 수 없었다. 다행히  몸져누워 아무것도 못할 정도는 아니고 눈에 띄게 컨디션이 저조해지고 으슬으슬해지고, 침대가 몹시 고픈 정도였기에 엄마인 나는 타이레놀이나 하나 털어 넣고 작은 아이의 단잠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이 감기는 과연 끝나는 것일까.


다행히 아이는 가래가 많이 끓고 숨쉬기가 어려울 정도의 기침 종류는 아니어서 폐렴으로 넘어가지 않고, 기침이 아주 조금씩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그때 꽃가루 바람이 날리기 시작했고, 비염으로 콧물과 간헐적인 재채기가 시작됐다. 그 기침과 콧물과 재채기가 끝나고, 나의 열도 기침도 끝물이 보여간다. 그럴 때 즘 달력을 보니 4월 말이었다.

봄의 지독한 끝이고, 4월이었다.


 단순 유행성 질환, 그럴 수 있는 소화기 질환. 어린아이들이라면 으레 걸릴 수 있는 가볍다면 가벼울 수 있는 증상이었지만 지독했던 이번 시간을 보내던 어떤 밤에 나는 처음으로 이 아이를 세상에 나오게 한 것을 잠깐 후회했다. 내가 낳게 해서 이 고통을 느끼게 한건 아닌지, 지켜주지도 못할 거면서 낳은 건 아닌 건지 싶어서. 그리고 그 아이를 구태여 낳고, 아픔을 지켜보고 지키면서, 아픈 나는 몸져눕지도 못하는 것을 보고 그냥 단순하게 몹시 피곤했다. 피곤한 것도 좀 편하게 피곤해보고 싶었다. 말 같지도 않은 생각인 걸 알지만, 그래서 이렇게 쓰는 것도 부끄럽지만, 솔직히 순간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게 무슨 사서 고생인 냔 말이다.


 다행인 건지, 애석하게도 인지 모르겠지만 모든 것은 다 지나간다 이 밤도.


 아이가 회복세에 들어감에 따라 자연스럽게 내 마음에도 책한장이라도 읽을 수 있는 여유, 무언가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 여유가 생겼다. 이번엔 치킨이었다. 그런데 저녁때 끼니로 때우기 위해 먹는 치킨 말고, 밤에 다 큰 성인들과 술이랑 같이 먹던 새벽녘의 시끌벅적하고 바삭한 그 치킨이 먹고 싶었다. 그렇지만 삼십 대 중반에 이르니 이제는 야식을 먹고 싶어도 역류성 식도염이나, 단순소화불량, 다음날 찌뿌둥한 그 느낌이 싫어서 선뜻 도전할 수가 없다. 아이가 있어도 좋으니, 제발 강철위장이라도 되어있어 주면 좋으련만, 아쉽다. 치킨과, 야식. 이 평범하고 단순한 들이 너무나도 땡겼다.


 사생활이 올스탑인 와중에 너무 그것들이 간절해진 나머지, 지금의 이 마음이 학창 시절 때 아주 조금 비슷했던 것을 떠올. 중간이나 기말고사 시험기간이 되면 공부량이 많아지고 생활에 제약이 많아지는 탓에 시험이 끝나면 하고픈 것들을 포스트잇에 적어놓던 그 . 근데 그 마음은 순진함을 더해 더 애절하고 간절하지만, 중간고사가 정확히 언제 끝난다는 시간이 정해져 있기에 더 숨이 막힐 듯하고 싶었다면, 지금의 느낌은 그것과 다르다. 자유에 대한 갈망이 분명 간절하다는 것은 동일하지만, 언제 이 시기가 끝날지 모른다는 것, 끝나도 아픔 이후에 오는 특유의 불안이 털어지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아이의 아픔이 끝나도 실은 완전한 자유는 아님을 안다는 것에서 간절하지만 그 간절함을 대단하게 꼭 이룰 것이라는 엄청난 희망을 부여하지는 않는다는 차이가 있다. 그리고 그게 사치라고 느껴져서 지레 먼저 포기하게 되는 것도 있고.


 아이가 각종 질환에 시달리며 크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그것들 하나하나에도 마음을 졸이며 그나마의 적은 자유도 다 바닥 깊숙이로 내려놓았던 내가 하고 싶었던 것들은 이러하다. 마치 본업이 작가인 처럼 하루종일 글쓰기, 읽고 싶은 책을 쌓아두고 한 권 한 권 데려가며 읽어주기, 그러다 또 글쓰기. 치킨 먹기, 치킨 하나 뜯고 맥주 마시며 글쓰기, 남이 해주는 안주 먹으면서 술 마시기.

그러다 양치만 하고 자기.


작년 봄의 어느 날은 풀 숲에서 웅크리고 앉아 자고 있는 고양이신세가 그렇게 부럽더니,

오늘은 며칠밤의 바다잠수를 하고 해변에 올라와 몇 시간을 내리 자고 있다는 바다표범의 신세가 그렇게 부러운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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