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스위트 홈 (Home! Sweet Home!)>은 19세기 미국의 가곡이다. (중략) 대중적으로 이 노래가 워낙 유명하여 영미권에서는 '스위트홈'이라는 문구자체가 '아늑한 가정', 또는 '고향집'을 가리키는 관용구처럼 쓰이게 되었으며, 거꾸로 블랙유머에서는 '전혀 즐겁지 않은 상황' 또는 '전혀 편안하지 않은 장소'를 반어법으로 나타낼 때 즐겨 사용한다. <출처_나무위키>
지난 추석의 내 sweet home도 밤나무 따던 그곳에서 멈췄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어쩐지 나는 홈, 스위트홈이 딱 들었을 때 즐거운 나의집 너머로이상한 느낌이 스쳐서 찾아봤는데일부는 그랬다. 요즘따라 신앙의 음성은 '감사'가 많이 들리는데, 반대로 나는 자주 감사하기를, 겸허하기를, 기도하기를, 양보하기를, 참아주기를 멈추고 싶었다. 전혀 즐겁지도, 편안하지도 않은, 내가 있게 한 우리 집을 떠올리면 그랬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차마 에세이로 쓸 수가 없어서, 나는 처음으로 소설이란 걸 써보고 싶어질 지경이었다. 픽션, 허구. 소설이라는 기둥 뒤에 숨어서 더 이상의 콩가루는 없어 보이는 우리 집을, 그걸 대하는 내 밑바닥 끝장의 말들을적나라하게 쓰고 싶었다.신을 논하기에 여전히 그릇이 좁은 나는, 날 괴롭게 하는 가족의 현상 앞에 감사할 수 없고 현란하게 욕을 하기 바빴다.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 중 대표적인 것이 몸이 아픈 이들이 주변인들에게 하는 지속적인 '앓는 소리'가 아닐까. 특히 많은 딸들이 어머니의 평생 '앓는 소리'를 들어주고, 지겨워하고, 죄책감을 반복하다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어머니를 떠난다.
<정희진_ '편협하게 읽고 치열하게 쓴다' 중>
갈라진 가족의 비극은 이혼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극단의 부부가 갈라선다 해도 끝나지 않는다는 게 진짜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렇게 앓는 소리를 대놓고 하는 사람과, 앓는 소리를 하지 않아도 존재만으로도 앓고 있는 사람과, 나를 포함해 그것을 어찌하고 싶어 하거나 하지 못하거나 하는 사람 셋으로 괴로워했다. 그러다 그 사람들의 평화 자체가 아닌 내가 편하려고 모든 것을 그나마 잘되기를 바라는 나를 보고 놀부심보인가 싶어죄책감에 빠졌다가 (놀부는 모두가 알아주는 부자 기라도 하지), 나의 성장과정을 함께한 피로된 사람들과는 영원히 물리적으로 떠날까 싶었다가 그냥 그 자리에 있었다.
창피와 부끄러움을 내려놓은 지 오래인, 남편에게 얘기를 하다, 세상 이성적인 그니까 그런 사람에게희망의 말을 들으면 진짜 그렇게 될 것 같아서
"그래도 시간 지나면 좀 괜찮아지겠지?" 했다.
"어디?"
"우리 집"
".. 모르겠다."
그러고는 이내 자신도 지쳤는지 답답한 사람들의 행태를 꼬집었다. 그리고 우리 남매가 아직도 부모의 입김에 정신적으로 완전히 독립되지 못했음을 은연중에 말했다. 거기에 나는 의도치 않게 이성을 잠시 찾았다. 가족의 어떤 행위들이라도, 그저 현상일 뿐이고, 그들의 일일 뿐이고, 거기에 기분이 상하고 불안하고 있다면 그것은 내 마음의 행위이지 않은가. 아직도 나는 여기에 휘둘리고 있었다. 한편 남편은
"나는 안 그래, 내 스타일 알잖아."라고 했다. 알고 있었다. 좀 매정하거나 차가운 게 흠이면 흠일지라도, 필요이상으로 본인의 부모 중 한 분이 혹은 모두가 이치에 맞지 않는 일로 고민하거나 열을 올릴 때 남편은 칼같이 끊어내는 사람이었다. 신기하게 거기에 그분들도 필요이상으로 생각을 끌고 가지 않았다. 한마디로 내 눈엔 쿵작이 비교적 이상적이었달까. 나는 쓴소리도 못하고, 칼 같지도 못하고, 어쩌다 칼같기로 마음먹었다면 미적지근한 죄책감에 시달리고, 그렇다고 완전히 다정하지도 못했다. 그러다 이미 끝난 일이지만 이내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쩜 이렇게도 다르고도 미친 사람들이 만나서 결혼이란 걸 한 걸까. 거기에서 나온 애 둘 중 한 명은 그나마도 저리 비뚤어나가는 걸까.
거기에 나는 왜 서른이 지나고도 반을 먹고도, 여전히 가족의 감정굴레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걸까. 나는 그냥 새로 내가만난 내 입맛에 맞는, 결코 헛된 희망은 얹어주지 않는 차가운 남자와의 싫지 않은 냉정과, 그의 원가족이 만들어주는 sweet home에만 머무르고, 그도 아니면 나의 많은 즐거움과, 그도 아니면 내 삶만으로도 결코 즐겁지만은 모든 하찮은 괴로움들이나 극복하면서 살 자신이 있었다.
요즘 나는 위로에 지쳤다. 듣기도 싫고 하기도 싫다. 위로 말고, 냉정하기도 전에 그냥 현실적인 눈동자로 응시하고 냅다 싸대기 날리며 천둥의 신에게 정신 차리라고 하는 어벤저스엔드게임에서의 로켓같이, 에어로빅 힘들다며 대충 하는 개그맨 박명수에게 '징징거리지 마' 라며 소리지르는 빨간 아이라이너 에어로빅 선생님처럼 하고 싶었다.
나는 아예 모르는 사람들이 '기도할게'라는 말을 아주 싫어한다. 가끔 책이나 영화에서도, 도저히 납득되지 않는 인간의 슬프거나 아픈 현상 앞에서 큰소리로 함께 기도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나올 때의 느낌이랄까. 기도나 하는 것만큼 무책임한 행위도 없다고 생각해서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대부분 그 정도의 기도를 올리는 때에, 기도를 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책임도 없는 게 사실이었다.
그냥 나는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인간들이 만들어내는 모순 자체가 화가나서, 실은 기도까지나 해주는 고마운 사람들에게 괜한 화풀이를 하고싶었는지도 몰랐다.
나에겐 아무 책임이 없었다. 나는 내 갈길을, 심지어 그들을 회피하지도 않고 가고 있었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위해 기도만 하기로 했다. 내가 그렇게나 싫어하던 기도를. 나를 그토록이나 괴롭게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그리고 이 모든 현상이 내 맘이 편한 것을 위해 평화롭게 될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떤 현상 앞에서도 더 큰 것을 바라보며 꾸준할 수 있기를. 담대하기를. 나아가 강건하기를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