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해연 Oct 06. 2023

Home sweet home 1

즐거운 우리 집


결혼을 하고서부터 비로소 명절이 명절다워졌다.


나는 양씨, 남편은 박씨. 따지고 보면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의 집 제사, 차례이지만 피라고 대수가 있는가. 혈육을 따지기 전에 생각이란 걸 해보면 피라는 게, 피다운 피가 되는 것도 그렇게 쉬운 것만은 아닌 것 같다. 하물며 나는 양 씨 집안 제사도 책임감이란 단어와는 거리가 멀다. 그런데 씨네 와서 책임감으로 제사상을 만드는 또 다른 성씨를 가진 여인네의 일손을 도운다. 처음 봤을 때 박씨 집안 제사상은 세상 화려했고, 현재도 여전히 화려한 중이다. 여기는 각종 작고 큰 어머니 아버지 등의  친척들이 한데 모여 준비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상다리가 후들후들하다.

우리집 근처 남의집 감나무와 모두의 하늘


조금 설명을 붙여보자면, 기본으로 올리는 제사음식을 깔고 그 위 멱을 따지 않은 삶은 닭과, 그 닭이 낳았는지 아닌지 모르는 역시 삶은 달걀들, 먹지도 않는 쌀전이 종류별로 쌓여있다. 돌아가신 박씨 집안 조상님들을 위해 차리고 절을 하고 왔다가시며 맛있게 드시고 가시길 빌어본다. 그걸 준비하는 박씨네 며느리인 우리 어머님 불평 한마디가 없으시다. 그에 박씨아들인 시아버지는 은근한 고마움을 느끼고 계시지 않을까 가늠해 본다. 그에 비해 나는 요리손재주도 없고, 상차림도, 설거지도 좋아하진 않지만, 나 역시 불만이 없고 양씨와 김씨, 가끔 이씨, 그리고 대부분의 많은 박씨들이 대형 팬앞에 앉아, 부엌과 거실을 넘나들며 음식을 만든다.  

요즘에는 은근히 몹쓸일이라도 되는 듯 치부되는 차례상 차리는 일상이 그렇게 나쁜 일인지는 모르겠다. 솔직한 심정은 나만큼 그런 절차가 귀찮은 인간이 있을까 싶다만. 그 시간에 잠이라도 더 잔들, 다른 의미에서 화려한 해외여행이 시간을 대체되는 게 딱히 더 바라지진 않는다. 어쩐 일인지 귀찮음과 불편함마저 감수가 된다. 만약에 내가 시 할머니나 할아버지를 실제로 뵀었더라면 이 절차가 더 의미 있게 느껴지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둘째가라면 서러운 느림보 겸 귀찮의 대명사인 내가 이렇게 느끼는 데는 연유가 있겠다. 기본적으로 박씨네 사람들이 차례와 제사를 대하는 데 큰 거리낌이 없는 게 하나요. 내 본가에서는 늘이었던 명절, 제사마다 누군가의 칼부림은 나지 않을까 하던 조마조마가 끝났기 때문이 둘 일 테다. 전을 부치고, 제기를 닦고, 음식을 올리고, 다시 상을 치우고,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하는 과정이 결코 기쁨 그 자체로 꽉 차는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확실한 건 분명히 이것이 즐거운 우리 집이라는 것이다. 나이 많은 어른과 적당한 어른과 어린이들이 모여 그 자체로 기쁨이 느껴지는 집말이다.

올해는 밤이 굵다고 하셨다.



보통의 제사보다 절차가 많은 집안이지만, 그 절차가 다 끝나면 아이와 집 뒤로 가서 알찬 밤을 줍고, 할아버지가 소밥을 챙기실 때 가끔 우리도 쟁기로 지푸라기라도 긁어모아 손을 보태는 오후의 나른한 듯 바쁘지만 편안한 일상이 좋다. 정통 의미의 home sweet home, 이곳에 와서, 이 나이 많은 어른들 안에 녹아들 수 있어서 비로소 나는 우리 집이라고 하고 싶어졌다.


밤과 개구리, 나는 즐겁다.
작가의 이전글 벌써만 네 번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