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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skalai Dec 14. 2016

실크로드인가 누들로드인가

2014년, 서안에서 카슈가르까지 

중국 북서부, 섬서성(산시성)의 성도인 서안(시안;西安)에는 천하제일면이라는 면요리 체인점이 있다. 

배짱 한 번 좋은 이름이다, 듣고서 웃었지만 그 이름을 듣고 가보지 않을 수야 있나.    

  

원래 이 요릿집의 이름은 평범한 서부면장이었다고 한다. 2000년에 미국의 어느 과학자가 초빙을 받아 이 집에서 식사를 한 후 맛있다고 현장에서 First noodle under the sun이라고 써준 것이 계기가 되어 천하제일면으로 개명했다나. 이 집에는 면요리가 18가지나 있지만, 그중에서도 유명한 요리는 납작한 면이 끊어지지 않고 몇 미터나 이어지는 허리띠면이다.


사진 오른쪽에 보이는 넙적한 면이 바로 천하제일면의 대표 요리인 허리띠면. 어떻게 끊어가며 먹는지 점원이 시범을 보여준다.

 

이건 서안의 명물 요리, 삐앙삐앙면.  소스가 매콤하다는 점이 다를 뿐 면 자체는 허리띠면과 비슷하다.


중국요리의 화법이라는 게, 닭고기를 쓰고 봉황이라 일컫고 뱀을 쓰면서 용이라고 이름 붙이는 일이 흔하다 보니 천하제일면이라는 이름도 웃어 넘기기 쉽지만, 이 이름에는 나름 의미심장한 구석이 있다. 

서안은 중국에서 제일 먼저 면을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지역이거든. 


서안의 전신은 2천 년 전 한나라의 수도 장안(長安). 

수나라와 당나라의 수도이기도 했던 바, 그 주장에 일리가 있기는 하다. 


다만 그건 '중국에서'로 한정했을 때의 이야기. 

세상에서 국수가 제일 먼저 만들어진 곳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답이 간단치 않다. 

게다가 누들이라고 하면 밀가루 요리 중에서도 만두나 수제비 비슷한 짧은 면을 포함시켜야 하는가, 기다란 국수면으로 한정하는가에 따라서 답이 달라질 수도 있는 상황. 


2009년에 KBS에서 만든 다큐멘터리 누들로드는 다른 답을 하나 암시했다. 면이 처음 만들어진 곳은 동양의 장안과 서양의 시칠리아 사이 어디쯤 일지 모른다는 것. 중앙아시아 지역, 바로 실크로드다. 


*



서안에서 북서쪽으로, 서유기에서 삼장법사와 손오공이 갔던 길을 따라가다 보면 난주(兰州;란저우)라는 도시가 나온다. 물론 이 길이 곧 실크로드의 길이기도 하다.


황하 상류가 관통하는 도시이기도 한 난주는 난주 우육면(牛肉麵)으로 이름 높다. 


사실 우육면은 중국 어디에서나 즐겨 먹는 면요리이고, 실크로드에 속하는 지역이라면 어디에서나 간편하게 사 먹기 좋은 음식이다. 서안이나 우루무치에서도 패스트푸드로도 팔고, 아침식사로도 파는 게 우육면이란 말씀. 

그러나 난주의 체인점 마즈루에서 겨우 7위안에 사 먹을 수 있었던 이 한 그릇은, 이전에 먹었던 우육면은 모두 이 면의 그림자였구나 싶을 정도로 차원이 달랐다. 


분명히 난주에서 제일 맛있는 가게도 아닐 텐데, 이 도시에 숨어 있을 다른 집들은 어떨까 상상하게 된다. 


*


다시 실크로드를 타고 좀 더 북서쪽으로, 과거 한나라의 국경이었던 가욕관을 통과하여 사막으로 나가면, 


과거 실크로드의 중요 거점으로 엄청난 풍요를 누렸던 오아시스 도시. 실크로드가 유명무실해진 지금도 명사산과 막고굴이라는 엄청난 관광자원으로 살아가는 돈황(둔황)이다. 


돈황 막고굴


돈황에는 어떤 국수 요리가 있었는가 하면, 당나귀 국수가 있었다.


이건 번외편이랄까. 같이 먹어본 당나귀고기 수육. 
본론은 이거다. 뤄러우 황미엔(驴肉黄面)


당나귀고기 자체는 뭐랄까, 그저 이제까지 먹어본 어떤 고기와도 좀 달랐다고밖에 표현을 못하겠고... 

돈황에 가면 꼭 먹어보라는 당나귀고기 황면은 확실히 맛있었다. 


유독 돈황에서 당나귀고기가 별미로 알려진 이유가 뭘까. 

실크로드를 오가던 카라반을 상상하면 낙타가 먼저 떠오르지만, 실제로는 당나귀가 실크로드 전역에서 짐을 나르고 수레를 끌고 사람을 태우는 데 가장 많이 쓰였다고 한다. 


