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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shley Jeon Aug 26. 2024

문화기획자의 첫 몽골 여행기

몽골 디지털 디톡스 여행

2024. 8. 11.(일)


너무 이르게 청주공항에 도착해서 좀 피곤했지만 첫 몽골 여행 버킷 리스트 중 하나를 성사시키는 부푼 꿈을 안고 비행기에 올랐다. 울란바토르 칭기즈칸 공항에 도착하니 몽골에서 목장을 운영하는 쏨야가 좀 늦는다는 연락이 왔다. 많은 몽골 기사분들이 "택시?"하고 물어보아 계속 아니라는 답변을 해야만 했다. 로비에 있는 탐앤탐즈 매장도 보고 몽골 물 맛은 어떨까 싶어 생수 하나를 샀다.


쏨야 차에는 충북대 졸업을 축하하는 건축학과 학생 세 명과 쏨야의 충북대 룸메이트였던 몽골청년 타이완도 함께 탔다.

별, 마두금, 여행일정, 울란바토르 유학원에서 충북대학으로의 유학생 유치 및 문화예술교류 등을 이야기하며 1차선 도로를 2시간 여 달려 해발 1,800미터 고지대에 있는 쏨야 목장에 도착했다. 과연 듣던 대로 셀 수 없이 많은 싱싱하고 굵은 별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옆으로 가는 저건 별똥별인가요 란 내 질문에 일론 머스크가 쏘아 올린 스페이스X사의 저궤도 통신위성 스타링크라고 충북대 학생이 알려주었다.

쏨야가 화장실 위치를 안내해 주면서 내일 아침 접지, 즉 맨발로 이슬을 머금은 땅을 밟아보라고 했다. 몽골 대지와의 첫 입맞춤을 기대하며 씻지도 못하고 게르에서 바로 잠들었다.


8. 12.(월)


잠을 자다 꿈 속에서 난 밖으로 소리 내어 무언가를 소리쳤고 끊임없이 하얀 연고처럼 농이 나오며 뾰루지를 시원하게 짜는 꿈을 꾸었다. 다 비우라는, 아니 그 형상들은 원래부터 실체가 없었다는 색즉시공의 푸닥거리를 난 첫날부터 하고 있었다. 이시백 작가도 <몽골>이란 책에서 몽골에서는 상사, 일 등 세속은 다 잊고 있으라고 권고했었지.

아침 일찍 맨발로 땅과 접지를 해보니 상쾌한 풀향들이 올라왔다. 훌륭한 연료로 쓰이는 초식동물의 똥도 풀 향기를 머금고 그 옆에서 대지를 풍요롭게 해주고 있었다. 인간만이 다양한 존재들과 어울리지 못하니 자연의 흙에서 상생의 이치를 깨닫는 아침이다.


아침을 먹으러 가보니 쏨야의 세 살배기 딸이 학교에 가고 싶은지 책가방을 매고 왔다 갔다 한다. 청주에서 사 온 토끼 인형을 주었더니 복숭아 요구르트 4개짜리 한 팩을 선뜻 건네주는 것이 아닌가.  바야를라라(고맙다)하고 미안해서 1개만 달라고 아빠에게 통역을 부탁하니 먼데 산을 바라보고 쑥스럽게 손만 내민다. 어른들에게 용돈이나 선물을 받을 줄만 알지 무엇을 줄지 생각을 못하는(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한국 아이들과 대비되는 순간이었다.

몽골은 늘 주게르 주게르(괜찮아 괜찮아) 하며 척박한 땅 위에서 자연의 선물을 감사하는 삶이어서 그런 걸까, 왠지 아이에게서 배우는 숙연한 아침이다.


몽골인들의 아침을 여는 음식이라는 차와 우유를 넣고 끓인 수테 차이와 버터와 비슷한, 아니 버터보다 고소한 우름을 빵에 발라 먹는 것으로 첫 끼니를 맞이했다.


이후 인근 초원을 산책하며 예쁜 들꽃들과 생전 처음 듣는 풀벌레 소리를 듣고 있는데 쏨야가 차로 데리러 왔다. 염소를 잡는데 보라는 것이었다. 어젯밤에 그 장면을 볼 수 없으리라 생각했지만 망치로 머리 급소를 내리쳐 기절시킨 후 칼로 목 급소를 따서 피를 받으니 고통 없이 순간에 보내는 동물복지 그 자체였다. 원래 전통방식은 배를 갈라 내장의 동맥을 끊는데 오늘의 요리는 귀한 손님에게만 대접한다는 염소를 통째로 굽는 버덕이라 이렇게 했다 한다. 난 하느님께 기도했지만 몽골인들은 맛있게 먹어주는 것이 희생양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길이라 했다. 첫 몽골여행에서 아이와 동물까지 모든 것이 경외와 숭고함의 연속이다.


