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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해연 Jul 05. 2023

장난감육아 하지 않을 자신 있어

자신 없어



신비의 장난감 계보는 굵직하게 보자면 이러하다.

로보카폴리 - 헬로카봇 - 포켓몬스터.
첫 장난감이라 함은 아이가 걷기 전 무렵에야 오뚝이 비슷하게 생긴 각종 동물장난감, 촉 인형 같이 아이의 관심을 끌거나 신체에 무리는 주지 않을 정도로 자극을 도울 수 있는 것들이다. 눈이 크지만 영혼은 없어 보이고, 대체적으로 원색으로 알록달록하며 움직임이 반복적이나 다루기 쉬운 장난감들 되시겠다. 보통 이 시기에 일부 아이들이 특유의 애착을 붙이는 물품이 생기기도 다.

시간이 흘러 아이가 아직 말을 수려하게 구사하진 못해도 눈에 띄게 자기 관심사를 '응, 아니, 잉거(이거)' 등으로 표현고, 말이 아니더라도 손과 시선과 몸의 방향로 그의 흥미를 드러낼 줄 알기 시작하면 그 아이와 직접 장난감 쇼핑을 할 수 있게 된다. 대개 그것들은 특정 애니메이션의 캐릭터로 이루어진 장난감이 되시겠다. 신비의 경우, 그의 마음에 처음 들어온 게 '로보카폴리'였다. 아이를 갖기 전에는 보통 여자애들이 공주나 핑크류를, 남자애들이 파랑과 로봇, 차종류를 선호하는 것을 보고, 나는 편견 없이 자유롭게 취향 것 키우리라고 다짐했는데, 그냥 생물학적으로 여성성과 남성성은 타고나는 모양이었다. 이 아이는 보송한 인형들에도, 아이들의 대통령이라 불리는 뽀로로도 건너뛰었다. 미니카들, 뽀로로회사 계열인 띠띠뽀나 타요의 중장비차들에 정착을 했다. 러다 로보카폴리에 완전히 빠졌다. 앞의 자동차류와 폴리의 가장 큰차이는 변신가능의 유무였다.

한때 사랑했던 타요와 띠띠뽀 중장비들


여담이지만, "장난감육아를 하지 않을 자신 있어."라고 자신했던 나는 무너진 지 오래였다. 아이가 장난감 코너에서 무언가를 사달라고 엄청난 생떼를 피진 않았지만, 폴리, 로이, 엠버.. 한 가지씩 소소하게 사서 모으며 포장을 까대는 순간까지 설레고 기뻐하는 아이의 모습은 나도 좋아서, 어쩌다 살 수 있는 순간이 와도 칼같이 거부하지 않았다. 그렇게 때 되면 하나씩 사는 순간들이 익숙해지고 있었다. 오히려 생일이나 어린이날 같은 특별한 날에는 나와 우리로 구성된 어른들이 먼저 아이의 흥미와 관련된 장난감을 깜짝 선물로 준비하기 바쁘기에 이르렀다.

슈퍼주니어 려욱, 시원님의 유명한 자신있어 에피소드.



좋아서 한 일이었지만, 야속한 순간도 있었다. 장난감 회사들도 돈을 벌어야한다는걸 알면서도, 너무 하다 싶게 캐릭터당 살 수 있는 장난감 종류가 많았다. 물론 그것들을 모조리 살 수는 없었고, 살 생각도 없었지만, 이런 생각은 했었다.
 '이놈의 로보카 폴리, 언제까지 좋아하려나. 설마 영원히 좋아하려나.'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익숙해지다 못해 지겨워지고 끝내는 포기하고 살다 보면 캐릭터 과도기를 거쳐 전환기가 찾아왔다. 이때쯤 되면 아이가 아니라 내가 이 장난감들에게 정이 들어 있는 괴이한 현상을 목도했다.



서운함도 잠시 우리 집 티브이 앞은 폴리의 시대가 가고 카봇이 그 자리를 꿰차기 시작했다. 이제는 더 이상 가지고 놀지 않는 장난감들을 처분해야 했다. 나도 이 정돈데, 더 많이 정들었고, 명색이 정당한 소유권자인 아이에게 의견을 물은 후 미련이 남은 것들은 몇 차례 더 놀기도 하다 드디어 떠나보낼 준비가 되면 상태 좋은 것들을 따로 모아 헐값에 팔아버렸다.


 "마구 사랑했던 로보카 폴리들아, 띠띠뽀, 타요 중장비들아, 다른 동생에게 이어서 듬뿍 사랑받으렴, 신비에게 와줘서 고마웠어. 잘 놀았어. 안녕."

