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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해연 Aug 07. 2023

그런 어른

전신거울 앞에 서서 든 생각

 늘 그랬겠지만, 유독 요즘 사회에 혼란과 혐오, 극단을 오가는 사건과 그 뒤를 많은 목소리가 잇는다. 몰입도 했다가, 한숨 질 희망도 저버렸다가 내가 가져야 할 마음, 행동을 떠올리길 반복한다. 그 와중에 나는 내 할 일을 똑바로 하고 있느냐. 그것도 아닌 것 같다. 매일 흔들리고, 매일 부족했던 것과 잘한 것을 저울질하며, 못난 마음을 돌봤다가 좋 마을 치켜세우기 바쁘다.

교권추락에 관한 이슈에서 그놈의 책임론을 따지다가 어떤 사람들은 끝끝내 오은영박사의 이론을 탓하기에 이르렀다. 먼저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고, 솔루션식의 육아방식은 틀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전통적 육아며, 부모의 권위를 세우라는, 왠지 반대 여론을 이끌어 내는 듯한 또 다른 육아전문가들의 인터뷰를 너도 나도 내보내기 바빴다. 오은영식 육아를 멈추고 쉬운 육아를 하라며 부모의 권위를 지키라는 어떤 유명 박사의 영상에는 사이다고 주옥같다는 댓글이 줄을 이었다.

(*교권추락이슈에 대해서는 아주 이전부터 통감을 하고 있던 사람이고, 이 시대 부모로서 바른 어른이 되고 아이 역시 바르게 이끌어야 한다는 책임을 갖고 있으며, 책임 이전에 원인은 '한참 잘못된 인격을 갖춘 사람들의 사고와 행동'자체에 있다고 생각다. 이 사안에 대해서는 여전히 생각도 많고, 조심스럽다.)

내가 잘못 이해를 하거나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거기도 하겠지만, 어쩜 이렇게 극단을 달리는지 신물이 난다. 한편 쉬운 육아를 말한 박사는 아이한테 끌려다니고 육아가 힘들다는 인식이 팽배하니, 저출산문제가 전 세계 일위를 달리고 낳아도 한 명만 낳고 나가떨어지는 사람들이 속출한다고 했다. 아이를 갖기 전에 나는 딩크족의 마음도 완전히 이해하는 사람이었고, 단 한 명만 계획하에 겨우 낳았으며, 낳고 나니 정말로 더 확신에 차서 더 이상의 아이를 가질 계획도 생각도 없는 사람으로서 나는 뜨끔했다. 정확히 내가 그 한 명만 낳고 나가떨어진 1인 이어서였다.  

내가 예민한 감성으로 육아를 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어서, 그것 만큼은 좋은 방향성으로 가기 위해 주의를 기울이고 있긴 했지만, 틀렸다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분명 육아가 양육자에게 형언할 수 없는 보람과 빛나는 소중함과 가치를 가져다주는 데는 동의하지만, 힘들.. 아니 쉽지 않다는 것에 더욱더 정확하게 적극적으로 동의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고됨조차 인정을 하되, 부부가 합심해서 같이 보듬어 나가는 과정이 얼마나 눈물겹도록 아름다운가.라고 떠오를 때마다 힘겹게 스스로에게 인정을 더해주지 않았던가. 육아는 힘든 게 분명하고, 그렇기에, 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단하며 경이로운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시간을 할애해서 아이랑 최대한 많은 시간을 함께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고, 거기에 따르는 희생도, 온전히 마땅하다고 생각했다면 거짓이겠지만 결론적으로는 당연하다는 사람이었다. 최소한 부모라면은.

문제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눈에 밟히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아이가 아프든 말든 멀리서 자기 할 일 하는 사람들. 내가 아닌 누군가가 아이를 먼저 봐주는 것이 아무렇지 않은 사람들. 아이보다 내 할 일이 우선인 사람들. 나와 결코 먼 곳에 있지 않은 그들을 보며 나는 도대체 타인의 손에서 아이가 얼마나 아파야지, 얼마나 더 이상의 상급병원으로 엠뷸런스를 타고 가야지 그 아이를 직접 보고 데려갈 거냐며 혀를 끌끌 차다 못해 화를 내다 침을 냅다 튀겼다.

마침 나는 육아 하나만 보고 조금 하던 일조차 자발적으로 그만둔 지 삼 개월 된 때였다. 당장은 자아성취를 포기한 엄마의 자격지심의 발언일까. 그럴 수도 있지만 아니기도 하다. 아무리 돈이고 자아가 중요하다고는 해도, 나의 선택과 행동에 자긍을 갖고 있었는데, 이상하게 세상의 절반정도 되는 사람들은 그 아이보다 우선하여 벌어들인 돈의 가치를 더 대단하게 여겨주는 뉘앙스를 보고 내심 흔들리고 있었다.

일단 나는 지금 뭘 더 잘하려고 하면 탈이난 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다 그만두고 주어진 시간에 내가 최대한 즐거울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하며 겨우 마음을 붙들었다. 아이를 먹이고 씻기고, 집을 청소하고, 요리를 하고, 치우고, 아이와 놀고, 나가고, 집에 와서 다시 씻기고 먹이고 씻기고, 드디어 밤이 되어 자려고 이불을 정리해 두고 잠깐 아이를 혼자 놀게 하고 혼자 씻으러 욕실에 들어왔다.

다 벗고 전신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볼 때 이상하게 딱 이때 매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육아이론이고 다른 사람이고  생각이고 뭐고 집어치우고,
"야, 오늘도 ** 수고했다. 잘했다. 대단해. 멋지다 너."
내가 왜 대단하고, 얼마나 발전했고, 앞으로는 어떨 것이며- 같은 사족을 붙이고 싶지 않다. 유독 쇄골만 앙상한 상체, 한 줌 두 개의 가슴과 조금만 더 들어가면 좋을 배, 그보다 조금은 더 업되었으면 좋을 엉덩이를 보며 왜 하필 그때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잘하고 있다고, 괜찮다고. 꾸준히 좋은 마음, 올바른 마음과 행동만 크게 갖고 가자고. 고되더라도, 안고 가며 괜찮은 어른이 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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