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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해연 Aug 09. 2023

읽는 기쁨과 슬픔

글의 세계가 이토록 무궁무진 했는가.
 요즘 쓰는 기쁨보다 읽는 충만에 빠져있다.
자주, 그리고 잘 쓰고 싶은데, 글을 사랑하는 사람을 통해서, 그가 추천한 책과 작가를 통해서, 또 그 소설 속 주인공이 애정하던 책 안에서, 어쩜 그때마다 매번 '새로운' 글과 사람을 만난다. 그게 매번 좋아서, 자꾸만 쓰다 말고 계속 읽다.

앞서 글을 애정했던 사람들이 해주는 작가의 소개와, 그로써 내가 알아가는 글의 알아감에는 장르도 다양하다. 주로 내가 읽었던 에세이를 넘어서 소설, 철학, 미술 다양한 분야에서 여러 사람이 쓴 글이 다가온다. 자기계발서나 대놓고 위로하는 문장을 제목으로 채택한 책을 제외하고는 읽는데 거리낌이 없다. 그렇게 내가 읽는 글 안에는 작가가 실제로 경험한 에피소드와 생각, 픽션, 특정 철학을 객관적으로 알리면서도 그 철학의 연장선에서 글쓴이 본인이 겪은 이야기, 미술작품을 설명하며 곁들이는 작가의 생각 등다.


글이기 전에 글자는 대부분의 직선과 일부의 곡선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에서 재미라고는 하나도 없어 보인다. 그리고 글자는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에게는 동일하게 주어진다. 글자가 글이 되면 눈에  띄는 알록달록한 시각적 요소가 없음에도 어쩜 그리 글쓴이들 마다마다 감성과 분위기며 성정이 다른지 놀랍다.


앞서 잠시 언급한 두 가지 장르의 책을 선호하지 않는 이유는, 특유의 대놓고 말하고 용기 주려는 쉬운 태도가 썩 내키지 않아서다. 반대로 소설이나 전혀 관계없을 것 같은 글 속에는, 은근하지만 묵직하게 주는 통찰이 앞선 것에 견줄 게 못될 정도로 짜릿함 것임을 알아서다. 심지어 쉽고 간단하게 위로하는 것은 글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말 같아서, 거의 읽는 즉시 휘발된다. 오히려 읽었을 때 어렵고 무거운 마음으로 접근했던 글 속의 문장들 오래도록 머리가 아니라 마음에 남는다. 잊더라도 읽었을 때의 기억만은 가슴 구석구석 얕은 힘이 되어 쌓인다.

그 놀라움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글을 쓴 작가에 대해서도 알게 되는데 그 역시도 글의 종류만큼이나 다양하다. 본업이 작가 자체인 사람, 처음부터 작가를 지망하며 살아왔고 된 사람, 처음 직업은 작가가 아니었으나 지금은 전업 작가가 된 사람, 본업이 따로 있지만 글을 쓰는 사람, 작가 중에서도 시인인데 다른 직업도 있고 에세이도 쓰는 사람 등.


어느 순간까지는 그냥 글을 잘 쓴다고 느껴지는 사람의 글은 다 '좋다'의 영역에서 결만 다르게 느껴졌다. 그런데 글 쓰는 사람들이 써주는 매력을 꾸준히 느끼다 보니 이제는 단순히 사람과 글의 결 정도가 아니라, 솔직히 '격'이 다르다는 걸 새롭게 알아간다. 태초 본업이 작가인 사람의 글에서 말이다.


시든 소설이든 에세이든 간에 스스로가 칭하길 본업이 작가인 사람들이 쓰는 글의 격은 주업이 다른 일이고 부업이 글쓰기인 사람(이들도 이미 타고나기를 수준급이지만)의 글에 비해 격이 다. 시, 소설, 에세이를 이 순서대로 나열한 것에도 냉정하지만 이유가 있다. 나는 에세이를 읽는 양이 절대적으로 많은데, 조금씩 소설에도 매료된다. 에세이와는 다른 무게감과 몰입감 또 직접적으로 교훈이나 위로라고 칭하지 않는 조심스럽고도 슬프며 은은메시지가 다름이랄까.


한편 영역은 거의 무지 수준일 정도로 알지도, 읽지도 못하고, 어쩌다 읽어도 감흥이 없으며, 그래서 잘 안 읽지만 세 분야 중 가장 처음에 놓은 이유가 있다. 본업이 시인인 사람이 쓴 에세이읽을 때 어마무시한 내공을 느껴서다. 잘은 모르지만 얼핏 알기로 문예창작분야에서도 탑은 시라고 들었다.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대충  시 가장 쉬워 보이지만, 반대로 가장 어렵고 그다음 소설 그다음이 에세이라고 했다. 그게 이유는 아니겠지만, 분명 시를 쓰는 사람이 쓰는 보기 드문 줄글에서 어마무시한 내공 있음은 분명했다.

최근에는 그림책이나 동화도 읽게 됐는데 읽을 때마다 여운이 크다. 발적이지 않았던 우연이 가져다준 기쁨이 마나 크고 고마운지. 기는 일반 소설이 주는 묵직함과 결이 다. 가볍고 쉽지만 결코 우습지 않다. 오히려 마음을 적시는 글과 그림 세계의 힘이 어마무시하더란 말이다.

취미로 글을 깨작거리는 내가 보기에, 한동안은 본업 작가들은 글을 쉽고 자유롭게 쓰고, 쓸 때마다, 희열 느껴질 것 같았다. 요즘은 감히 상상해 보건대 절대 아닐 것 같다. 나는 훌륭하다고 느껴지는 글을 읽을 때마다 마음이 힘들다. 고작 읽기나 하는 나조차 이런데 그 창작해 낸 사람의 정서야 어땠으리야. 단순히 글 에피소드가 슬프고 격정이어서 그런 게 아니다. 작가들의 글에는 어쩐지 감정의 노출이 빠져있는 듯하다. 슬픔도 격정도 다 읽는 내가 느끼는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서히 잠식되고 그 깊이에 무게를 싣게 되는 독자가 될 때 만족스럽다.

계속 읽으면서도 끝내는, 나도 감정을 제하고 건조하게 글을 쓸 수 있고 싶다. 에피소드가 없이도, 있이도, 화내지 않고, 울부짖지 않고, 그렇다고 쾌재라 흥분하지 않고, 가만한 힘으로, 묵직하고 대담하게 쓸 수 있고 싶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글이란 결국 인격수양의 연장선 같다. 이렇게 다시, 인생에 좋으면서도 쉬운건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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