로보카폴리를 보낼 시즌즘에는 선물도 알아서 로봇류나 좀 더 현장감 있게 생긴 RC카 같은 것들을 받기 시작했다. RC카야 뭐 리모컨으로 조종하며 나이에 상관없이 아이의 흥미를 끌기 쉬운 것이었지만, 조립하기에도 저세상 것처럼 생긴 로봇은 영 우리의 것이 될 것 같지 않게 수준이 높아 보였다. 처음 받았던 헬로카봇이 생각난다. 이름이 아이언트였는데 그것은 얼핏 보면 택배차량 같이 짐칸이 있는, 하양과 파랑이 주를 이루고 있는 자동차 로봇이었다. 짐칸을 양옆으로 열면 그 안에 꼬마 로봇(전문용어로 '크루')들이 6마리(명? 개?)가 들어있다. 그 크루를 다 꺼내 짐칸도 분리하고 모든 것을 규칙대로 꺼내면 평범한 차가 웅장한 로봇으로 변신했다. '제발 나한테 조립해 달라고 하지 말길. 나 이런 거 진짜 못하는데..' 다행히(?) 처음에는 아이가 선물 받은 로봇에 관심이 없어서, 아이언트는 1회 차 구경 후 장난감 박스 한편에 들어가 버렸다. 그렇지만 영원히 로봇이 아이의 관심밖이 될 거라는 건 오산이었다. 아이가 키즈 유튜브를 선택해서 보는 횟수가 로보카 폴리를 다섯 번 중 4번을 차지했다면 그중에 한번 정도씩은 헬로카봇이 등장하고 있었다. 등장인물 이름도 생소했다. 아이가 알려주기 이르렀다. 주인공 아이의 이름은 차탄이었다.. 아빠 이름은 차산.. 아니 뭐 이름이 이래, 카 car라고 차탄, 차산인 거야? 싶다가 하도 보다 보니 이름이 세상 한글적이고 좋아 보이기에 이르렀다. 이토록 육아는 한 치 앞도 가늠할 수가 없다.
  
 정신 차려보니 우리 집은 동글뱅이 눈이 달린 귀여운 자동차들이 처분된 지 오래요. 날렵하고 용맹한 눈매를 가진 헬로카봇들의 시대가 열려있었다. 전시대 사랑이었던 로보카폴리와 비교를 해보면 로보카폴리는 유아틱 하다 못해 영아틱한 분위기라면 헬로카봇은 어린이스러웠다. 전자의 등장인물들이 몸에서 얼굴과 눈이 차지하는 비율이 눈에 띄게 커서 귀엽다. 반면 후자의 경우는 몸에서 얼굴이 차지하는 비율이 비교적 작아졌을뿐더러 캐릭터 묘사가 만화보다는 실물에 가까워졌다. 여전히 귀엽지만 형아 누나미가 보인달까.

왼쪽이 로보카폴리, 오른쪽이 헬로카봇


극 중 상황도 헬로카봇에 들어서니 어린이들이 집에서 겪는 일상적인 모습이 구체적으로 그려졌다. 주말에 엄마와 아빠와 함께 조부모님댁에 간다든가, 아빠가 일이 너무 바빠서 자주 아이에게 미안하다고 하는 부분 이런 것들 말이다. 그러다 보니 등장인물들의 대사도 좀 더 현실적이고 좋은 의미에서 자극적이었다. 폴리가 연극이라면 카봇은 좀더 현실감있는 드라마 같달까. 등장인물 말고 자동차 캐릭터들이 내는 효과음의 변화도 어마무시했다. 보통 학령기 남자아이들이 내는 푸슝~ 쉬익~ 하는 소리들이 쉴새없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로보카 폴리에서는 왠지 그 정도의 효과음을 내야 하는 스피드가 어울리지 않는다. 색감도 파스텔과 원색의 단순한 조화보다는 사실적인 색깔들이 보이고 결국 등장인물, 자동차로봇캐릭터들의 움직임과 소리가 화려하다 못해 거칠어진 걸 느낄 수 있었다. 생각해보니 로보카폴리도 주요등장인물들은 변신이 가능했는데 카봇조립이 익숙해진 만렙의 지금에서 생각해보니 너무 쉬워서 변신로봇인것도 까먹었다.