몽골의 여러 어원 중에 '사람 중의 사람', '세상의 중심지'란 뜻이 있다고 한다. 대한민국의 중심 '충북' 슬로건도 좋지만 스케일이 다른 것 같다. 게르를 지을 때 사전신고하는지 물었더니 가축이 주인인 땅이니 가축이 있으면 인간은 그냥 집을 덤으로 짓는 것이라 했다. 세상의 중심이라 그런지 세계관도 남다르다. 그래서 산책할 때 차도인도를 차지하고 풀을 뜯고 있는 소들을 두고 멀찌감치 길 아닌 곳으로 걸어갔다. 아니 평야에서 길 아닌 곳이 어디 있으랴.


산정령을 모신다는 어워에 가서 소원도 빌고 내려와 현지인들과 염소양 뼈로 하는 게임도 하면서 말린 요구르트인 아롤도 먹었다. 어워 근처에서 주운 독수리 깃털을 가져다 애들에게 주었더니 장난감처럼 잘도 가지고 논다.


신기하게도 한 달 넘게 괴롭히던 가래 기침이 거짓말처럼 몽골에 온 지 하루 만에 말끔히 사라졌다. 매연이 일도 없는 곳에 처음 와본 내 폐가 놀란 모양이다. 이 공기를 캔에 넣어 물처럼 파는 세상이 오지 않을까?


양들에게 백신을 맞히러 온 수의사 그룹들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들이 귀한 음식이라는 버덕을 저녁식사로 나눠 먹었다. 염소 몸통 속에 까만 돌과 감자, 당근을 넣고 소금 등으로 간을 했는데 아무런 잡냄새가 나지 않았다. 요리사가 까만 돌을 꺼내 손바닥에서 왔다 갔다 굴리면 병이 낫는다고 해서 화상 입기 직전까지 엄청 뜨거운 돌을 양손으로 던지며 만졌다. 손바닥은 머리끝부터 생식기까지 다 혈점이 연결되어 있으니 내 기관지가 깨끗해졌듯이 다른 장기들도 염소 뱃속에서 달궈진 돌의 열기로 정화됐으리라.


맛난 식사 후 캠프파이어가 시작되었다. 추위도 피할 겸 몽골의 전통의상을 차려입고 몽골의 최근 유행곡들을 들으며 떼합창을 들으니 나도 몽골인이 된 듯하다. 이리 편하고 좋은 걸 보면 이미 내 핏줄에 몽골족의 비중이 매우 클지 모르겠다.


8. 13.(화)


쏨야가 숙취에서 깨지 않은 멤버들을 데리고 1km 떨어져 있는 우물가로 데리고 갔다. 얼음보다 차가운 지하 우물물로 헤롱헤롱하던 사람들에게 머리부터 적시자 다들 정신이 확 들었다. 등목을 할 때는 괴성을 지르며 완전히 깨게 되었다. 나도 3일 만에 머리를 감았는데 머리카락이 금방 얼 것처럼 쭈빗쭈빗 섰지만 뜨거운 태양 아래 금방 마르기 시작했다.

사막처럼 드넓은 이 초원에 이런 우물가가 있다는 것이 마치 오아시스 같다. 내 삶에도 얼음장 같은 우물물을 늘 두어 힘들 때마다 머리를 박고 정신을 확 깨게 하리라.


몽골에 가면 초원의 향기가 난다(민속원) 책을 빌려 읽다 멍 때리다 자다가 애들과 놀다 하며 내 인생 처음으로 무위도식 중이다.  책 보고 글 쓰는 일조차 내려놓고 싶지만 지나고 나면 내 기억이 희미해질까 기록해 두는 것이다. 취업고민 중인 충북대 학생들에게 미안도 하지만 치열하게 살아온 내 30년 직장생활 후 내게 처음 주는 여유를 만끽하기로 했다.

말을 타고 목장을 한 바퀴 돌았다. 말 이름이 뭐냐고 했더니 없단다. 겨울 조드가 오는 냉한기에는 지방이 많은 말을 잡아먹어야 하기 때문에 정을 주지 않는다고 했다.


