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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해연 Aug 04. 2023

밤의 소리 1


 밤에는 모름지기 고요해야 제맛이다. 한때는 고요가 주는 평화보다 어둠이 내리까는 공포가 컸지만 지금은 안전만 보장됐다면 어둠 안에서 피는 밤 특유의 고요가 (시간이) 없어서 못 즐기는 낭만이 되었다. 그러나 보통날 아파트 숲 밤의 소리란 그렇게까지 조용하지 않다. 어떤 사정들이 있는지 자가용은 끊임없이 들어오고, 와당탕 요란한 배기음 날려주는 (배기튜닝의 이유가 안전의 이유도 있다고 하지만서도) 오토바이 행렬이 뒤를 잇는다. 그리고 해가 진지 얼마되지 않은 새벽에도, 해가 떠오를 무렵의 새벽에도 택배트럭이 수시로 시동을 켠 채 머문다. 나는 이제야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넷플릭스를 보며 몸을 반쯤 뉘이고 맞은편 의자에 다리를 쭉 뻗고 있는데, 아직도 누군가는 식사를 하고 누군가는 바쁘다. 솔직히 말하면, 딱 들었을 때 '시끄럽고' 오토바이에서는 '짜증'까지 날 정도였는데, 이내 그것을 거뒀다. 거둔다고 그리 빨리 움직여 주는 마음이 아닐 텐데, 실은 그 소리들이 머무는 시간이 길지 않은 덕이겠다.


생각해 보면 나는 귀가 어둡다 못해 둔한 편이었는데, 언젠가부터 좋은 소리에도 시끄러운 소리에도 귀가 총총 서있는 사람이 됐다. 밤이 원래 이렇게 시끄러웠나 싶어 기억을 더듬어 보니, 이십 대 초반을 났던 부천 송내동 집에서는 밤마다 늘 버스소리가 요란했다. 지금 내가 머무는 청주 집은 수도권에 비해 버스가 적게 다니기도 하거니와, 정류장과도 거리가 멀다. 대신 자가용과 배달 차량의 소리가 버스 자리를 메웠다. 그때는 버스 소리가 시끄럽긴 했지만 특정번호 버스 놓쳐서 발 동동 구르는 일은 없을 정도로 버스가 끊임이 없는 게 편리하기도 했고, 정류장도 정말 엎어져서 코 닿을 정돈 아니고 그 이후로 한번 정도 구르면 닿을 정도로 가까워서 '그러려니' 싶었다. 편리가 주는 안락이 소음이 주는 불쾌를 이겼고, 버스 말고 딱히 밤에 귀를 괴롭히는 소리 또한 떠오르지 않았다는 뜻이다.


헌데 따져보니 당시가 스무 살이라 쳐도 벌써 십오 년 전이니 그때까지만 해도 택배와 배달이 지금처럼 활발하진 않았을 것이었다. 당장 나만 해도, 인터넷 거래를 할 수 있었을 때조차 꺼림칙해서 시작 시기를 늦추었던 기억이다. 그러다 이제는 일부상품은 일부러 인터넷으로 주문하는 게 필수일 정도로 인터넷 쇼핑이 익숙해진 지 오래다. 배달음식 또한 짜장면, 피자, 치킨이 전부였다. 지금은 고도의 스마트폰시장 발달이 어마무시하다. 매장에 직접 통화할 필요도 없이 앉아서, 심지어 누워서 눈뜨고 손가락 하나만 까딱하면 배달이나 택배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됐다. 최근에는 전설의 전염병 코로나 때문에 배달이 필요 없던 혹은 할 수 없던 음식까지 배달에 뛰어들었다. 하물며 나는 배달음식을 자주 먹지 않는 사람이었는데, 코로나 시절이 육아와 겹치며 그만 자제력을 잃고 배달음식의 종류를 조금씩 다양화하기 시작했다. 족발보쌈을 시작으로 가끔 김치찌개나 감자탕 같은 한식류도, 때론 돈가스나 덮밥, 떡볶이, 심지어 카페나 베이커리메뉴도 있었다.  


