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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해연 May 12. 2023

달의 위로


 모두가, 아니 아이가 잠든 밤. 삼분의 일쯤 남아있는 창 사이로 비집고 나오는 빛이 유난하다. 이 빛은 아파트 앞동에서 아직 깨어있는 자들이 켜놓은 전등이나, 거리의 가로등 불빛이 아니다.  내가 좋아하 끌리는 빛. 애써 손으로 가릴 정도로 피로하게 강력하지 않지만 충분히 강하고 환한 줄기를 굳건하게 자아내는 빛. 적극적이지 않고 무심한데 따뜻함은 충분한. 그 빛은 잔잔하면서도 영롱해서 주술적인 힘이 느껴질 지경이다.

달님. 특히 이렇게 창을 유난하게 뚫고 나오는 빛일 때면 영락없이 보름달이거나 그에 준하는 둥근달이다.  


요즘 나와 아이는 방을 내버려 두고 거실에 나와 자고 있는데, 최근 부쩍 겁이 많아진 아이 때문에 머리 뒤쪽으로는 안 켜던 수유등도 켜놓았지만, 머리 앞쪽으로도 완전히 어두운 것이 좀 그래서 거실 커튼도 삼분의 이 정도만 치고 나머지 일 남겨두었는데, 그 틈사이로 달이 휘영청 떴다. 구름도 한 점이 없다. 실은 먹다 남은 솜사탕 같은 구름 두덩이 정도는 있었다. 오늘도 육아에는 몸을 갈아 넣은 듯 하지만 실질적으로 한 게 없어 뭐지 싶으면서도, 드디어 잠을 재우는 시간이구나.라고 안도하며 누웠는데, 늘 그랬든 내 마음에는 형언하기 어려운 불안의 잔재가 깔려있던 참이었다. 

그때 이런 식으로 달님이 우리 집을 찾아와 줄 때면 마음이 언제 그랬냐는 듯 환해지고 안정이 찾아온다.



 밝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화창한 낮을 선호 하지만, (오래된 흐림이나 우천의 날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얘기) 휴식이란 이유로 어둠이 주는 평균적인 공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밤의 선선함과 밤에만 느낄 수 있는 서정을 좋아한다. 그 밤에 달까지 나와 함께 해준다면 더할 기쁨과 만족이 없겠다.  


이유는 모르겠는데, 달님은 모름지기 실제로 나가서 직접 보는 것보다, 이렇게 나나 우리가 누워있는데 창문을 뚫고 나와주는 그 님이 더 반갑고 낭만 있고, 신성하다. 지금 생각났는데, 밖에서 그 님을 향해 고개를 들 때보다, 보통은 누워서 발끝을 비추는 달빛을 발견하고 그대로 누워, 혹은 일어나서 창에 기대 그를 바라볼 때 나와 그가 아파트 8층 높이만큼 더 가까워졌기 때문인 것 같다. 오늘따라 완전히 우리 집 창문을 바라보는 내 시선에서 12시 방향에 떠있는 달님이 오로지 나만을 위해 떠준 것 같다는 착각이 들었다. 착각이어도 감개무량할 정도로 좋으면 된 거 아닌가.


이 영광을 함께 나누고 싶으니, 아이와 함께 달님께 소원을 빌자며 소원을 빌고 끝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는 신앙의 표시인 성호경을 그었다. 골 때리는 엄마다. 나란 사람.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혼합 신앙인건지. 다행히 아직은 그렇게 이성을 따지지 않아도 될 것 같은 6살이랑 따뜻한 달님의 빛에 기대어 손을 꼭 잡고 잠을 청한다.


그 아이는 잠에 들고, 달님은 깨어있고, 나도 눈을 떴을 때. 이 님이 주는 위로를 기억하고 싶어서 이 글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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