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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해연 Jul 06. 2021

나의 정서적 독립기 01

엄마로부터

  


0.

극도의 불안이 지나가면

은근한 분노가 찾아오고

그 분노가 지나가면

일정 순간 우울감이 오더라.     


불안, 분노, 우울 세 가지 상태의 길이와 간극이 20대 초반의 나에 비해 짧아지고 있을 뿐,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것에 나의 현재 상태에 문제를 제기한다.

불안, 분노, 우울 그중에 내가 가장 싫은 감정의 이름은 불안이다. 필요 이상의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서, 크게는 저 세 가지 감정의 혼재와,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한 첫 번째 발판으로 미뤄뒀던 별로 좋지만은 않은 나의 모습을 기록해 보기로 했다.     


누구에게나 불안은 있다. 불안은 자연스러운 감정이고, 잘 활용하면 더 나은 방향으로 나를 이끌어 갈 수 있는 시너지가 있는 감정이라는 것도 안다. 그 끝에 분노와 우울을 동반하는 나의 불안은 분명 객관적으로 필요 이상의 것이다. 그러한 필요 이상의 불안을 유발하는 크고 작은 일들에는 많은 날 나의 엄마가 있었다.


기본적으로 나의 엄마는 하염없이 소중하고, 감사하기도 모자랄 큰 존재다.

그렇지만 난 자주 그 이름이 부담스럽고, 가끔은 외면하고 싶고, 이유 없이 그냥 눈물이 날 것 같기도 하다. 눈물의 이유는 엄마가 슬프거나 안쓰러워서가 아니라, 어렴풋이 초점이 나에게 맞춰져 있다.      


내 고백이 누군가에겐 사치가 되진 않을지 조심스럽고, 나의 어리석음을 여실히 드러내는 것이 되진 않을지. 알고 보니 나의 좁은 속을 인정할 줄 모르는 위선적인 자식의 모습인 것일지는 않을지 조금은 두렵기도 해서 지금도 기록을 남기는 것이 다소 혼란스럽다.


하지만 오랫동안 나른 크고 작게 잡아왔던 잘못된 감정이어서 한 번쯤은 아니, 이 감정과 일선의 행동들이 좋은 쪽으로 개선될 때까진 어느 정도의 기록을 해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글을 써보려고 하는데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일단 우리 엄마는 선하고, 예민하고, 계획적이며, 철두철미하고, 부지런하며 깔끔한 성격이다. 반면 나는 그에 비해 다소 낙천적이고, 즉흥적이며 당연히 부지런과는 거리가 멀다. 느슨하고 게으르다. 그렇다고 이 생활에 그리 만족도가 완벽한 것도 아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고집 것 살아왔지만, 마음 한켠에는 하지 못한 것, 미룬 것들에 대한 자책이 따른다. 그래도 나름의 건강한 마인드로( 비록 위에 세 가지 감정선을 고백했지만 )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건 나 자신이나 세상에 대한 믿음과 선한 고집이 기본적으로 탁월한 덕분이 아닌가 싶다.                    


1.

욕심 많고 철두철미한 엄마는 늘 앞서갔다. 학업이나 피아노 같은 예체능은 물론이고 미(美)에 관한 것도 예외는 아니었다. 내가 이십 대 초반 즈음에는 162cm 크지 않은 보통의 키에, 70kg에 육박하는 상태였는데, 식이요법이든 나 홀로 운동이든 약이든 간에 곧잘 빠져도 오래 유지를 못하자 엄마는 나를 거액의 PT 숍으로 데려갔다. 대단해도 보이는 피트니스센터에는 그에 걸맞게 화려한 몸매를 자랑하는 PT 선생들이 많았는데, 그중에서도 제일 권력이 강력해 보이는 팀장에게 날 맡겨놓고 꼭 좀 살을 빼게 해달라며 마치 초등생 자식을 데려간 듯 대신 얘기해주었다.


PT가 끝났지만, 생각만큼의 극적인 효과는 거두지 못하자 엄마는 ‘그놈의’ 쓰지도 먹지도 못하고 모은 돈을 거들먹거리며 분노했다.


나도 안다. 엄마가 나를 아끼고 사랑하며 위한 다는 것을.

모든 말과 행동은 나를 위한 것이었음을.

거액의 돈이 엄마가 세탁물 아끼고, 전기세 아끼고 자기 옷 살 것 아껴가며 모은 돈이고 나에게 쓰기에는 너무나도 아까운 것이었음을.


하지만 소중한 그것들이 좋. 지. 만. 은 않았다.

배가 부른 것일까.


