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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해연 Jul 28. 2021

순한 애

2021년 여름의 기록


0.


 만 세 돌 에 가까워지고 있는 네 살 아들(신비)이 요즘 눈에 띄게 말 표현이 늘었다. 대략 반년 전쯤 또래들이 말주변이 트일 때에는, 거의 잉거 잉거(이거)로 모든 것을 가리키더니, 최근에 들어서야 말하는 어휘가 다양해지고 문장단위의 말도 는 것이다. 그리하여 아이의 표현과 행동을 보면서 알 수 있는 신비의 (지금까지) 성격은 굉장한 개구쟁이에다, 좋은 것도 싫은 것도 꽤나 정확히 표현하고, 생각보다 애교가 있다. 아이의 육아담을 이야기하려던 것은 아니었는데, 아이의 행동을 보면서 마음이 가는 바가 있어 몇 가지 적어보았다.

개구쟁이 신비가 이를테면

"변신하는 엠버 가지고 가서 기쁘다."

"잉거(이거) 엄마줄라고 만들었어."

'시어(싫어)! 이건 신비꺼라구-'

식의 좋은 것도 싫은 것도 혀 짧은 발음이지만 감정 자체를 또렷하게 전하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이것을 보며 나의 엄마가 허구한 날 하는 소리가 있었다.

'너나 니 동생은 키우면서 한 번도 이래본 적이 없다.'는 얘기다.

특히 내가 그랬단다. 엄마가 한번 아니라고 하면 순순히 말을 들었고, 동시에 애기들 특유의 애교스러운 면도 없었댔다. 내 어렴풋한 기억에도 엄마 말이 맞아 보였다.

그렇다. 일단 엄마 말에 의하면 순한 아기의 표본, 그게 나였다. 자라면서도 난(엄마 자칭) '순하고 참한 애'의 말꼬리 표를 달고 다녔는데, 지금도 그렇거니와 어렸을 때 또한 그 말이 좋지만은 않았다. 이유가 뭘까. 마침 남편도 어렸을 땐 기본적인 아들 성향이긴 해도 순한 편에 속했대서 우리(나, 남편, 그 외 양가 가족들)는 우리의 자식도 순한 애가 나올 것이라는 것에 1%의 의심도 부여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모두의 예상 밖으로 완전한 개구쟁이, 장난꾸러기, 고집쟁이, 애교쟁이의 모습이 완연하니 너도나도 재밌다는 식이다. 누구보다 그 아이와 가까이 있는 나는 덕분에 고되다는 육아와 가사 중에도 웃음이 끊이질 않는데, 한편으론 손자를 보며 하는 친정엄마의 나에 대한 말들이 듣기가 싫었고 마음에 걸렸기에 글로 적어보기로 한 것이다. 어린 내가 장난감이든 인형이든 한 번을 사달라고 울며불며 땡깡 써본 적이 없다는 얘기, 신비처럼 애교짓을 해본 적도 없다는 얘기. 내가 정말 순한 애였다는 얘기. 들이다.

반대로 호불호가 강하단 표현이 어울리게, 좋은 것도 싫은 것도 잘 얘기해 주는 아들을 보며, 종종 장난감을 요구하며 땡깡도 부리는 아들을 보며, 애교를 가르친 것 같진 않은데 스스럼없이 사랑스러운 마음도 표현하는 아이를 보며. 조금은 내가 엄마로써 잘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난 지금 무슨 생각에서 엄마의 그 말에 기분이 좋지 않았고, 기분과 의사 표현을 잘하는 자식을 보며 다행이라

여기고, 왜 여기에 꽂혀서 글을 쓰고 있는 걸까. 내 심리상태는 뭐였을까.

1.

