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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해연 Jul 27. 2023

고기 두 점

엄마가 불편한 내가 불편한 이야기

언제부터일까. 나에게 엄마는 편하기는커녕 남보다도 더 (아니면 가족이기에 더) 불편한 존재가 됐는지 모를 일이다. 알고 보면 언젠가부터가 아니라 처음부터 그랬던 건가 하는 슬픈 예감이 든다. 도대체 엄마의 어떤 부분이 그렇게 불편한고 하고 물으신다면, 너무 많아서 어디에서 일례를 드는 것이 하찮을 정도다.  


원체 효도라는 말과도 생각과도 거리가 먼 나인지라, 부모에게 잘해야지라는 생각도 행동도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도 사회인이 되고 나서는, 엄마의 생일선물도 때론 내 생일 때도 낳느라 고생했다며 엄마를 떠올리는 선물을 종종 하기도 했다. 가만 보니 그 선심들이 진심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정말 엄마를 순수하게 기쁘게 해주고 싶어서 그 일들을 한 건지, 엄마가 기분이 좋아야지 내가 편해서 그들을 한 건지 모르겠단 말이다.  


작년 말이었나, 올해 초였나에는 내 일상에 선을 넘으며 혼자 분노하고 내빼버리는 엄마에 '처음으로' 붙잡지도, 있지도 않은 잘못을 쥐어짜서 사과를 하지도, 않았다. 심지어 의절해 버리면 땡큐다 싶은 심정으로 냉정이랄 것도 없이 무심하게 나는. 가는 사람의 뒷모습도 발도 손도 잡지 않았다. 지렁이 내 인생에서 꿈틀 하게 만드는 순간은 정말 손에 꼽는 날들인데 그날이 그날이었다. 제발 가만히 있는 지렁이 밟지 좀 말아줬음 좋겠다. 나도 꿈틀 하기 싫다. 애초에 밟히기도 싫다. 나는 그냥 비가 좋아서, 비가 온 뒤의 축축함이 좋아서 흙 밖으로 나왔을 뿐이다.


그 이후로는 무심이 당연한 듯, 그러다 차츰 원래대로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보통의 나로 돌아왔다. 구태여 분노하지도, 눈물 흘리지도, 쌀쌀맞지도 않았다. 무심하게 그냥 그런 듯이 엄마를 대했다. 엄마만이 나를 한번 밟아 꿈틀 하던 지렁이를 약간은 먼 사람처럼 조심하는 듯했는데 그게 나쁘지 않았다. 내가 피도 눈물도 없는 나쁜 딸, 나쁜 사람이 될지언정 싫지 않았단 뜻이다. 무언가를 바꾸고자 하는 분노도, 일침도, 화가 없어도 할 수 있는 대화도 모두 의미 없게 느껴졌다. 심지어 의절도 각오했는데, 왔다고 또 받아준 내가 보살이었다.


그렇게 물에 물 탄 듯 살던 어느 날 그나마 맛있는 게 있으면 엄마도 줘볼까, 같이 와볼까 싶은 생각이 종종 들었다. 한편 어디엘 가도, 무얼 먹고 나서도, 먹으러 갔다 와서도, 음식과 식당과 서비스 품평을 그렇게나 하는 엄마의 모습이 불편하다고 '비로소' 인지한 것은 아마도 내가 결혼하고 나서 일거다. 우리나라 아니 전 세계를 통틀어 까다로운 입맛에 둘째가라면 서러울 엄마의 입맛을 맞추는 것은 끝내 맞추고도 기분이 썩 좋지 않기도 했다. 최근 아이가 방학이라 어린이집에 가지 않고 집에 데리고 있던 아침이었다. 아이가 먹을 만한 메뉴가 있고, 이왕이면 식당분위기도 넓고 깔끔한 곳에 점심을 먹으러 가고 싶었다. 그런 식당이라면 보통 2인분이 기본이었는데, 둘이 먹는다 해도 남기는 양이 훨씬 많은 게 아깝다고 생각한 게 화근이었다. 이왕 먹을 거 엄마가 아직 식사 전이라고 하면 같이 먹으면 좋지 않을까 싶어서 엄마를 데리고 괜찮은 식당에 가서 돼지갈비점심특선 2인분을 주문했다.  