진작에 알고 있었다. 그런데 난 왜 그것들을 감사하게 받지 못하고, 활용하지 못하고, 배부르고 정신 차리지 못한 안타까운 그 상태로 남아있었을까. 다이어트 1/3의 성공과, 2/3의 실패 사건을 화두로 엄마에게 간만에 분노를 퍼부었다. 나도 내 비만 상태가 싫지만, 엄마라는 큰 존재가 내 외형에 대해 나무라기만 하니 아무런 의욕이 생기지 않을뿐더러, 반감만 생긴다고. 진지하게 울면서 얘기했다.


그 이후로 엄마는 눈에 띄게 살에 대한 언급을 자제했다.




2.

시간이 많이 흐르고 28살이 돼서 어느덧 나는 결혼을 준비하게도 됐다. 그 당시가 돼서 나의 감정이 엄마나 아빠의 말과 행동에 비정상적일 정도로 업다운( 특히 다운) 이 심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정서적 독립’ 이 필요하다.


며칠 전이었다. 볼일을 보고 집에 들어왔는데 평소에 어린이집 하원과 내 일시간이 겹쳤을 때 손자를 봐주는 엄마가 ‘일찍’ 와 있었다.

'제발 좀 늦게 오지.'

이게 익숙한 나의 속마음이었지만, 뭐든 빠른 엄마의 행동이 새삼스럽지 않은 것도 익숙했다. 문제는 그날따라 엄마가 힘없는 표정과 몸짓으로 우리 집 거실 바닥을 닦고 있다는 거였다.   

“그만 좀 해...”

“그만할 수가 없어..”


그렇다. 난 게으른 사람이고, 엄마란 타이틀을 달고나서야 집안 청소를 꽤나 하게 됐지만, 바닥 닦기는 최후자로 미루는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이걸 누군가 해주길 바라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매일 몇 번씩의 정리 정돈, 청소기, 빨래, 설거지, 널기, 개기 만으로도 충분히 벅차고 귀찮은 것이다.

애초에 성격이며 생활습관이 깔끔한 누군가들(이를테면 엄마, 남편)이 보기엔 물걸레질이 하찮을 만큼 당연한 일일 것이고, 심지어 더러운 것만, 미처 나의 손에 정리되지 않은 것만 보인 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다.


그 때 였다. 이런저런 변명 같지만 내가 왜 변명을 해야 되는지 모르겠는 분노의 문장들이 뇌리를 마저 스치기도 전에 엄마는 곧 컨디션이 좋지 않다며 소파에 몸을 뉘었다.

그만 좀 해!! 도 아니고 그만 좀 해.. 였거늘. 간만에 감정을 담아 쏘아붙인 게 화근이었나.


엄마가 몸은 뉘이는 모습에 순간 실은, 화가 났다.

하필 그때 감정을 담아 엄마에게 말을 내뱉은 내 모습이 한심해서인지, 그저 자주, 허구한 날, 그놈의 컨디션이 안 좋은 엄마의 모습 자체 때문이었는지, 혹시 내 감정 담긴 말에 자극을 받아 누워버린 엄마의 모습 때문이었는지 모르겠다.      


나도 모르겠는 복잡한 감정으로 화가 났지만, 이내 생각을 바꿔볼 뻔했다.

아, 엄마가 안 아프게 하려면, 화가 나는 순간에도 말을 이쁘게 해야지. → 화는 내지도 나게 하지도 말아야지. →나 자신을 잘 다스려야지. , 엄마가 우리 집에서 편하게 있게 하려면 집을 더 깨끗하게 해 둬야지. .          



3.

그러다 또 반감이 들었다.

'아니 내가 왜 엄마가 화가 나지 않게 해야 하고, 쉬게 해야 하고, 기분이 좋게 해야 하지? 앞의 이유로 내 집을 더 깨끗하게 해야 하고, 부지런해져야 하는 거지? '    


청결적으로 부지런해져서 모두에게 손해될 건 없고,

분명 득이 맞는데 어처구니없게도 반감이 드는 이 상황은 마치,     


이십 대 초반 엄마가 나의 살을 빼준다는 명목하에 비싼 PT 숍에 등록해 주고 내가 보기 좋게 실패하면서 했던 생각들이랑 비슷했다.

'내가 왜 엄마 때문에 이걸 해야 하지? 내가 왜 엄마를 실망시키면 안 되지? 하다 결국 내가 왜 살을 빼야 하지? 왜 잘 보여야 하지?'까지 같던 생각들 말이다.


얼핏 보면 철없고, 게으르고 배부르고 어처구니없는 어린애 같은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완전히 솔직하게는,

이럴 거면 오. 지. 말. 라. 고 하고 싶었다.     



* 다음엔 이남옥 지음 <나의 다정하고 무례한 엄마>, 한성희 지음 <딸에게 보내는 심리학 편지> 책을 읽고 부분 발췌를 하며 글을 이어나가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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