폴리, 엠버, 로이 같이 뭔가 인형 같은 이름만 듣다가 차탄, 차산, 에이스, 소너다이버, 이글하이더 같은 이름들을 들으니 시각적 변화와 더불어 어색했다. 어색함을 걱정할 틈도 없이 엄마 나는 헬로카봇 주제가를 시즌별로 외우고 부르고 있는 것을 체험할 수 있었다. 한편 로보카폴리에 입문했을 때 캐릭터 이름을 알아가는 게 생소하게는 느껴졌지만, 어렵다까지는 아니었는데 헬로카봇 입문에서는 나는 마치 까막눈이 된 것 같았다. 어디선가 봤는데, 인생에서 공룡이름을 가장 많이 아는 시기가 네 살 때, 그리고 내 아이가 네 살이 됐을 때라고 들었다. 나는 이것을 공룡 - 로보카폴리 - 헬로카봇의 수순으로 밟아가고 있었다. 공룡도 이 이름을 어떻게 다 알지 싶다가 어느 순간 보면 같이 공룡종류를 나열은 했지만, 카봇마저도 그리 될 줄은 몰랐다.

 한편 폴리에서 카봇으로 가기까지, 애니메이션 자체의 변화는 시작에 불과했다. 장난감가게에서 만난 카봇은 너무 비쌌다. 개당 가격은 집었다 하면 보통 4만 원이 훌쩍 넘으며, 상자가 아이 몸만 해서 누가 봐도 울트라 슈퍼 로봇이다 싶은 것들은 10만 원이 뭐냐 20만 원에 가까운 것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카봇은 폴리의 것과는 비교가 안되게 종류가 많았다. 폴리 때도 그랬지만, 중고시장 또한 부지런히 봐줘야 하는 이유였다. 심지어 카봇은 아쉬울만하면 새로운 시즌과 극장판들을 만들어 내곤 했는데 우리 아이는 다행히도(?) 가장 신시즌 전단계인 붐바버전이 나올 때쯤 해서 관심도가 옮겨가기 시작했다.

카봇얘기가 길어졌는데 어쩔 수가 없다. 그만큼 아이가 오랫동안 좋아했고, 마치 끝나지 않을 것처럼 이름을 외웠고 돈을 들이고 조립을 했기 때문이다. 돈을 하도 써서 부끄러운 와중에, 막상 아들인생에서 이 헬로카봇의 시대가 막을 내려도 서운할 것 같았다. 그런데 그날이 오고야 말았다. 지금은 아이가 오히려 카봇보다 더 유아틱해보이는 포켓몬스터에 빠져있다. 카봇과 포켓몬 사이에는 고고다이노, 또봇, 티니핑, 공룡메카드 등이 살짝 스쳐만 갔다. 팔기 위해 정리를 하며, 작별 인사 전 아쉬움이 남는 카봇들과의 놀이도 끝이 났다. 완전히 처분만을 기다리고 있는 카봇들을 앞에 두고 서른 다섯 엄마가 더 애잔해서 글을 쓰기에 이르렀다.

소싯적 저런건 도대체 왜 보러다니는거야했는데, 안와서 못보는 거였다. 좋아하는 뮤지컬 현수막이 걸리자마자 아이가 알아채고 나는 티켓팅을 한다..


장난감 육아를 하지 않을 자신 있던 는, 엄마가 되고 신나게 장난감 육아를 한다. 자동차도 로봇도 조립도 나와는 완전히 거리가 멀었는데, 편견일 뿐이었다는 것도 알았다. 아이를 위해서, 라기보다 '같이 놀려고'에 초점을 맞추고 놀다 보면, 자동차이름도 공룡도 카봇이름도 같이 외우게 된다. 그리고, 조립도. 하게 된다. 엄마는 이런 거 못해.. 는 없게 된다. 그 로봇을 처음 봐도 설명서 없이 뚝딱뚝딱 선입견 없이 해내는 삼촌들이나 아빠만큼은 아니지만, 어려워도 설명서 보며, 내가 똥손임을 망각하지 않고 로봇관절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끼우고 빼내는, 엄마는 좀 느리지만 근성과 반복으로 결국엔 아빠나 삼촌보다 더 능숙해져 있게 된다.


아이가 아빠랑 만든 레고+카봇  탑. 이런건 진짜 아빠의 특권. 조립이나 이름외우기 같이 노력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ㅜ

내 아이의 장난감의 역사에서도 기억하고픈 마음이, 시선이 있었다.
"카봇아 너희들도 안녕, 그동안 우리 신비와 만나주고 즐겁게 해 줘서 고마웠어. 잘 가. 너희를 보내지만 잊진 못할 것 같아."

그리고, 나는 다음 세대인 포켓몬스터에도 할 말이 많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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