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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해연 Aug 08. 2023

겨우 세 번째

Guardians of the Galaxy Vol. 3


"또 봐?"
"또 봐라니요, 이제 겨우 세 번째야."
"후..(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나왔다. 오타쿠."

지난 주말 저녁, 요리를 하면서 주방 한켠에 휴대폰을 켜놓고 오른 귀 한쪽에 무선 이어폰을 꽂아놨다. 휴대폰 액정에서 움직이는 것은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3'였다. 그걸 보고 지나가던 남편이 못 말리겠다는 표정으로 한말이었다. 최근 개봉한 것을 알고도, 영화관에 갈 짬이 없어서 못 보고야 만 그 영화를 아쉬워만 하고 있었는데, 남편이 시큰둥하게 다운을 받아줬다. 고화질이라며 생색을 엄청 냈는데 그마저도 보질 못하다가, 아이가 잠이 든 어느 날 밤 베란다에 거의 눕듯이 앉아서 드디어, 람에 성공했다. 그 이후 혼자 있는 틈틈이 가오갤 3을 틀어고, 심지어 진지하게 다시 본다.  

아직은 에게 있어 모든 안일은 의무감에 애써 하는 일이기에, 그때의 애쓰는 마음을 다른 좋아하는 것들이 덮을 수 있게 하는 편이다. 지디의 삐딱하게 같은 완전히 반항적으로다가 신나는 노래나, 좋아하는 디제이의 라디오를, 오늘처럼 꽂힌 영화가 있다면 그 영화를 무한 재생으로 틀어놓는 식이다. 이왕이면 가장 후가 정신건강에 제일 좋다. 꽂힐 게 있다는 것이, 그에 마음껏 꽂힐 수 있는 것이 이토록 즐거운 일인 것을. 

"" 라니, 이제 겨우 세 번째란 말이다.

그나저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3은 가히 재밌다고 하기도, 좋았다고 표현하기도 싫을 정도로 인상 깊었다. 허나 난 꽂혔다는 표현을 쓸 만큼 좋은 모든 것들에 이런 식이다. (글을 쓰면서야 든 생각인데, 날 보고 절레절레하는 남편에게 지금 바로 그 오타쿠 능력덕당신과 결혼 가능이었지도 몰랐을 일이라고 말해줄걸 그랬다.) 내용에 관해서야 하고픈 말이 너무도 많지만, 줄거리나 디테일을 제하고도 마음에 진하게 남았던 것이 있었다.


유난히, 이번 편에서는 캐릭터에도, 배우들에도 인간미를 느꼈까. 날렵했던 크레글린의 호리리해진 몸과, 대비되어 더 눈에 띄는 축 처지고도 볼품없이 나온 배, 사랑하던 연인 가모라, 아버지와 다름없던 욘두를 잃고 술독에 빠지다 못해 쓰러져 네뷸라에 들려 나오는 피터, 그리고 그의 나잇살을 머금은 슬쩍 굵어진 목소리들을 보고 들으며 대한민국의 나 서른다섯 살 오타쿠 여자는 세월을 체감했다. 동시에 나이 들어가는게 싫게 느껴지지 않는 이상야릇한 순간이었다.   


이번편의 주인공이라고 볼 수 있는 로켓과, 익숙한 노래 creep 멜로디와의 시작, 그리고 '술'픔에 스러진 피터를 안고 가운데 등장하는 네뷸라를 필두로 새로 꾸려진 가오갤의 영웅들로 완성되는 오프닝. 화려하지 않아도 심지어 힘이 없어도, 걸어가는 이란_ 난 이미 여기서 끝났다고 생각했다.

가디언즈오브갤럭시 3 스틸컷



가오갤 캐릭터를 벗은 실제배우들은 조금 더 세월을 비껴간 탑할리우드 연예인 외모이겠지만, 가오갤 영화사 측이 아마도 이들의 나이 들어가는 모습까지 세세하게 표현한 게 절절하게 느껴졌고, 그게 잔잔하게 인상깊었다. 늘 멋지고 젊은 모습의 스타로만 내 마음속에, 눈 속에 남아있는 것도 좋지만, 내 연예인과 동시대를 살아가는 것도, 같이 나이 들어가는 것도 영광스러운 기쁨일 테니까.

한편 나는 마블 시리즈 중에서 가디언즈오브갤럭시를 제외하고도 아이언맨, 어벤저스, 블랙팬서, 닥터스트레인지, 스파이더맨(톰홀랜드 편만)을 좋아한다. 영화 자체는 보지 않았지만 어벤저스 안에서의 슈렉 아니 헐크도 좋아하고, 블랙위도우도 좋아한다. 임팩트는 아무래도 아이언맨과 어벤저스가 강했지만, 살짝 비주류 느낌인 가오갤의 감성이 좀 더 친숙하고, 나만의 것으로 만들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하지만 이미 가오갤도 탑 중에 탑인것은 안비밀이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를 처음 봤을 땐, 처음부터 팀이 아니었던 제각각의 캐릭터들이 자아내는 가오갤만이 가지는 정신없는 티키타카에서 집중이 분산되기도 했었다.


그런데 이번 편에서는 완전히 내가 부산스러운 티키타카에 적응했음을 특별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루트를 제외한 모든 캐릭터들이 하나같이 츤데레 성격에, 도대체 진지한 대화가 전개되는 게 어려워 보이는 인물들 속에서도 각자의 위치에서 같은 뜻을 향하여 가거나, 결정적으로 동료가 좋을 것들을 지향하는 모습은 가오갤만의 가장 큰 매력포인트가 아닐까 싶다.

그런가 하면 가오갤 모든 시리즈가 좋았지만, 단연 이번 vol3 가 최고였다. 팀 안에서 더 이상의 배신은 없어 보이는 탄탄함이 있었고, 그 탄탄함 안에서 서로의 가장 내밀한 부분까지도 알아가고 인정하며 안고 가는 전개가 악의 무리가 주는 긴장감 속에서도 안정감을 주어서였다. 처음 영화를 다 보았을 때 이런 생각까지 들었다. 내가 만약 이걸 십 대에 봤다면, 미친 듯이 공부해서 가오갤영화사팀에 들어가리라는 꿈을 꾸었겠다는 생각.

지금은 글렀으니, 결코 질리지 않을 이 영화를 3번이 아니라 30번 300번까지 봐서 대사를 모로리 외워버릴 태세이다. 내 가오갤 3은 영화가 아니라 인생이었다. 미안하지만 가오갤로 시작하는 글은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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