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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해연 Jun 28. 2023

포르테와 피아노

힘을 뺀다는 것


 좋아하는 피아니스트의 청주 공연 포스터를 보고 냅다 가려다 포기했다. 저녁 7시 반 공연이었는데, 굳이 그 시간에 아이를 할머니나 할아버지 같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면서까지 가는 게 마음에 내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편은 그래도 쉬운 기회가 아닌데 뭐 어떠냐고, 갔다 오라고 했지만 당일까지 고민과 고민을 거듭하다 안 가기로 했다. 그러다 남편이 대뜸 "근데 그 피아니스트가 유명해? 왜 좋아하는 거야?"라고 물었다. 참고로 나는 음악에 조예가 깊지 않은데, 클래식 연주를 보는 것에는 매력을 느껴서 유튜브 클래식 채널을 통해 거장들을 조금 알아간다. 이번 공연 피아니스트가 그 몇 안 되는 아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나저나 나 진짜 이 사람을 왜 좋아했던 거지?'
딱 한단어가 떠올랐다.


'힘을 뺀'


그 뒤에 연주, 피아노, 예술 등의 단어를 붙이면 될 것 같다. 이 피아니스트를 처음 알게 된 건 클래식 유튜브채널에서의 음대생 레슨 콘텐츠였다. '아니 이미 음대생이란 타이틀 자체가 경지인 거 아닌가? 그때도 레슨이 필요한 거였나?' 하는 게 솔직한 마음이었다. 허나 거장의 레슨을 보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다. 레슨 곡은 쇼팽의 에튀드 중에서 추격(Chopin Etuide Op.10 No.4 "Torrent"). 제목이 추격이듯 대놓고 빠르고 격정적인 곡이었는데, 음대생은 누가 봐도 많이 연습한 사람처럼 능숙하게 피아노를 쳤다. 여기에 흠이 있을 수가 있나 싶었지만, 거장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거장에 따르면, 학생의 연주는 처음부터 끝까지 힘이 들어가 있다는 것. 말이라도 '잘'이라곤 안 하고 '열심히'만 친다고 했다. 음악에는 '포인트'가 있어야 된다고, 그 포인트를 처음부터 끝까지 강조하며, 학생의 연주는 그냥 계속 '포르테'라고 했다. 거장은 학생이 힘을 실을 때는 싣고, 뺄 때는 빼서, 그놈의 포인트를 잡아갈 수 있게 도와줬다. 그러면서 음대생을 밀어내고 피아노 의자에 앉아, 방금 전 학생이 친 스타일과 포인트를 살려 다시 자기가 살린 연주를 비교해서 들려주는데, 입이 다물어 지질 않았다. 정확히 힘이 빠지고, 포인트는 살리되, 영혼이 느껴다. 거장의 연주를 듣고 나니 미안하지만 학생의 연주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 거장우람한 몸에서 마치 엄청나고 거친 에너지가 뿜어져 나올 것 같았는데, 손끝에서 들려오는 연주는 정성 들인 감미만이 부드럽게 흘러나올 뿐이었다. 같은 피아논데 이렇게 다를 수 있다니. 그 와중에 거구답게 레슨 하시는 실제 목소리는 크고 무서웠으며 분노를 자제하는 듯한 모습이어서 손끝의 부드러운 선율이 오히려 돋보였다.

나는 클래식 중에서도 주로 격정적이고 파워풀하며 빠른 곡을 좋아하는 편인데, 그런 곡들은 으레 힘이 들어가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하는 게 그 전의 생각이었다. 격정에도 격이 있다는 것을 거장의 선율을 통해 알았다.

"힘을 뺀다는 것."

생각해 보면 음악뿐만이 아니라 내가 가까이하는 많은 것들에서 지향하는 자세였다. 글에서도 마찬가지. 잘 쓴 글인데, 분명 힘이 잔뜩 들어간 글이 있고, 힘이 빠졌는데도 특유의 힘이 느껴지는 글들이 있었다. 글쓰기 전문가들의 말을 빌리자면, 필자는 가만히 있지만 독자는 화나게 하는 감정의 결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노래그랬다. 단순히 가창력만 있으면 다 잘하는 것 같지만, 감정이 너무 과잉돼도 관객으로 하여금 부담을 느끼게 하지 않는가. 반면에 너무 기계적으로 부르면 아무리 가창력이 훌륭해도 듣는 이의 마음 움직이지 못하는 노래가 된다. 그러고 보니 음악도, 일도, 글도, 삶도, 인격도 다 마찬가지였다.