엄마는 역시 여기가 맛있긴 맛있다며 맛있게 밥을 먹었다. 나는, 맛있지만, 남이 해주는 밥이라 더 좋다는 심정으로, 끼니 한 끼 해결한다는 애쓴 감사함으로 먹고 있는 데 자꾸 이것도 먹어라 저것도 먹어라 하는데 전혀 고맙지가 않았다. 오랜만에 고기 외식이었는데, 평소에 잘 먹는 메뉴였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감기기운 때문인지 긴 겉옷을 따로 입혔음에도 불구하고 춥다고, 밥을 짧게 먹었다 아이가 밥을 잘 안 먹으니 괜히 어디가 더 불편한 건 아닌지 마음 졸아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속으로, 온전히 내가 챙겨야 하는 게 당연한 아이 빼고도, 앞에 엄마가 있으니 신경이 쓰이는 존재가 한 명 더 있음에 이 시작이 또 엄마인 것은 아닌가 싶어 불편해졌다. 그런데 이런 데서 불편함을 느끼는 내가 불편해졌다. 아직도 온전히 마음이 넓거나 너그럽지도, 무던하지도 않구나 하는 죄책 비슷한 못난 마음을 외면하고 싶었다. 그래서 불편이든 죄책이든 애써 눌렀다.  


아이가 밥을 그만 먹겠다고 했을 때는 식탁에 먹을 고기가 한 접시는 그득 남은 상황이었다. 엄마 없이 나 혼자 있었다면 아깝긴 했지만, 그래 한 끼 밖에서 잘 해결했다. 잘 먹었다. 하고 일찍 자리를 나섰을 거다. 아이가 밥을 잘 먹지 않자 나도 입맛이 떨어지고 이젠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애써 배가 가득 부를 때까지 먹지도 않는 내가 고기도 남기려 하자 엄마의 눈이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엄마는 나에게 남은 고기를 자꾸 권했고, 나 권하는 족족 거절했다. 끝내는 고기가 큰 점으로 두 개 남았다. 그 고기가 든 접시를 드는 엄마의 손을 보고 설마, 싶어서

왜- 했더니, 싸달라고 하게- 했다.  

아- 됐어.  


그 고기 두 점이 뭐라고, 애써 먹지 말고 그냥 맛있게 먹었음 됐어 엄마. 가자- 했는데. 그 말을 하기가 무섭게 엄마는 엉덩이를 들썩이더니 고기 두 점을 먹어치웠다. 음식을 최대한 남기지 않고 잘 먹는 게 미덕이라지만, 미덕을 넘어서 아깝다는 심정이 내 신체를 무리하게 하는 건 내가 엄마를 보며 싫었던 점 중에 하나였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성인이 되었어도 여적 고집스럽다 싶을 정도로 편식이 심하고, 돈아까운지 모르고 음식을 남기는 것에 미련이 없었다. 저렇게 아까워서 먹고 소화가 안된다느니 체기가 있다느니 하는 소리는 부디 하지 않기를 바랐다. 아니 그 고기 두 점이 남았다 한들, 싸 올 일인가. 싸 온다 한들, 그래서 집에서 다시 그 포일을 까서 다시 먹는대도 그 맛이 날일인가 말이다. 끝내는 훽 짜증을 내는 내가 불편할까 봐, 그런데 아까운 게 더 크니까 결국 먹어버리고 마는 엄마의 분주한 손과 입이 오늘 같이 식사를 권했던 내 자신을 후회하게 했다. '다시는' 2인분이 아까워서 엄마랑 같이 오진 않을 것이다. 나야말로, 2인분을 시켜도 양을 적게 주문하든지, 아니면 남기는 한이 있어도 절대로 그게 아까워서 엄마를 끼진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생각해 보면 후회의 순간은 고기두점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엄마를 만난 그 순간부터 나는 피로하고 괴로워지다 못해 피로웠다. 원체 엄마는 좋은 얘기만을 한 적이 없었다. 모임에서 만난 답답한 아줌마 얘기, 성당에서 만난 착한 아줌마의 답답한 며느리 얘기, 모든 얘기를 속사포로 볼륨도 높이며 얘기하는데 이제는 어떻게 추임새를 넣어야 하는지, 아니 이미 잘 안 하거나 무표정으로 애쓴 대답만 한 지 오래됐다. 그것도 익숙한지 기꺼운지 엄마는 당최 멈추는 법이 없었다. 아이도 그걸 느끼는 건지, 뒤에 앉아서 나랑 둘이 있을 때처럼 조잘거리지도 딴소리를 하지도 않았다. 제발 좋은 얘기만 해주길 바랐지만, 그냥 엄마를 데리고 온 내 탓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또 다짐했다. '나는 절대 저런 엄마가 되지 말아야지.'


오늘 한 얘기는 화려한 먹거리 상위의 고작 고기 두 점만큼 일부다. 남을 만나 일군 남편과 아이로 구성된 내가 만든 가족 말고, 내가 있게 한 가족 얘기를 쓸 때면 언제든 그렇듯 두서가 없다. 언제라고 두서가 있을까 싶다. 그리고 쓸 때도, 쓰고 나서도 한참은 싫은 꿈에 시달릴 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는 일이 과연 잘하는 일인지 모르겠다.

밟아야 꿈틀이나 해대는 지렁이는 차라리 이런 상념이나 없겠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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