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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해연 Jul 20. 2023

다시

일상 만들기

좋은 습관을 만들기에는 오랜 열망과 간절함, 인내, 또 무엇보다 습관과 그 뒤의 마음가짐들 모두를 포함하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무너지는 데는 단 며칠이면 충분하다. 그렇게 난 또 무너졌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에 꽤 익숙해졌다고 생각하는 즈음이었다. 나는 거기에 하루 한번 잠깐의 운동과, 영어말하기 연습 두 가지를 첨가해 잘해보려던 참이었는데 작심 일일만 몇 번째 하던 중이었다. 작심 2일이 넘어가지 않는 1일을 수도 없이 거쳐, 2일이 되기를 두 번 정도 하려니 아이가 감기로 아팠다. 꽤 오랜만의 앓음이었다. 한동안 건강하다 싶었다.


그전보다 앓는 정도가 낮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의 소소하지만 큰 일과이자 만족이고 기쁨이었던 사생활 모든 것을 포기했다. 꼬박 1주일을 긴장과 불안 속에 살다가, 2주 차에서부터는 회복기에 들어섰지만 지난 시간 긴장의 여파로 일상에 돌아와도 예전에 일궈두었던 일과의 (애써 만들었지만 그래도 조금은) 여유로움을 갖는 게 불편했다. 편하면 안 될 것 같은 말도 안 되는 불편함이었다.  


자책할 것도, 너무 긴장할 것도 없음을 몇 번이고 상기시킨 후 다시 찾은 일상에서 그동안 기록만 해왔던 글감들을 주욱 봤는데 말 그대로 글감만 쌓여있을 뿐, 그때 그 마음으로 돌아가서 글로 옮길 마음까지는 들지가 않았다. 그 상황, 그 감정을 애써 떠올려 쓰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다 또 이런 생각을 했다. 매일 하루 한글, 혹은 쓰고 싶은 글감이 떠오를 때 그 감을 그날이 끝나기 전에 시작하고 마무리까지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무엇보다 그 하루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말이다.


이번에 아이가 아팠을 때 그 전과 조금 나아진 한 개가 있다면, 다른 사생활은 모두 포기했지만 책을 놓지 않았다는 것이다. 혼란한 와중에 기억 남는 부분이 있는데, 소설가는 마진이 얼마나 남을까 라는 책 중이었다. 한 작가가 소설가의 글을 쓰는 일정을 시간대별로 써놓았던 페이지가 있었다. 대략 7시부터 12시까지는 육아를 포함한 가사 및 식사, 12시부터 6시까지가 글을 쓰는 시간이었다. 포인트는, 이 루틴을 갖기까지 15년의 세월이 필요했다는 것. 둘째 아이가 중학생이 되니 비로소 그 시간이 생겼다고 했다.


반면, 아이의 어린이집 하원을 세시 반에 하러 가는 나는, 부지런을 바지런히 떨어야 짧으면 한 시간, 길면 두 시간 정도의 글에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긴다. 그마저도 온전히 아이에게 변수가 없다는 하에서. 버둥거렸던 게, 자주 허덕였던 그 마음이 그럴 수 있는 거였단 생각이 드니 약간 위로가 됐다. 욕심까진 아니어도 조급하거나 부지런하지 않음에 자책은 무리수였을까 싶은 마음도 들었다.


 나는 내 자유를 위해서 아이를 외부기관이나 타인에게 오래도록 놔둘 생각이 없는 사람이고, 그렇다고 내 시간이 없었을 때조차 무던하거나 온전히 멀쩡한 생각조차 없는 사람도 아니다. 그래서 열심히 시간을 벌어 빨리 움직이고, 누워서 쉴 시간(이 또한 너무 간절하지만)을 줄여 가사를 해치우고 내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부지런해지는 것만이 방법인데, 그것이 쉬이 되지 않아 늘 자책하곤 했다. 나는 올해 9월 중순이 돼야지만, 비로소 아이와 함께한 날이 꼬박 다섯 해가 된 사람이었다.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았고, 시간과 짧은 자유에 허덕이는 게 내가 부지런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당연할 수도 있는 거였다.   


생각해 보면 나는 결혼 전, 홀몸이었을 때 쉬는 날이면 오후 네시쯤은 돼야 뭔가를 하려고 침대에서 비로소 몸을 일으키던 사람이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체질적으로 아침잠이 많고, 특별한 일상이 아니면 아침잠을 줄이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그랬던 내가, 이제 조금이라도 내 자유를 쟁취하려면 아이가 등원 후에 필사적으로 움직여서 내 시간을 마련하려고 발버둥 친다.

'대단한 거 아닌가? 후후' 

물에 뜨지 않는 발버둥일지언정 나름 힘껏 물장구를 치며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아이가 한국나이로 여섯 살이 된 마당에, 여전히 엄마 역할에도 느리 적 거리고 있는 것 같지만 자주 멀리 봐야겠다 싶다.


완전함은 아니겠지만, 분명한 건 부끄러움 없이 최선을 다하고 있다. 희생도 자유도 기꺼워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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