세상도, 사람들도 요란하고 아프거나 피곤했고 심지어 죽어나갔지만, 나는 밖에나 잘 못 돌아다닌다고 답답해할 뿐, 집에서 배달음식이나 새벽배송도 시켜 먹을 수 있고 편했다. 코로나 사태가 심각 수준은 끝났다만, 한번 오르면 내리지는 않는 과잣값처럼, 메로나 값처럼, 한번 시작한 배달 가능성의 친밀감은 내가 배달음식을 시키는 횟수가 적어졌을지라도 절대 멀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언제든지 시켜 먹을 수 있는 사람이고, 단지 내가 안 시켜 먹는 것뿐이고, 나는 언제든지 전날 오후 12시 전까지만 눈알을 굴리고, 그에 협응해 손가락만 움직이면 다음날 새벽에도 신선식품을 받을 수 있었다. 안 해본 사람 아니고, 영원히 누리지 않을 생각 또한 없기에 여기에 시끄럽다고 생각하는 자신이 좀 위선자 같았다.


결국 내가 시끄럽다고 생각한 그 소리를 만든 원인에는 나도 있었다. 단 한 번도 새벽배달을 하지 않았다면 떳떳했을 건데 단연코 아니었다. '서비스가 있으니까 애용하는 게 자연스러운 게 소비자의 행동 아닌가'라고 말 그대로 자연스러운 것으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좀 헛헛했다.'


솔직히 내일 그거 먹지 않는다고, 내 그 재료가 없다고 죽는 거 아니고, 새벽이나 밤에 일하고 온 사람이라 음식이 필요하다해도 굳이 그 시간에 배달까지 시켜서 음식을 먹어야 할 필요는 없는 거 아닐까. 새벽서비스 - 그거 없어도 되는 거 아니냐는 말이다. 없으면 그냥 좀 아쉬울 뿐이지 죽는 거 아니지 않냐는 말이기도 하다. 있으면야 나도 너도 편한 건 사실이지만, 애초에 없으면 깨어있는 시간에 좀 더 부지런 떨어서 매장에서 장을 보아오는 데 일정을 신경 쓸 것이고, 배달이 없으면 그전에 어떻게든 비상식량을 쟁여놓을 수 있지 않을까.


이전에 베란다에 캠핑의자 깔아준 남편과 그 캠핑의자의 생각 보다의 쏠쏠함에 대해 얘길 하다가, 시끄러운 오토바이 소리얘길 했었다. 그때 남편이 생각지도 못한 얘길 해줬다. 그 당시에 나는 난잡하게 고양된 어투로 시끄러움을 강조했는데, 남편은 표정하나 안 변하고 '근데 그 시간에 퇴근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랬다. 그땐 그럴 수도 있겠네.  했는데 글을 쓰는 지금 보니 그때 퇴근했다고 해도 꼭 그 시간에 배달음식이어야 하느냐 말이다. 도처에 24시간 편의점이 깔린 우리나라에서 새벽서비스까지는 필요 이상의 무엇이란 생각이 들었다.



난 분명히 밤의 소리라고 해서, 우리 동네서만 들을 수 있는 비 온 뒤 맹꽁이의 소리를 쓸 생각이 시초였는데, 아무래도 그 얘기를 다음에 써야 될 것 같다. 좋은 소리를 쓰고 싶었는데, 잠시 떠오르는 그 소리를 한 문장에서 끝낼 수가 없었다. 가끔은 비나 눈이 내리는 소리가 반갑다. 비는 땅에 떨어지는 그 소리가 좋고, 눈은 이 세상의 소음을 하얗게 안고 내려앉아 주는 듯해서 좋다. 그리고 그런 날엔 배달업이 보통 중단되니까 고요해서 좋다. 철이 없을지언정 순수히 '단순한' 마음으로 그런 날에는 '모두가 아무런 피해 없이', 무언가 내리는 소리만이 울리는 고요 안에서 쉬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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