오늘 점심은 쏨야네 가족, 사촌들과 함께 십여 킬로미터 떨어진 레스토랑에 가서 해결했다. 술병으로 들어 누은 충북대 학생들을 위해 러시아산 미네랄 약 드링크제와 디저트로 아이스크림을 샀다. 마유주를 만든다는 말 목장에 가서 금방 마른다는 말젖 짜는 모습을 보고 게르로 돌아왔다. 같은 술을 먹었는데도 말목장의 청년들은 생생하게 일하는데 한국 학생들은 하루종일 잠만 자는 걸 보니 함부로 몽골인들과 술대결하지 말라는 책내용이 생각났다.


고지대라 그런지 아님 번아웃 디톡스 중이라 그런지 식사만 하면 계속 잠이 쏟아진다. 평일 이렇게 마음 편히 뭘 해도 되는 여행 참 좋다. 한 번은 게르와 게르 사이 그늘막을 만들어놓은 의자에서 솔솔 부는 바람을 맞으며 자고 있는데 이상한 숨소리가 들려왔다. 발을 다친 큰 개가 계속 내 게르 앞에서 어슬렁거리더니 그 개인가 싶어 살짝 눈을 떴더니 이게 웬걸, 6마리의 송아지들이 그늘을 찾아 들어온 것이었다. 가축 아니 이  땅의 주인에게 어젠 길을 양보했고 오늘은 그늘막을 양보했다.


오늘 저녁엔 360도 펼쳐진 지평선에서 석양을 보러 갔다. 어린 왕자처럼 계속 의자 위치를 바꾸지 않아도 되는 지구별 몽골 지평선에서의 노을. 구름이 좀 끼어 있었지만 그 나름대로 운치가 있었다. 가는 길에 마유주를 파는 게르에 들러 시음하고 쏨야가 저녁 후 먹으려고 한 통을 샀다. 시큼한 것이 우리나라 플레인 요구르트와 막걸리를 섞어놓은 듯했다. 몽골인들은 이걸 먹으면 바로 배변 신호가 온다고 했으나 나는 시간이 지나도 신호가 없는 걸 보면 몽골 유산균이 내겐 작동하지 않나 보다.


8. 14.(수)


오늘은 쏨야네 목장에서의 마지막날이라 새벽에 일어나 일출을 보고 두 번째 멀리 떨어진 산봉우리까지 산책을 했다. 가는 길에 가축 뼈 시체도 보고 죽음을 묵상했다. 흙에서 나와 흙으로 돌아가는 짧은 인생 속에 왜 우린 남을 미워하고 돈을 으며 살까. 목욕을 자주 못하는 몽골인이 우린 바람과 비에 씻는다 했다. 물이 아닌 자연에 순응하는 그들은 이미 삶에서 무엇이 제일 중요한지 아는 것 같다.


정상 인근에 다다르니 뿔이 엄청나게 큰 야생 산양 무리가 정상 바위에 서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산의 주인이기에 양해도 없이 온 손님이니 멀리서 사진만 찍고 돌아섰다. 내려와서 쏨야가 일러준 대로 송아지가 먼저 젖을 먹게 한 후 소젖을 직접 짜보았다. 쏨야가 짜면 폭포수처럼 나왔지만 내가 짜면 한 줄기가 나오다 안나오다 했다. 착유시간이 길어지니 소가 짜증을 냈다. 진짜 미안! 미안하게도 아침으로 소고기 칼국수를 먹고 눈을 비비며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오르따 등 쏨야의 가족들과 인사한 후 테르지로 출발했다.


한참 후 테르지에 도착, 거북바위 등 진기하게 생긴 바위들을 보니 그 기운이 장대했다. 점심으로 김치볶음밥 도시락을 먹고 산행을 시작했다. 자작나무와 침엽수림이 많아 약간 일본 산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는데 제철이 지난 에델바이스 군락지와 들풀들을 보는 등 즐거운 산책이었다. 길 표식을 보니 제주 올레길에서 영어로 몽골 올레길이라 써주고 말표식은 그대로 있는 걸 보니 협찬을 해준 듯했다. 냇가에서 경쟁하듯 물 수제비 뜨며 놀다 내려왔다.