 엄마의 말과는 다르게 나는, 순한 애와는 거리가 먼 고집스럽고 제멋대로의 애였을지도 모르겠다. 애초에 성질 자체가 보호자의 말을 순순히 잘 따르는 아이였다면, 학창 시절에도 엄마의 말을 곧이곧대로 따랐을 건데. 초등 5학년 무렵부터 나는 엄마가 원하는 나의 삶과는 전혀 다른 꿈을 꾸었으며, 그게 존중받거나 지지 받은 적이 없기에 대단히 드러내지는 못했지만, 꾸준히 내적으로는 지켜왔다.

 엄마는 내가 '최소한 교사'가 돼야 한다고 읊고 다녔다. 교직 공무원으로 안정적이고 여자로는 사회적 위치로도 괜찮다는 게 이유였다. 그 말에, 내가 왜 안정을 꾀해야 되는 건지 무작정 반기를 들고, 배가 부른 걸 수도 있겠으나 직업에서 단순히 안정을 취한다는 것 자체를 부정했다. 공부를 잘해서 엄마를 기쁘게 해주고는 싶었으나, 선생님이니 공무원이니 하는 말은 듣기 싫었다. 결국 나는 안정과도 사회적 명예와도 전혀 관계가 없는 것 같은 동물보호운동가 내지 동물학자가 되고 싶어 했다.

 고등학생이 돼서도 여전히 같은 꿈을 꾸다가 고3이 되고서는 국내 대학과 타협이기도 했고, 내가 사회문제 전반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일단은 다양한 사회현상에 대해 공부할 수 있는 사회학과를 가보기로 했다. 남들 다 넣는다는 수시모집에서 한 세 군데는 다 사회학과를 썼고, 딱 한 군데만(당시 담임선생님이 추천한 학교) 가족복지학과를 지원했는데 보란 듯이 전자는 모조리 떨어지고 후자에만 철썩 붙어버렸다. 사실 이 학교에도 사회학과가 있었지만 수강과목에 관심 분야가 적었고, 학과 탐색 중 우연히 보게 된 가족복지학과의 공부 내용들이 인간탐구와 상담에 관련된 내용이 많아 솔깃해서 선택했던 것이다.

결국 성적에 맞춰 대학을 간 꼴이 됐지만, 결과적으로 가족복지학과를 전공한 건 신의 한 수였다고 할 만큼 좋은 경험이 됐다. 가지 않았더라면, 나란 사람을 입체적으로 이해해 보고 가족을 공부하고 제3자의 시선으로 볼 수 있는 기회가 몇 번이나 됐을까. 그러다 복수 전공도 고민고민을 하다 이후 생업과는 전혀 관계가 없을 게 자명한 철학과에 가버렸다. 진심으로 취업과는 관계가 전혀 없었지만, 역시 만족스러운 선택이었다.

 이후 대학을 졸업해서 돌고 돌아 내가 정착한 직업은 강사였다. 정확히 말하면 입시학원 영어강사. 영어를 좋아하긴 했지만 강사를 꿈꾸며 취업활동을 하던 게 아니었다. 마치 사회학을 노리다 가족복지학이 얻어걸린 것처럼, 청소년 복지 기관이나 대안학교, 자선사업 느낌의 곳에 지원을 종종 했었는데 또 보란 듯이 다 떨어지고, 설마 하고 넣었던 학원에서 덥석 나를 물었다.

강사를 하리라고 맘먹고 취업을 준비한 게 아니었고, 학원 측에서 키워주겠으니 영어과를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처음에 국어 강사로 지원함)을 한 거여서, 시작은 단체 스터디부터, 즉 밑바닥부터였다. 인간적인 문제가 아니면 강의 일 자체는 완전히 적성과 맞는 것이어서 즐거웠다. 점차 강사로서 내 스타일을 알아가자, 다양한 지역, 다양한 아이들을 만나며 입지를 넓혔다. 즐겁기도 했지만 눈물 쏙 빠지게 무지막지한 경험이었다.

