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막 지난가을이 아니라, 낙엽 떨어지는 진짜 가을말이다. 하늘은 아침이건 낮이건 높고, 푸르고, 구름은 없거나, 있어도 가볍고 산뜻하다. 얇은 긴 옷 하나만 걸치면 그래도 따듯하겠지 하고 집을 나섰는데, 비가 오고 난 다음날이라 그런지 '춥다'가 어울릴 정도로 공기의 결이 차가워졌고, 오늘은 바람도 많이 분다. (글을 올리는 지금은 이 오늘이 언제인지도 모를 정도로 시간이 지났다는 게 함정.)
저번 주 화요일에 아이는 감기가 살짝 왔다. 똑같이 콧물이 나도 비염의 것과 감기의 것은 결이 다르다. 환절기가 되면서 비염을 달고 살고 있었는데, 얼마 전에는 콧물의 양이며 제각각 흘리는 시간을 봐서는 아무래도 감기다 싶었는데, 진짜였다. 불행 중 다행인 건지, 아니면 이런 불행은 불행축에도 끼지 못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다행히 감기 양상이 심하진 않았고 아이와 집에 있기로 했다. 그렇게 집에서 3일째 가정보육. 말 그대로 몸이 좋지 않아서 집에 있는 것이니, 아이가 하면 좋을 활동이 있는 실내시설로 가는 것도 무리였다. 나는 자기 전 날 밤에도, 아침에 일어나서도 '오늘 뭐 하지'라고 계속 생각했다.
작아도, 어려도, 커도 참 이쁘고 귀여운 아이지만, 온종일을 우리 둘 만 함께하는 것은 꽤나 긴 하루들이었다. 뭘할까하다 결국엔 미루고 미뤘던 이발을 하고, 문방구에 들렀다, 뭘 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동네를 배회하고 대단한 것이라도 하고 온 듯 의기양양하게 아파트단지 안으로 들어왔다. 놀이터에는 어린이집차량을 기다리는 엄마와 할머니들이 모여있었다. 그걸 보고 시계를 봤더니 오후 네시 반이었다. 평소에 나는 직접 하원을 하느라 세시 반쯤에 어린이집으로 가지만, 차를 타고 하원을 하면 지금까지의 시간이구나. 이게 이토록이나 긴 시간이었구나. 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등원하고, 홀로 있는 시간은 소중했고, 길지만 결코 길지 않았다. 내가 느끼기엔 그랬다. 바깥일을 해도, 안 해도 같은 생각이었다. 최대한 빨리 집안일을 끝내고, 아주 조금 쉰다는 게 한 시간이 십 분처럼 지나는 시간인데, 쉬고도 좀처럼 쉰 기분이 들지 않던 시간이었다. 그래도 그 시간도 아까워 최대한 빨리 엉덩이를 소파에서 일으켜 점심 먹을 시간도 아껴가며 남의 글을 읽고 쓰거나, 내 글을 쓰다 보면 아이를 데리고 올 시간이었다. 나는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있는 시간이 꽤 길다고 생각되서, 최대한 빨리 하원을 하러 가는데, 하물며 차량하원을 하게 되면 한 시간이라는 어마무시한 내 시간이 확보되는 셈이었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는데, 그날따라 이게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한 시간이 십 분처럼 가는 홀로의 시간, 같이 있을 때도 시간은 빨리 가지만 통으로 보면 그렇게 까마득할 수가 없는 둘의 시간, 그래서 비로소 밤이 되면 '드디어 밤'이 찾아왔구나. 오늘도 애썼다. 하게 되는 시간. 그 시간 속도의 체감은 하늘과 땅차이 보다 컸다. 그래서 나는 아이와 손을 잡고 걸으며 같이 기분 좋은 가을 거리를 걸으며 하늘을 보며 다짐했다. 다시 아이가 등원을 하는 일상을 찾으면, 정말 성실하게, 부지런히, 감사히 이 시간을 지내야지. 얼마나 치졸하고도 간절하고도 기대만으로도 행복한 마음으로 그 다짐을 했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