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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해연 Aug 12. 2023

태풍 오던 날의 일기

1. 태풍 우려로 아이를 어린이집에 결석시키고 집에 있었다. 마땅한 일이었는데, 나는 전날부터 엄습하는 무언의 피로감에 잠들었다. 이런 날은 꼬박 집에 머물러야 하기 때문이다. 하물며 아픈 것도 아니어서 병원을 왔다 갔다 하며 시간을 때움 할 수도 없는 거였다. 그렇다고 병원이라도 가고 싶다는 건 절대 아니고 병원을 거들먹거릴 만큼 목적지를 두고 나가고 싶다는  절실함이었다. 역시나 나는 일어나자마자 졸렸고, 그날따라 아이는 늦게라도 일어나긴커녕, 평소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일어났다. 그래서 나는 더욱 적극적으로 졸렸고, 꾸준히 졸렸다. 아침간식을 먹고 이제 좀 논 것 같다 싶었는데 고작 10시였다. 하루를 통으로 봤을 때 지금은 마치 꼭두새벽 같았다.

2. 엄마가 된 후로 나는 내 신체적 건강을 전제로 깔고 육아를 일 순위로 우선하고 있지만, 여전히 육아는 어렵다기보다 마냥 항상 즐겁지만은 않다. 이 사실이, 마음이 자책이 되기도 한다. 항간에 육아가 어렵게 느껴진다면 잘못된 거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던데, 나도 좀 쉽고 싶다. 그렇다고 엄청나게 대단한 걸 해주는 것도 아니며, 그렇게 하고 싶지도 않은데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나는요. 하여간 포켓몬 인형을 가지고 역할놀이를 해야 하는데, 도저히 눈도 뇌도 떠있을 수가 없도록 졸려서 나는 소파에 목과 등만 기댄 채로 딱 7분만 잘게, 해놓고 한 번을 깼다가 다시 자고 도합 20분 정도를 눈만 감고 있었다.

3. 아이가 내가 말한 시간이 되자, 마구 흔들며 깨웠다. 이럴 때 정확한 건 너무 가혹하고도 자비도 어이도 없다. 누워버리면 더 늘어질 것 같아서 앉은 자세로 거의 눈만 감고 있었고, 귀로는 아이의 키즈유튜브 소리가 똥 때리고 있었는데도 살짝 잔 것 같은 효과가 있었다. 분명 눈을 감기 전 보다 맑아진 뇌와 최소한 뜰 힘이 생긴 정도의 눈꺼풀은 느낄 있었다. 그리고 아이가 나를 흔들어 재낌과 동시에 나는 소파에 기댄 등을 저버리고 옆으로 넘어졌다. 끽해봤자 내 골반정도까지 오는 키인 여섯 살짜리 꼬맹이의 손길에 이렇게 흐느적거려서야. 근데 지금보니 그모양이 우습기도하고 웃기기도 하다.

4. 태풍은 정통으로 지나간다는 늦은 시각조차 지나갔으며, 밖은 비와 바람만 여전했다. 잠시 눈 감았던 힘으로 일어나서 그날 나는 아이와 함께 혹은 혼자 기본 집안 청소에, 욕실청소까지 두 개를 완료하고 절은 상태로 쓰레기라도 버리러 아이와 함께 집을 나섰다. 밖은 허공에서 무언가 날아오면 처맞을 정도의 비바람이 몰아치진 않았고, 심지어 대기가 차고 시원하고 청량했다. 그래서 좋았는데 어느 곳에선 정말로 우려와 위험이 가득한 지금을 살아가고 있을 생각에 다행이란 말은 위선적으로 느껴졌다. 거의 1%의 차이로 외향적 기질에 가까운 나는 이렇게 쓰레기라도 버리러 집밖으로 나오는 것에도 해방감으로 겨워했다. 아마도 지금은 집이 쉬는 공간이 아닌 지 오래돼서 그럴다.

5. 점심에, 저녁까지 다 먹고 식기 마무리와 태풍이 지난 후 산책까지 마치고 밤이 왔다. 오늘만큼은 까마득해 보였는데, 정말로 밤이 와줬다. 그도 잠시, 밤이라고 하기엔 아직도 8시이기도 했다. (어차피 안 잔 지 오래됐지만) 낮잠도 안 잤으니 오늘은 기필코 일찍 재우리라_ 고 속으로 장담을 했는데, 어? 해보니 10시가 되어있었다. 약간 절망스러웠다. 나마저 대충 씻고 완전히 이불에 누워 잘 준비를 하면 10시 반은 되겠지. 그러고 이러다 일찍은커녕 늦은 11시에 자겠지. 오늘은 일찍이라도 재우는데 성공하고 밤치곤 일찍 내시간을 가질줄 알았는데.. 아이가 목욕탕에서 잠시 노는 것을 보면서 억지로 밀린 빨래를 개려고 하는데, 드디어 개려고 하자마자 날 불렀다. "엄마! 이것 봐!"

