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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해연 Oct 10. 2023

초심


초심, 처음마음이란 게 떠올랐다. 그게 떠오른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을 잃어서다. 꽤 최근까지 나를 생동력 있게 하는 행위는 글을 쓰는 것과 읽는 것이었다. 즐거움을 넘어서 생동력까지 가게 된 데에는 단순히 일단 쓰는 것을 넘어서 '잘'쓰고 싶은 마음이 커졌기 때문이었다. 글을 쓰고 빈도는 적지만 나름 꾸준히도 하다 보니, 쓰고 싶은 것도 많아지고, 생각도 많아졌다. 그런데 잘 쓰고 싶자, 그런 글을 쓰는 사람에 맞게 (인격적으로)잘 살고 싶어 졌고, 생각조차 잘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매일 꾸준히 글을 쓰고 그 씀을 마침까지 가게 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완전히 게으름과 인사하지 못한 것이 이유겠고, 육아가 함께하는 일상에서 내 것을 꾸준히 하는 것에는 나는 아직 무언가를 세우는 일보다 세우려고 하다 무너지는 일이 많다. 그렇게 글을 완성하는 기쁨에서는 멀어지고, 여전히 잘 쓰려고 하는 마음은 있고, 결국은 무엇이라도 쓰는 것조차 하지 못하고, 반대로 가고 있는 나를 마주했다. 

취미로 글을 꾸준히 쓰겠다고 마음먹은 데는 이 이유가 가장 컸다. 아이와 함께하는 일상에서 아이의 어록이 담긴 순간들을 빛나게 기록하겠다는 것. 육아는 고됐지만, 아이가 말을 하면서 기가 막힌 순간들이 정말 많았다. 나는 사진도, 영상도 많이 찍는 엄마가 아니고, 그렇다고 이걸 다 잊기는 싫으니 글만으로도 나만큼은 찬란하게 기록해 두자. 실제로 그 일상을 많이 쓰진 않았지만, 소중한 순간을 향한 특유의 시선을 유지하니 일상이나 생각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고와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자, 일상에서 아름다운 시각적 요소가 더 크게 와닿던 것처럼 말이다.


잘 쓰고 싶단 생각에, 그렇게 생각부터 멋지게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에 생각만 하다가 잘하고싶에만 머무르고 그나마 쓰던 습관이 무너지면 다시 쌓는 걸 더 무겁게 여겼다. 끝내는 글이 어렵고 멀어진 기분이다. 이전엔 글을 쓰기 전에 설레고, 쓸 땐 재밌고, 쓰고 나선 성취감이 느껴졌는데, 이제는 쓰기 전부터 무겁고, 쓸 때는 답답하고, 쓰고 나서는 마음이 무거운 게 많아졌다.


아이와의 기쁜 순간을 쓰려고 글을 시작했던 나는 어느 순간, 글을 더 쓰고 싶은데 자꾸 아이를 봐야해서 화가 나고 있었다.

'이게 아니었는데?'

그림 그리는 마음도 예전같지 않고 초심을 잃었긴 마찬가지다.



왜 나는 매번 스스로 단순한 기쁨을 발로 차버리는 걸까.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나는 생각이 바뀌고 있다. 여전히 나는 기쁘기만 한 순간에, 하물며 역경을 이겨내거나 견뎌내 가는 순간에만 집중하며 단순하게 기록만 할 수 있다. 특히 전자에 집중하며 글을 쓰는 행위는 내 삶을 더 단순하고도 윤택하게 해 줄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 초심과 기쁨을 저버렸고, 화가 나는 순간이나, 어렵고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들에 집중하는 태세를 취했다. 지금 이 글을 쓰려고 할 때는 그 초심을 다시 찾아서 단순하게 가자고 쓰려던 참인데, 바뀌었다.

기쁨은 기쁨대로 다시 찾고, 무겁고 어렵지만 가기로 했던 그 길도 꾸준히 가보자는 생각이다. 대신 '잘'하자는 생각은 버리는 것이 좋겠다 싶었다. 무겁고 어렵지만 그것조차 견디고 해 보겠다는 것과 잘하자는 것은 다르다. 어차피 잘은 내가 어찌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동시에 초심은 수시로 떠올리고 품는 게 맞다.


그런 의미에서 여기 느림보씨는 다시 가보기로 한다. 그나저나 나는 요즘 집에서 키우는 달팽이한테서도 위기감을 느낀다. 달팽이의 느림이 나와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그들도 가만 보니 꽤 빨랐고, 부지런했으며 심지어 규칙적인 일상을 가지고 있다. 달팽이가 오히려 나를 보며 비웃을지도 모른다. 세상에 비교할 것은 아무것도 없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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