 어찌 됐든 동물보호운동가 겸 동물학자를 꿈꾸던 나는 결국 엄마 말을 듣지 않았고, 내 고집대로, 선택에 선택을 했고 돌고 돌아 어린 시절 장래희망과는 아무런 관련 없는 학원 강사 일을 하고 있고, 엄마일도 하고 있다. 글을 쓰는 지금, 얼핏 드는 생각 중 하나는, 아예 제대로 순한 애여서 끝까지 엄마 말을 들었고 마침 뜻대로 되었더라면, 순탄한 직업 여정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은 아니고 그냥 잠깐 한 상상이다. 아무튼 일종에, 사서 고생하는 타입이기도 하다. 나란 사람.

3.

순한 애에 이어지는 엄마의 이어지는 말말말은 이러했다.

자기는 한 번도 이렇게 손자처럼 우리를 놀아줘 본 적이 없다는 얘기. 시어머니에 시할머니까지 있는 집에서 시집살이했다는 얘기.

사사로이 고백하건대 아마 나는, 아들만치 작았을, 말문이 터졌을 무렵부터 혹은 그전부터도 내가 있는 곳이 자기주장과는 어울리는 곳이 아니라는 걸 알았는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지금도 그렇지만, 어렸을 땐 더 심하게 첫째 딸에게 의지했다. 남편, 시어머니, 시누이에 대한 원망, 그 외 엄마의 어린 시절 한이 섞인 얘기들. 그 얘기들의 시작이 언제인지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듣고 자랐다. 아마 많은 날 엄마의 얼굴은 울상이었다. 엄마는 나와 내 동생에게 희생적이었지만, 난 가끔 엄마의 희생이 고맙게 여겨지지 않는 배은망덕한 자식이었다.

엄마의 희생대로, 나는 어른 말을 잘 듣는 순하고 착한 애가 되어가는 듯했다. 실은 나도 자주 들뜨고, 마구 신나게 행동할 때도 있었는데, 그때마다 눈치가 없다며 지청구를 얻어먹었다.

드문드문 기억나는 장면이지만. 순한 애라던 나도 실은 마트의 완구 코너도, 집 근처 문방구도 진심을 다하여 좋아했다. 갖고 싶은 게 없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너무 많아서 못 정했다는 게 맞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의식이 기억하는 한 정확히 한 번을, 이거 갖고 싶다고, 말해본 적도, 아이처럼, 아이답게 생떼를 피운 적도 없다.

반면 엄마에 비해 허용적이었던 아빠나, 큰 이모네 아들딸인 완전한 허용적인 이종사촌이자 나이차가 많이 나는 언니 오빠들 앞에선 종종 아기처럼 굴기도 했었는데 그 기억이 생각보다 엄청 좋고 또 생각보다 강렬했다. 6살인가 다섯 살 무렵 대전 엑스포에서 사촌 오빠가 가지고 놀던 스프링 장난감이 갖고 싶어 심통이 난적이 있었는데, 그것도 그 자리에서 얘기하지 못하고 거기 있는 나의 어른이 알아서 사주길 바라다 못 갖고서는 뒤돌아서 우니 그제서야 갖게 된 기억이 한 개 있다. 생각해 보니 이 때 심통을 부릴 수 있었던 것도 거기 있는 어른이 아빠였고, 사촌 언니 오빠들로 무장된, 나는 그중에 가장 막내였었기 때문인 것도 같다.

그리고도 내가 땡깡을 부린 날이 이날 외로 한두 개 정도 더 있을지도 모르지만 기억나지 않는다.

글을 쓰다 보니 내가 자기주장을 못. 한 게 아니고, 좋은 것도 표현 못 한 게 아니었다는 게 좀 가까워졌다. 난 그냥 분위기를 타서 안 했을 뿐. 안 했다는 것이 결국 못하게 된 것이려나.

