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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해연 May 26. 2023

6살 남자의 고백

이은 팔불출 엄마의 고백

오래간만에 일상의 찬란함에 취해보려고 한다.  

어젯밤, 이부자리 위에서 만 네살 아이와 함께 누워 잘 준비를 하는데, 아이가 대뜸 이런 말을 했다.


"나 나중에 어른되면 엄마랑 결혼할꺼야!"


제발 잠이나 자려고 애써 만든 고요를 깨는 박장대소가 나왔지만, 다음 대사가 더 급했으므로 웃음을 진정시키고, 연유를 물었다.


"아빠랑 결혼 한 번 했으니까, 나랑 한번 더 해야지~!"


세상에나.  

아들이 엄마와 결혼하고 싶다거나, 딸이 아빠와 결혼하고 싶다 하는 것은 아이들만이 할 수 있는 발칙하고도 귀여운 상상이지만, (어렸을 때) 애어른이었던 나는 되게 유치하게 여긴 다른 애들만의 언어였다.  그 애어른이던 애는 정작 지어른아이인 어른이 되어 있는 듯 하지만, 용케 아이도 한명 키우고 있다. 저 말을 직접 들을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들어보지 않은 자의 허세였던건지 내가 여전히 유치하게 생각하고 있었다는걸 알았다. 근데 막상 들어보니, 오늘이 뭐냐 햇수로만 6년 동안의 육아피로 따위는 저 세상일이 됨과 동시에 에너지 배터리가 풀로 충전되는 듯 했다. 나란 사람 그렇다, 이렇다. 이어서 '나는 성공한 엄마'라는, 도가 지나친 걸 알지만 그정도로 미친듯한 생각까지 마구 들었다. 이어서 이성의 부모랑 결혼한다는 레파토리는 아이들의 흔한 대사였지만, 동성의 부모랑 결혼을 해봤으니 본인이랑 한번 더 해봐야 한다는 논리는 여섯살의 머리로 꽤 그럼직해 보다. 엄마를 동성동본도 아닌 내 배로 낳은 핏줄과 재혼시키려는 무근본의 생각이 이토록 쾌감가득 행복으로 다가올 수 있는 거는 이 시기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리라.


 한편 아이의 이 결혼 발언이 보다 극적으로 다가온 데는 나름이 이유가 있었다. 아이가 학령기 전단계인 어린 나이기도 하지만, 껌딱지거나 말거나 엄마에 대해서 무한애정을 보여주니, 나는 이 남아가 여성외모에 대해서 별 관심이 없을 거라는, 자만이나 교만에 가까운 이상한 착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가 작년부터는 긴 생머리의 여성을 선호하며, 반대로 짧은 파마스타일에 대한 불호 알고 나서 슬쩍 내 외모도 긴장을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집에서 그 어느 때보다 후줄근한, 재작년인가부터는 긴 머리도 칼단발로 자른 채 유지하고 있는 엄마인 내 모습에도 가치판단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결코 좋지만은 않은 긴장을 유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같은 날 낮에는 내 유튜브를 틀었다가 우연히 나온 여자 아이돌인 '아이들'의 'Queencard'(최근 나도 좋아서 보고 있었) 무대를 보자마자 대뜸,


"나 이 '누나들' '다아'."     


라고 다. 만 네 살 아드님께서.

사진제공. '뮤직뱅크' _ 나도 매력 마구느끼는 아이들님


이모들 아이고요, 사람들 아니고요, '누나들'에서 한번 웃었고, 한 명 아니고 '다 좋아'에서 두 번 웃었고요. 앞에 엄마라고 부를 숨도 없이 말했고요. 실상은 놀람과 동시에 웃겨서 거의 울다시피 했다. 맨날 포켓몬스터, 유라야 놀자 같은 어린이 프로만 골라보던 녀석. 초등학생정도의 누나가 아닌 성인의 몸놀림을 화려하게 취하고 있는 그녀들을 향해, 이 '누나'들 다 좋다니. 뭐냐 너? 이 아이도 어쩔 수 없는 남자구나 싶었고요. 서른다섯 먹은 칼단발의 하필 그날따라 더 퍼져 보이는 반팔에 민낯은 덤이요, 트레이닝복 바지 차림의 엄마는 하등 필요 없는 위기감을 느꼈다. 그래서 내일모레에는 미용실에 들러서 이미 단발인 머리에 더 각을 세워 칼단발을 만들 요량이었는데, 정말 끝만 다듬는 정도로만 하고, 다시 머리를 길러야겠다고 생각했단 말이다. 이어서 긴 머리가 어울릴만하게 몸이며 얼굴이며 스타일링도 힘써볼 것을 대단한 것인 양 마음먹었던 참이란 말이다.


 그랬는데 불과 몇 시간 지난 후에 나랑 결혼하고 싶다니. 아이들의 긴 생머리 키 큰 퀸카누나랑 결혼하고 싶은 거 아니었냐고 아들아. 위기감이라고 했지만, 실은 이런저런 생각과 발언들이 성장의 일환인 것 같아서 신기하고 신비스럽고, 이어 그 아이의 변화에 엄마인 나까지 기특해지는 순간의 연속이었다. 불과 어제까지 나는 육아생활 특유의 하등 한 불안감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왜 이 쓸데없는 것에 쉽게 마음을 놓지 못하고,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인지, 심리상담을 받으며 도움을 받아볼까, 지금처럼 꾸준히 책과 취미생활을 유지하며 혼자 행동변화를 꾀해볼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글에서도 자꾸 답답하거나 어둡거나, 부정적인 것들에 집중되는 것에 스스로 불만을 느끼고 있었다. 오늘의 아이 발언과 생각과 찰나와 웃음들에 의해서 그 답답한 시선이 한 번에 사라졌다는 건 아니다. 오늘따라 일상에서 아이의 언어에 많이 웃고, 그 언어에 집중하며 기쁨을 발견하고 크게 기뻐하고 있는 나와 동시에 앞의 것들에서 그 순간만큼은 해방된 나를 자주 보았다. 이 모습도 내 모습 이었지.

이어서 이유가 있이도, 없이도 좋았다.  


그래, 나는 일상의 찬란함에 취해도 충분한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한동안의 일상 BGM  아이들 'Queencard'가 될 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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