생각해 보면 적당한 힘이란 거 혹은 힘빼기가 말이 쉽지 음대생도 거장에게 레슨을 받았을때 비로소 알아갈 만큼 어렵다.  프로듀서이자 가수인 박진영이 한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참가자에게 한 유명한 말이 있다. '공기반 소리반.' 저게 무슨 말인가 싶지만, 분명 그걸 구사하는 기가 막힌 가수들이 있었고, 우리도 들으면 익히 그 소리가 뭔지 알지 않는가. 적당한 힘만 내라는 그만의 표현이었으리라.

에서도 나는 특유의 힘 빠진 글이 좋다. 엄청 잘 쓰려거나 웃기려고 애쓰지 않는데, 편안하면서도 솔직하고 진심 있고 가끔 재미도 있는 글. 혹은 재밌지 않아도 좋은 글. 아마추어인 나는 분명 그냥 쓰려고 했는데, 어쩐지 자꾸만 힘이 들어간다. 생각 같아선 마음의 흐름대로 쓰되 결과물이 편안함도, 질서도, 재미도, 진심도 느껴지는 글이면 좋겠는데. 그냥 쓰다 보면 보통은 서론을 쓰다 지치기 일쑤고, 좀 생각을 해서 쓸라치면 나도 모르게 이렇게 하면 더 재밌을 것 같아, 읽기 편하려면 이 부분을 과감히 빼야겠어, 라며 머리를 굴다.
이 정도까지 솔직해도 될까? 욕은 어디까지 쓰면 좋을까? 이 글을 누가 읽으면 어쩌지? 솔직한답시고 글을 쓰면서 끊임없이 타자를 의식한다.

그렇다고 아예 힘을 들이지 않는 글을 추구하는 것도 아니다. 이를테면 sns나 블로그정보성 글쓰기 같은 것들 말이다. 아무리 사람들이 그거로 돈과 인기를 얻어간다 해도 별로 하고 싶지 않다.(그렇다고 잘하는 것아니다.)

내가 힘이 빠진 글이나 예술을 좋아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힘을 뺄 때가 됐는데도, 끝까지 힘을 주며 사는 삶, 사람, 태도가 싫다. 그리고 그중에 한 사람, 한 태도가 나다. 어느 한 분야에 경지에 올라본 적도 없는 인간이지만,  평균적이거나 심지어 그 이하 일 테지만 그래도 힘 껏도 살고 빼려고도 하며 일단, 애쓴다.

분명 누가 봐도 힘을 들여야 할 때가 있고, 빼야 할 때가 있다. 집중해서 힘을 줄 때는 주고, 뺄 때는 뺄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일상에서 필요이상의 힘, 이를테면 긴장과 불안, 걱정을 달고 사는 것은 피로하고도 괴로운 일이다. 반면, 너무 힘없이, 아무 생각도 인격도 없이 삶을 사는 것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피아니스트를 보고 좋다고 느낀 건 단순히 힘을 뺀 것에 머문 무언가가 아니라, 힘을 빼고도 결과적으로 좋은 걸 거다. 그 경지에 이른 수많은 사람들은 끊임없이 힘을 주며 살았을 걸 안다. 평균보다 훨씬 많이 힘을 주어 본 자이기에, 힘을 뺐어도 느끼기에 좋은 경지가 나온 것을 안다. 타고나기를 천재로 태어났어도, 힘의 경지에 이르기에는 분명히 필요충분 이상의 힘들임의 과정이 필요한 이유다.

나는 그 피아니스트나 수많은 전문가들처럼 어느 한 분야에서도 경지에 이르러 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적절한 힘이 주는 매력에 대한 지향이 있다. 그래서 삶에서 만큼은 어느 순간이 되면 힘을 내려놔도 좋아 보일 수 있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분명 곡을 완성했음에도 처음부터 끝까지 포르테인 음대생의 멜로디말고, 포인트를 알고 곡의 맛을 살릴 줄 아는 피아니스트의 선율처럼 삶을 즐기고 싶다. 그렇게 글도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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