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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봅 Feb 21. 2020

육아_log

상상과 현실은 다르다



 어쩌다 연애, 어쩌다 결혼, 어쩌다 임신, 그리고 어쩌다 보니 어느새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 집 안에 틀어박혀있는 나. 원래가 집순이 기질이 있어 특별히 외출을 즐기는 편은 아니었는데도 애가 태어나고 나니 왜 이렇게 집 밖으로 나가고 싶은 것일까? 아마 그건 이 집순이 생활을 나 스스로 결정한 것이 아니라 이제 막 156일이 된 아기를 키우며 어쩔 수 없이 집 안에 묶여 있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 난 집순이지만 아이와 단 둘이 집에 24시간 중 24시간을 있어야 한다는 건 솔직히 너무 가혹하다. 본디 집순이라 함은 집에서 하고 싶은 일을 충분히, 여유 있게 즐길 수 있어 행복한데 아이와 함께 하는 24시간은 지금껏 내가 해 왔던 집순이 생활과는 너무 다르다.


 아이와 함께하는 하루는 기본적으로 조용하고 또 시끄럽다. 아직 아기인 내 딸은 밤잠을 10시간 이상 자야 하고, 낮잠 또한 2-3번에 걸쳐 3-5시간쯤을 잔다. 그동안 나는 달그락 거리는 소리에 아기가 깨지는 않을까 집안일은 물론 간단한 취미생활을 즐기는 것조차 조심스럽다. 그나마 볼륨을 최대한으로 줄여 tv를 보는 게 거의 유일한 하루의 낙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런 생활을 매일같이 100일 이상 하게 되니 이젠 그마저도 썩 즐겁지가 않아지더라. 그런데 이건 그나마 평화로운 경우, 즉 아기가 잠을 자고 있을 때의 경우이고 아기가 깨어 있을 때는 또 얘기가 달라진다.


 뭐랄까, 아이가 조용하면 안 될 것 같은 편견이랄까..? 나는 그런 걸 가지고 있다. 무조건 아이가 있는 집은 전쟁터이고, 엄마는 아기라는 적군과 맞서 싸워야 하는 운명을 가진 장군인 줄 알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 또한 상상과 현실은 달랐다. 아기는 꼭 깨어있는 모든 시간에 우는 건 아니다. 조용히 눈을 굴리며 버둥버둥 자기 몸과 노는 때도 있고, 쉼 없이 옹알이를 할 때도 있고, 당연히 울 때도 있다. 다만 나는 그런 내 아기를 보며 좀 불안한 마음에 더 시끄럽고 부산스럽게 굴게 된다. 가만히 눈을 깜빡거리며 노는 아기는 뭔가 심심해 보이고, 내가 아기랑 잘 놀아주지 못해서 그런가, 아니면 장난감이 없어서 그런가, 자극이 부족해서 그런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아기 앞에서 온갖 재롱잔치를 펼친다. 그렇다, 아기가 깨어 있을 때의 시끄러움은 반 정도 내가 내는 소란스러움이다.


 그런데 정말 안타깝게도 엄마가 아무리 앞에서 온갖 재롱을 부리며 아기를 웃게 하고 싶어도 그게 뜻대로 되는 게 아니더라. 아기는 멀뚱히 엄마를 바라볼 때도 있고, 아예 쳐다보지도 않을 때도 있으며, 기분이 내키면 웃어주기도 한다. 언제는 이렇게 해서 웃었으니 또다시 이렇게 해 볼까? 하고 언젠가 아기를 웃겼었던 행동을 또 하면 언제 그렇게 웃었냐는 듯 반응이 없을 때도 수두룩하다. 아기는 이렇게 엄마를 일희일비하게 만든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일 하는 것보다 육아가 더 쉬울 줄 알았다. 덜 귀찮을 줄 알았고, 좀 더 자유로울 것만 같았다. 왜냐하면 어쨌거나 육아를 주도하는 것은 나일 테고, 남의 눈치 볼 일 또한 없을 테고, 그 좋아하는 집에만 있을 수도 있고, 뭐 기타 등등... 그러나 육아는 그렇게 마냥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사실 나의 딸 같은 경우엔 보통 아기들보다는 순한 편에 속하고, 잠도 잘 자고, 손이 많이 가는 아이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지금껏 한 번도 해 본 적 없던 걱정을 하게 되고, 아기의 반응 하나하나에 기뻤다 슬펐다 하는가 하면 내가 좋은 엄마가 아닌 것 같은 생각에 밑도 끝도 없이 우울해 지거나 아기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 때도 있다. 정말이지 이건 직접 아기를 낳아 키워보기 전에는 모를 감정인 것이다. 이미 안다고 생각한 모든 상상들이 뒤집힌다. 실제의 육아란 그런 것이더라. 이렇게 글로 적어 보면 남들 하는 얘기 그대로 하는 뻔한 일들이 일어나는데도 불구하고 경험자의 느낌은 이렇게나 다르게 느껴진다.


 그런데 이런 나날들이 마냥 힘든 것만은 아니다. 가장 큰 이유, 내 아기. 10달을 품어 귀하게 낳은 내 아기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사랑스럽기 때문에. 눈도 제대로 못 뜨고 빨갛게 태어나 빽빽 울어대던 그 아기가 태어난 그 날보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점점 더 사랑스럽게 느껴지기 때문에, 결국 좋거나 나쁘거나 그 어떤 순간에도 육아는 '할 만한 일'이 되고 만다.


상상과 현실은 다르다. 더 빡세고, 더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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