6. 순간, 틀린 줄 알면서도 제어할 수 없는 짜증이 훅 올라왔다. 목구멍보다는 그 머리 정수리 쪽으로 솟은 짜증을 엄마의 이름으로 온몸에 다시 흡수시키고, 아이를 보러 갔다가 다시 빨래더미 앞에 앉았다. 짜증이 가라앉으니, 목과 어깨에 이은 등의 통증이 느껴졌다. 오늘 나는 한게 많은데 어깨가 아플만한 아무것도 한 게 없었다. 보통의 직장인처럼 컴퓨터를 오래 하지도, 오래 앉아있지도, 오래 서있지도 않았다. 컴퓨터는 제발 쳐다보고 싶었고, 제발 가만히 앉아있고 싶고, 서서 있더라도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다면 좋았을 것이다. 별거 아닌 것 같은데 계속 뻐근하게 눌러대는 오른쪽 등통증과 기분 나쁘게 눌러대는 어깨통증은 얼마 전 대충 한의원 물리치료로 슬쩍 없앤 줄 알았는데, 온종일 아이와 함께한 오늘 다시 시작됐다.

7. 이 모든 게 압박과 긴장감을 동반한 은근한 스트레스로 인한 걸 수도 있겠구나란 걸 짐작하니, 내가 이토록 자유로운 시간을 갈망했던 사람이었나. 그게 좀 의아스럽기도, 즐거울 수 있는일을 만족하지 못하는 거에 못나게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자책하면서도 끝내 거부할 수도 없었다.

8. 결국 아이가 자는 시간은 오고야 말았다. 그런데 늦어서 억울한 마음은 덤이었다. 그대로 쳐 눈을 감고 나도 잘 자신이 마구 있었는데, 반대로 이럴 때는 졸려도 눈을 뜨고 더 나아가 몸을 일으켰다. 나란 사람 도대체 무언가. 글만 보면 꽤나 못났는데 나. 낮에 한 번도 가만히 내 시간을 가져보지 못한 날은 정말 이 시간에 영화에도 빠질 힘이 없다. 의자에 거의 눕듯이 기대어 손가락으로 휴대폰만 겨우든 채 게임과, 유튜브, 사진첩, 핀터레스트 굴려보기를 무한반복이다. 왜 이러고 있지 싶어 생각해 보면, 분명 이런 날은 멍 때리고 쉬는 시간을 가져보지 못한 날이었다. 책도, 영화도, 넷플릭스도 볼 생각이 들질 않는다. 당연히 그 이상의 영역에 있는 글쓰기는 엄두도 못 낸다.

9. 한편, 어제오늘로 이어진 태풍전야, 태풍이 지나갈 때, 지나가고야 만 자리의 공기는 추울 정도로 시원했다. 시원했다고 표현이 되는 이유는 똑같은 비여도 장마 때의 습함이라고는 전혀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들어오는 공기의 차가움은 가을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작년까지는 가을이 오면 당시의 해가 꺾이는 기분이라 허무한 느낌에 아쉬워하곤 했던 감정은 들지도 않을 만큼 그냥 시원한 것 자체로 대책 없이 좋기만 했다.


얼마나 내가 여름의 더위를 '견디고만' 있었는지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도대체 얼마나 더울지 두려워하며, 여름의 감기와 질병들을 두려워하며 혹은 실제로 싸워가며 버텼는데, 태풍이 오고 나니 같이 찾아온 찬 공기가 이토록 좋을 줄이야. 이 시원함은 온 창문을 막고 튼 에어컨의 것과는 비교가 안 되는 청량함이었다.

10. 체질이 조금 바뀌었다고는 해도, 나는 타고난 열의 인간임이 분명했다. 이렇게 지나고 보니 더욱더 여름이 ** 싫었다. 끝내 견뎠다는 표현밖에 쓸 수가 없다.
시원함과 상쾌가 주는 유일한 위로 속에서 그날도 밤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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