많은 시간이 흘러 나도 자식을 낳고 키우게 됐는데, 마침 그 아이는 순하지 않고 자기주장이 강하며 심지어 좋은 것도 잘 표현한다. 지금에서야 알게 된 건데, 불과 임신 당시까지도 순한 것을 마냥 좋다고만 여긴건 나의 착각이었고, 나의 아이는 '순하지 않아서' 다행이고 좋다는 생각도 해보는 지금이 되겠다. 초반에 감히 내가 잘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었던 이유다. 최소한 그 아이가 좋은 게 좋다고, 싫은 건 싫다고, 엄마든 아빠든 가장 가까운 보호자에게는 일단 말할 수 있는 최소한, 분위기란 것을 만들어는 준 것 같았다.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오늘은 변신하는 엠버 로봇이 갖고 싶고, 지 생일에는 뚜레쥬르에서 본 헬로 카봇 케이크로 생일파티를 했으면 좋겠고, 선물로는 헬로 카봇 시계를 갖고 싶다고 얘기하는 만 2살짜리의 당돌함이 정말 좋다. 다행이다.


헬로카봇케이크. 약속해서 진짜 사줘야 한다.


4. 더 이상 엄마 탓하지 마라.

얼마 전 '딸에게 보내는 심리학 편지'라는 책을 읽으며 눈에 들어왔던 소제목 문장이다. 실제 내용도 기억에 남지만 소제목 자체가 마음에 박혔던 건, 아니라고 여겼지만 많은 순간 실은 엄마 탓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이 문장에 비춰서 이지 않았을까. 마치 지금 글을 쓰는 마음처럼. 열 아니 백을 받고도 일을 본의 아니게 잘못 준 것에 대해 탓하고 있는 자식의 모습은 조금 못 되기도 하다.

의심과 가늠이 아니라 내가 진짜로, 순한 애가 아니었다면, 순한 애가 아닐 수 있었다면, 지금의 나는 혹시 어떤 식으로

발현됐을까.라고 의문을 띄워보기도 하지만, 이것도 솔직히는 엄마 탓, 부모 탓을 해보는 못난 자식의 실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나는 갈 길을 간다. 여전히 순한 애, 참한 아이, 참한 딸, 참한 며느리란 프레임에 끼워 있긴 하지만 실은 좀 느리고, 생각보다 제멋대로고, 종종 즉흥적이라 매일 하는 가사와 생활태도, 일상에서 가꿔나가야 할 것이 많고, 육아와 일에서는 물론 늘 배우고 실행해야 하는 것들이 투성이다. 그렇지만 내일의 내 일들이 궁금하고, 10년 뒤 20년 뒤 평범하거나 그렇지 않거나, 어찌 됐든 느리게 그런대로 복을 마주하며 찾아간 우리의 미래가 감사하고 경이롭다.

순한 애의 프레임을 많이 깬 시작은 좋은 건지 나쁜 것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아내의 위치다. 나는 전혀 순한 아내가 아니다. 두 번째로 엄마의 위치다. 역시 참한 엄마의 모습은 아니다. 이쯤에서 좀 재밌는 웃음이 난다. 내가 순하지 않은 대로도 불완전한 상태로도 나름 잘 살고 있는 것 같아서다.

그리하여 육아에 있어서만큼은, 신비가 꾸준히 자기표현을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소통이 가능한 엄마이자 부모가 되려고 한다. 표현력 자체가 교육의 목적 중 하나가 될 수 있겠고, 순한 애가 아니었지만, 순한 아인 줄 알고 살았던 나를 답습하지 않으려는 것도 이유다. 글을 쓰는 지금조차 여전히 나는 순 프레임에 갇혀 나보다 상대하는 타인이 받을 혹시 모를 상처에 더 신경이 곤두서고, 결국 할 말을 잘 못하는 모순 인간이라 좀 별로긴 하다만, 부모의 신분으로서는 조금씩 강해지는 걸 느낀다. 강해진 마음으로, 순의 굴레를 벗어던지고도 어떻게 덕(德)이 있는 삶과 관계를 일구어나갈지가 관건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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