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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봅 Feb 23. 2020

육아_log : 이유식을 만든다는 것

 이유식은 사 먹일 작정이었다. 원래 요리를 잘하는 편도 아니었고, 시판 이유식에 대한 거부감도 없었다. 아무렴, 요리라고는 인터넷에서 레시피를 찾아 겨우겨우 만드는 게 전부인 내가 만드는 것보다는 전문가가 만드는 이유식이 더 좋을 것 같았다. 사실은, 직접 아기가 먹을 음식을 만들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이유식을 직접 만들어 먹이고 있다.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제일 처음은  친정엄마의 권유 때문이었다. 왠지 모르게 나는 친정 엄마의 말을 잘 듣는 딸이 되곤 한다.

 

  어쨌거나 오늘로써 내 딸은 157일이 되었고, 이유식을 시작한 지는 딱 일주일이 되는 셈이다. 아직은 초기 1단계 이유식. 지금까지 만든 거라고는 쌀미음, 찹쌀 미음, 애호박 미음, 그리고 오늘 아침에 부랴부랴 만든 비타민 미음이 전부이다.


 요리를 못하는 내게 위에 나열된 미음들은 너무 어려운 것들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겨우 전기밥솥으로 밥을 하면서도 실패를 하는 내가 무려 '쌀가루'로 '미음'이라는 것을 만들어야 한다니... 해 보기도 전부터 왠지 기가 죽어 버렸었다. 그런데 의외로 작정하고 찾아보니 생각보다 조리과정이 어렵지가 않았다. 처음 만들게 되는 쌀미음의 경우 쌀가루에 20배 분량의 물을 넣고 끓여 농도만 맞추면 되는데, 막연히 어렵겠지 생각하던 것과 비교하면 허무할 정도로 쉬운 레시피였다.

 

 정말 지극정성인 엄마들은 쌀가루도 직접 불리고 말리고 갈아 만든다는 것 같았지만 나는 그런 것 까지는 영 자신이 없었고 심지어 직접 무게를 개량하는 게 까다롭게 느껴져 이유식 용으로 소포장되어 나온 쌀가루를 사는 것으로 대신했다.


 내가 산 쌀가루는 딱 10포가 들어있었고, 값은 12g에 4500원이었다. 에게게, 몇 그람이나 들었다고 4500원이야?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지만 무게를 개량하기 위한 수고로움의 값이라고 생각하면 그냥저냥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렇게 첫날, 쌀가루 스틱 한 봉을 뜯어 20배의 물을 탔고, 가열을 했고, 어렵게 생각하던 게 무색할 정도로 쉽게 이유식이 뚝딱 만들어졌다. 심지어 그 12g짜리 한 봉으로 3일 치의 이유식이 나왔고, 이 정도면 초기 이유식은 어떻게 해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아기에게 먹여 보았는데, 잘 먹어 줄 거라는 기대와는 다르게 아기는 삼키는 거 반, 뱉는 거 반, 남기는 거 반...  잘 먹어 주지를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아기가 남긴 미음을 개수대에 쏟아 버리며 제일 처음 든 생각이 뭐였냐면,  처음 생각했던 대로 이유식을 사 먹였더라면 10포의 쌀가루에 4500원이 아니라 한 끼에 4500원이 들었겠구나 하는 것이었다.  심지어 이렇게 몇 숟가락 뜨지도 못하고 버리게 될 것을 말이다!


그런 생각에 호들갑스럽게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하니 엄마는 깔깔깔 웃으시며 그럼 처음 음식이라는 걸 먹어보는 아기가 남김없이 싹싹 잘 먹어치울 줄 알았냐며 당연한 거라 말씀해 주시는데, 나는 그 당연한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이제와 고백하자면 이유식은 사 먹일 거라고 몇 번이고 생각했지만 그럴 경우 들어가는 값이 어느 정도인지는 따져본 적이 없었다. 막연히 지금까지 모유수유를 했으니 분유값도 굳었겠다- 하는 정도로만 생각해 온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대책 없이 이때까지 왔구나 싶다.


 어쨌거나 난 이유식을 만들었다!  “세상에, 다행이다.” 라며 늦은 계산기를 머릿속으로 두드려 본다. 어쩌면 중기로 넘어가면서부터 직접 만드는 것이 어려워지면 그때는 진짜로 사 먹이게 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조금 수고스럽더라도 직접 이유식을 만들 예정이다.


 이유식을 직접 만든다는 건 당연히 아기를 위한 사랑으로 하는 노동이지만, 결국 나에게 있어 이유식을 만든다는 건 짧은 노동으로 경제적 여유를 얻는 것 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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