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해연 May 18. 2023

엄마 김간사

단순하고 맑은 눈을 소망하며

가장 최근의 글에서 나는 '나에 비추어 보았을 때' 인간의 마음은 참 간사하다 고 썼는데, 그 문장이 끝나기 무섭게 내 안의 간사함을 또 발견한다.

아무 생각 없이 한번 해보는 데 거부감은 없을 정도의 재미는 있을 것 같아서 시작했다가, 그렇게 시작을 한 게 글쓰기였다. 막상 시작을 하며 에세이의 세계를 조금 알게 되니 글을 잘 쓰고 싶어 졌다가, 그 글을 그냥 잘도, 많이도 아니고 '꾸준히' 써보고 싶다고 마음먹은 가장 큰 이유는 이거였다. 말문이 터진 아이의 어록이 담긴 그 순간들을 기록하기 위함. 더 크게는 어느 많은 찬란한 순간들을 남겨두고 싶어서였다.

글 쓰는 많은 사람들이 글쓰기의 장점으로 감정의 해소를 들던데, 그것에 조차 흥미도 특기도 없는 나는 일기가 아닌 에세이 형식이라면, 많은 상황에서도 이왕이면, 좋은 것들을 혹은 그런 생각들을 쓰려고 했다. 실상 글을 쓰는 행위 자체가 좋게 느껴져서 아무 목적이 없기도 했다. 심지어 나는 감정의 해소는커녕 더욱 몰입해서 때로는 글을 쓰지 않았다면 덮어두고 갔을 마음과 상황들을 더 깊게 마주해 글을 쓰는 내내 실제로 악몽에 시달려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는 것을 놓지 않았고, 내 딴엔 적게나마 꾸준히 유지하는 것에 익숙해져서 만족하고 있는데, 내 글과, 그 글을 쓰는 요즘의 내 마음을 잠깐, 멈추어 바라보고 싶어졌다.  아이의 어록을, 혹은 그게 아니라면 인생의 찬란한 순간들을 기록하겠다던 나는 온 데 간데없고, 솔직한 내 속은 지금 온전히 '나의 좁은 것'들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글을 예시로 들었지만 글은 곧 나의 시선이고 마음이었고, 삶이었기에 분명 바라볼 필요가 있었다.

맘 편히. 쉬고 싶고, 몸 편히. 자고 싶고, 먹고 싶다. 그 시간조차 아까워서 꼭 필요한 육아와 가사의 일들만 끝내면 책을 들고 펜을 든다. 아이와 더 잘 지내려고, 읽지만, 육아책을 읽는 시간은 왠지 아깝다. 육아를 제외한 다른 분야의 책들을 선호한단 뜻이다. 저녁은 뭘 먹어야 하나 뭘 해야 하나 생각하는 건 딱 질색이다. 사 먹는 건 미안하고, 직접 해서 먹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은 있지만 의무만 있어서 그 과정은 역시 신물이 난다. 하물며 주말에 아이랑 무얼 해야 하는지, 여행은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하는지, 챙길 게 무어는 있는지 계획하는 것. 하긴 하는 데 진짜 딱 싫다.  


 이렇게 써놓고 보면 얼마나 내 속이, 내가 못났는지 딱 보여서 순간 정신이 차려진다.

어차피 하는 거, 즐겁게 오늘은 무슨 기쁜 일이 일어날까? 오늘 저녁은 무엇을 준비할까? 집은 어딜 청소하고 어떻게 꾸밀까? 조금 귀찮던 그 일들을 끝내고 나면 얼마나 눈과 마음이 상쾌할까? 이 일들을 부지런히 끝내고 나면 펼쳐든 책에서 페르난두 페소아는 또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중에 나는 어떤 문장을 공책에 옮겨 적을까? 글은 어떤 걸 써볼까? 아이가 돌아오면 무얼 하며 놀면 좋을까? 어제 읽었던 육아메시지 중에 무엇을 실천해 볼까? 우리 아이는 오늘 또 어떤 어록을 남겨줄라나?

 이렇게 하루의 시작과 중간과 끝을 살아가는 나의 모습은 얼마나 기특하고 이상적인가.

실제의 나는 그나마의 일들조차 억지로 겨우 해내고 하고 싶은 일도 겨우 조금 하고 아이를 만나러 간다. 근데 쓰기만 이렇게 써서 그렇지 실제로 나는 한 게 많다. 잘 살아 놓고도, 채찍질과 자책의 굴레를 스스로 쳇바퀴 굴린다. 그게 아니라면, 나를 치켜주는 데는 꽤나 가식적인 의식적인 노력이 든다.

목적지만 정해놓고 그냥 가던 여행. 특별한 게 없어도 같이 가는 그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이 즐거웠던 여정들. 혹은 계획이 필요하던 때에도 적당히 짜고 계획적 인간들에 피해가 가지 않게끔만 맞춰주면 됐던 날들. 어떤 날들에서 등장하는 변수는 (나를 괴롭히는 가족사를 빼고는) 별로 없었을뿐더러, 어떤 변수들은 당황스럽거나 힘들게 하는 어떤 것이 아닌 가끔은 오히려 실소를 가장한 진심이 섞인 웃음거리가 되기도 하던 날들.

소싯적 학원일을 끝내고 집에 도착하는 10시가량의 시간이면 그 때야 먹는 저녁이 서럽다며 혼자 처량 맞게 이것저것 먹으며 쓰린 속을 달래곤 했는데. 그 시간에 밥을 먹고도 아무렇지도 않던 위장과, 적당히 매운 거든 뭐든 내 맘에 드는 거 골라 먹을 수 있던 그때, 끝나는 하루를 붙잡기 모자라 시작하는 하루에도 질척거리며 결국 새벽 3시에 자도 4시에 자도 생각해 보면 버틸만했던 날들의 체력.

이제 내가 아프면 집에서 조차 쉬지도 못하기에 건강을 해치는 사소한 습관에 조차 마음을 놓지 못하기에, 별게 다 부러움으로 떠올랐다. 아니, 이런 식으로 지난날 나의 짙은 불평들이 부러워질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아침에 알람 없이 자보고 싶은 것 말고도 최근에 하나 더 소망이 생겼는데, 모두가 잠든 밤 '술집'에서 '남이 해준 안주'랑 '술'을 마셔보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다시 그 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것 까진 아닌데. 그냥 그렇다- 고 하는 것이다.

장난치다 낀 머리카락 빼주시는 시아버지와, 그 밑의 아이. 나는 이런것도 즐겁다고. 삶에 재미가 얼마나 많냐 말이다.



 아프지만 말거라. 너도 나도, 우리 모두 건강만 하자며 불안에 가까운 비정상적인 마음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고 또 다른 하루를 시작한다. 정작 모두가 건강한 순간에는 그나마 주어진 자유를 붙잡으며 질척거린다. 때론 아무 생각 없는 사람들의 아무 생각 없는 일상들이 더 현명하고 속은 참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절대로 그렇게 살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청소를 하고도 빨래를 개고도 밥을 하면서도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기쁘게 순간을 만끽하는 지혜롭고 현명한 언젠가는 왔음 하는 나의 모습 고대한다.

그래서 많은 순간 초심으로, 많은 것들을 찬란함으로 바라보고 글에 옮기는 이의 단순하고도 맑은 눈을 바란다.  

일상에 더 힘껏 감사하자 나야.
작가의 이전글 달의 위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