물론 돈황의 별미 중에 낙타발 요리도 있기는 하다 :) 


*


돈황은 아직 도입부나 다름없다. 또 북서쪽으로 더 가본다. 

과거에는 돈황에서 우룸치까지 정해진 경로가 있었을 테지만, 지금 돈황은 중국의 기찻길에서 약간 벗어나 있다. 우룸치로 가려면 두어 시간 차를 타고 가까운 기차역까지 달려가서, 침대차를 타고 우룸치까지 가야 한다. 


우룸치 근처의 투르판도 마찬가지다. 


투르판 화염산. 거대한 풍경이라 사진에 제대로 잡히지도 않는다. 


다큐멘터리 누들로드에는 신강성 투르판의 화염산에서 발견된 미라 이야기가 나온다. 

발굴을 주도했던 연구소에 미라와 함께 묻힌 부장품들이 보관되어 있는데, 그중에 2500년 전의 국수가 있다는 것이다. 지금 신강성에서 먹을 수 있는 국수와 매우 흡사한 면이다.      


(지금의 중국 청해성 황하 유역의 라자 유적지에서 4000년 전의 국수가 나왔다는 발표도 있지만, 이쪽은 사진만 남아 있을 뿐 유물이 없고, 학계에서도 아직 진위를 확정하지 못했으니 일단 넘어가자.  

다만 그 주장이 사실이라 해도, 당시 그 지역은 중국이라기보다는 서역에 더 가깝다) 


인근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라그만, 또는 라그멘이라는 국수 요리가 있다.  


우루무치 시외버스 정류장 근처에서 먹었던 비빔면. 허름한 식당인데 깜짝 놀랄 만큼 맛있었다.
같은 식당의 정정초면. 짧은 면이 마카로니 같기도 하고. 

   

우루무치부터 더 서쪽으로, 

신강성은 물론이고 그보다 서쪽까지 위구르인이 사는 지역은 모두 이 라그멘/라그만의 세계라 해도 무방하다. 


중국에서는 신강성의 면요리를 신장빤미엔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잠시 혼란스러운 이름 정리. 


실크로드 여행을 하며 식당을 돌다 보면, 메뉴판에서 제일 쉽게 기억할 수 있는 이름이 빤미엔(拌面)이었다. 

그래서 그게 빤미엔인가 보다, 하고 사 먹었는데, 손짓 발짓해가며 위구르 사람들에게 음식을 사 먹다 보면 빤미엔도 나오고, 라미엔도 나오고, 라티아오즈라는 이름도 나오더란 말이지. 


이제 와서 정리해보니 위구르 이름으로는 라그멘이 맞는 거였다. 나머지는 모두 한족이 붙인 이름이랄까. 

빤미엔은 비빔면을 통칭하고, 라미엔은 '잡아 늘리다'라는 뜻이라 가늘게 뽑은 수타면을 가리키는 말이 된다. 라티아오즈(拉条子)는 또 무엇인고 하니 신장빤미엔을 가리키는 다른 이름이랄까, 새콤달콤한 소스에 버무린 위구르식 비빔면을 가리킨단다. 


그렇다면 라그만/라그멘이라는 이름은 원래 위구르 이름일까. 혹자는 중국이름 라미엔에서 나온 말이라고도 하는 모양인데, 원래 이 지역 사람들이 먹던 음식이니 중국어가 들어가기 이전에 이미 부르던 이름이 있었다고 봐야 타당하지 않을까. 어쩌면 정반대로 라그만이라는 이름에서 라미엔이 파생되었는지도 모른다. 


(분명치 않은 부분은 이후에 확인 가능하면 수정하겠다) 


*


우룸치에서 기차로 다시 열몇 시간을 서쪽으로 달려가면 나오는 카슈가르(과거 실크로드의 카시)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마찬가지가 아니라 좀 더 명확하게 라그만/라그멘이라는 이름을 들을 수 있다. 

우룸치는 이미 한족이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지만, 카슈가르는 아직도 위구르인이 90퍼센트라 그런지 메뉴판에 한자 이름이 보이지도 않는다. 


카슈가르의 아름다운 식당 알툰 올다에서 먹은 양고기 라그만


카슈가르에서 더 서쪽으로 가면 파키스탄이 나오고, 북쪽으로 올라가면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이 나온다. 아직 그 나라들까지 가보지는 못했지만, 모두 라그만을 먹을 수 있는 지역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한국에도 라그만을 먹을 수 있는 곳이 있기는 있다. 서울 동대문에 위치한 우즈베키스탄-러시아 음식점 사마르칸트. 다만 여기에서 파는 라그만은 우즈베키스탄 식이라 국물이 있다고. 


*


번외. 알툰 올다(위구르어로 황금 궁전)는 이런 식당이다.




휘황찬란하지만, 그렇다고 아주 비싸거나 어려운 분위기는 아니다. 라그만 한 접시에 20-30위안 정도. 

혼자 앉은 사람은 나 정도였고 친구들이나 가족들이 편안하게 와서 먹고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분위기. 

디저트도 맛있으니 카슈가르에 갈 일이 있다면 추천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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