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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해연 Jun 16. 2021

평범함의 감사함

2021년 봄과 여름 사이의 기록 2

  나는 아기의 기침소리 하나에 덜컥 마음이 떨리고, 친정엄마의 자다 깬 목소리에 어디 아픈 건 아닌지 가슴을 졸였다. 어머님은 아버님이 요즘 유독 피곤해하는데 당신이 주시는 영양 식품은 드실 생각도, 보약은 지을 생각도 안 한다며 큰아들에게 전화해서 돈을 주며 너희가 좀 보양식품 같은 거를 사다 다 오라며 울먹이셨다.


  아기가 입원을 하고 퇴원을 했어도 결국 한 달쯤 만에 시댁을 찾으려던 날의 공기와 뙤약볕은 고사이 덥고 뜨거워졌다. 이럴 땐 아무것도 안 해도 밖엘 안나가고 집에서 피신을 하고 싶은데, 우리가 도착한 오전 11시 몇 분쯤에도 어머님 아버님은 벌게진 얼굴로 밭에서 캔 감자를 사료포대에 담고 계셨다. 늘 하시던 일인데, 요즘은 몸이 힘들게 일하시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그렇다. 아기 낳기 전에는 손에 꼽을 정도지만 새벽이나 아침 언저리에 나가서 돕는 시늉이라도 했었는데, 지금은 아기랑 있기 바쁘고 더 받기만 하는 느낌이다. 게다가 아기를 낳고 나서 더 가족 같아졌는지 시부모님을 대하는 내 목소리에는 연애나 신혼 때만큼의 애쓰는 상냥함은 사라지고 편하다는 핑계로 본래의 무뚝뚝함이 더 배어 있다.

 왠지 모를 아쉬움과 죄책감스러움도 잠시. 함미 하지지 댁에서 주관을 마음껏 펼치고도 온갖 사랑을 받는 아들의 모습, 모든 모습이 그저 좋은 어머님 아버님의 모습이 나는 또 좋다. 그나마 풀어 헤쳤을 때 이뻐보이는 긴 머리는커녕 질끈 묶어도 도저히 정갈한 상태로 있지 않아 꿉꿉한 나의 모습도 슬쩍 용인이 된다. 아직 약을 먹고 있긴 하지만 감기가 제법 많이 나아 병원이 아닌 집에서 건강을 찾고 있는 아들의 모습도 감사하다. 회복하는 아들 자체에게도, 낫게 해줬다고 믿고 싶은 무언가의 초현실적 존재에게도.


 최근에 일본에서 살고 있던 이모의 슬프고도 외면하고 싶고 여전히 낯선, 작고 소식을 듣고 나서, 괜시리 가까이에 있는 어른들이 더욱, 깊은 인연들이 소중하고 애잔해졌다. 그것은 때론 시답잖거나 누구든 서운할 수 있는 서로의 처신도 무마시켜주었다. 그저 그럭저럭 건강하게 있을 수 있는 존재에 감사하게도 되었고, 이왕이면 더 오랫동안 평범하게 우리 모두가 삶을 누리며 살아가기를 바라게 되었다.


 감자밭을 어느 정도 정리하고 집으로 들어오신 어머님은 얼른 우리가 사 온 녹용홍삼팩을 뜯어 아들네가 사 온 것임을 강조하시며 아버님과 당신, 나와 신랑에게 한 팩씩을 건네셨다. 그제야 비로소 아버님은 뭘 이런 걸 사 오냐며 군소리를 잊지 않으시고 못 이기는 척 홍삼팩 하나를 비우셨다. 


 모두를 위한 것이었지만 더워진 날씨에 아버님 못지않게 고단하셨을 어머님을 특히 위해 나는 점심거리를 사 갔다. 입맛과 기운을 돋울 보양식으로 뭐가 좋을까 고민하다가 산낙지 연포탕과, 낙지볶음을 반조리 밀키트 상태로 포장해갔다. 익숙하지만 생각보다 귀찮고, 누가 해주면 더더욱 좋은 것이 식사 준비인 것을 알기에 이날만큼은 내가 식사 준비를 해드리라는 생각이었다. 비록 파며 버섯 등은 가지런히 썰려있었고, 갖은양념은 비닐팩에 고이 담겨 있는 포장이라, 나는 큰 웍을 준비해 차례로 재료를 볶고 접시에 담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지만, 조금이라도 어머님이 편히 계실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니 그나마 불편한 맘이 사그라들었다. 그리고 좀 더 자주 와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하루가 저마다 적잖이 고단해도, 혹은 그렇지 않아도, 이왕이면 건강하게, 그냥 나이 드는 서로의 주름을 바라보고 같이 늙어가며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것도 큰 축복일 수 있겠다 싶었다. 너무 당연하게만 여겼었는데, 문뜩 중년이 됐을 때 나와 우리의 모습, 자식과 부모, 그 할머니 할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렸을 때 그런대로 함께 있는 모습은 깊은 주름과 희게 센머리와 누가 봐도 나이 든 서로의 모습이라도 온전히 감사한 것일 수 있겠단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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