울란바토르 나랑톨 시장 인근에서는 차로 가는 것보다 걷는 것이 빠를 정도로 교통체증이 심했다. 게르 목공소부터 양, 염소 천연 가죽을 파는 집, 전통 무속도구 상점부터 유명 브랜드 짝퉁집들까지 없는 게 없이 대형 시장이었다. 양고기 찐만두 보쯔도 시식해 보고 나와 울란바토르 전통극장으로 공연을 보러 갔다. 그런데 이게 웬걸, 오늘 관람자가 우리들밖에 없어서 10명 이내라 공연이 취소됐단다. 내일이나 모레 다시 오기로 하고 돌아서는데 마진이 안 돼도 1명의 예약자라도 있으면 공연하는 한국 공연계 문화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천연 울로 유명한 '고비Gobi' 브랜드가 있는 상점에서 어머니 드릴 목도리 쇼핑도 하고(대부분이 한국이었다!) 현대몽골의 독립운동가 수흐바타르와 칭기즈칸의 동상이 있는 수흐바타르 광장의 야경도 둘러보았다. 인근 오페라극장, 몽골 예술의전당 등을 보고 마트에 가서 몽골 전통 초콜릿과 잣 등도 사 왔다. 외지고 조용한 중저가 호텔에서 많이 걸었던 퉁퉁 부은 다리를 주무르며 곤히 잠들었다.


8. 15.(목)


울란바토르에서 3백 킬로미터 떨어진 미니사막으로 이동 중이다. 오늘 낙타도 타고 생전 처음 사막에서의 경험이 게르 목장에서의 경험처럼 삶에 괜찮아 괜찮아 영향을 줄 것 같다.

한국에서 여행자보험을 가입 안 해서 출국 후 여행자보험 가입이 가능한 외국계 보험사 World Nomads에 가입했다.  인도네시아 바다를 살리는 2달러 기부도 하고 3일 가입했더니 31.35달러가 들었지만 안심이 되었다.


가는 길에 도로 위에 있는 쏨야 친구 거부 사업가가 운영하는  하르마후지 밀크 팜에 들러 식사 후 청정 우유로 만든 아이스크림도 먹었다. 이 대초원에 덩그러니 있음 누가 올까 싶었는데 금방 외국인들과 몽골인들로 북적였다. 대규모 유채꽃 밭 앞에서 먹는 유지방이 적은 고소한 아이스크림 맛은 가히 일품이었다.


비가 와서 미니 사막 인근 게르에어 잠깐 쉬고 있다.

말똥, 낙타똥을 피우는 게르 안 난로 덕분에 따뜻하고 풀 냄새에 취하고 있다. 16개 부족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몽골 초원의 민족 참 지혜롭다. 삶을 바라보는 지평이 많이 바뀔 것 같은 망중한의 오후.


3백 미터나 떨어져 홀로 서있는 푸세식 화장실에 가는데 몽골 전통견 방하르가 어슬렁어슬렁 쫓아온다. 볼일을 마치니 다른 게르 쪽으로 간다. 먹을 것, 쓰다듬어주기를 원했을까, 아님 손님인 나를 지켜준 걸까.

쏨야와 사촌과 함께 노래방 시간을 가졌다. 쏨야는 노래실력이 수준급인데 한국가요도 잘 불렀다. 몽골 맥주 한 잔 하고 낙타는 내일 타기로 하고 일찍 잠들었다.


8. 16.(금)


몽골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비가 많이 오는 데다 아침이라 그런지 낙타가 보이질 않았다. 어제 멀리서 본 걸로 아쉬움을 달래고 다시 울란바토르로 돌아갔다. 주게르 주게르!^^


점심을 튀김만두로 때운 후 몽골 철도공사 건물에 입주하고 있는 차간 라바이 예술재단(TSAGAAN LAVAI Entertainment) 전속단원들의 공연 'Nomadic Legend'라는 다채로운 공연을 보았다. 전통을 지키되 다양하게 현대화된 시도들이 보인다.


이후 재단 CEO, 예술감독과 함께 총 단원 60여 명의 운영현황과 문화예술 국제교류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통역을 해준 충북대 졸업생 쏨야와는 몽골 학생들의 한국 유학 확대방안 관련 이야기도 나눈 쉼 반 일 반의 여행길. 비우는 여행이었는데 다시 생각이 많아진다.

몽골 디지털 디톡스 행이 끝나가고 있다. 한국에 돌아가서도 괜찮아 괜찮아 정신으로 산다면 덜 힘들고 오늘을 희생하여 미래를 걱정하지 않을 것이다.

문화의 바다 행사를 위해 고생한 우리 직원들에게 다시 고고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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