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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skalai May 17. 2016

백 년 된 도시, 백 년의 역사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2016.03.03-03.06)

메르데카 광장에서 


이번에 동행한 I님이 여행지 결정을 전적으로 맡기셨을 때 그래도 어떤 곳에 가고 싶냐, 혹은, 어떤 곳은 안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답이 이랬다. 

"자연과 유적이 좋아요. 백 년 이하는 별로." 


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곳 중에서 목적지와 비행기 노선을 고르다 보니 가장 적절한 경유지였던 쿠알라룸푸르. 급속도로 발전한 만큼 서울보다 더 보행자 배려가 없는 데다, 역사 자체가 백 년을 겨우 넘긴(1857년 건설) 현대 도시. 


거기서 백 년 넘은 건물들은 다 여기, 메르데카 광장 주변에 몰려 있다.  


100미터 높이의 깃대. 


이런 형태의 - 크기로 승부하는 국가주의는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1957년 독립하면서 영국 국기를 내리고 말레이시아 국기를 올린 곳에 세웠다니 의미는 충만하겠다. 


이 깃대와 광장을 중심으로, 가볍게 걸어서 돌 수 있는 반경에 위치한 공공건물은 모두 이 도시의 시작과 연대가 비슷하다. 건물 자체에 건축 연도가 박혀 있고, 안내지도를 보면 건축양식은 물론이고 건축가 이름까지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어 신기하다. 쪼르륵 붙어 있는 건물들이 영국의 튜더 양식, 고딕 양식에 모굴 양식, 무어 양식, 말레이 전통양식까지 다채롭게 보여준다. 건축사가 곧 이 도시의 파란만장한 백 년 역사다. 

박물관마다, 건물마다 들어가 보지 않는다면 천천히 돌아봐도 두어 시간이면 충분. 


시 극장(1896) - 구 시청

 


술탄 압둘 사마드 빌딩 (1894)




동일한 건물. 처음에는 말레이 연방정부 건물이었다가 대법원으로 쓰였다가 현재는 정보통신부라고.


로얄 셀랑고르 클럽(1884)



음악박물관(1919)



세인트 메리 성당(1894)



쿠알라룸푸르 시티 갤러리(1898)

 

원래는 박물관에 들어갈 생각이 없었지만, 쉬고 커피라도 마시고 싶었는데 그러려면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입장료 5링깃. 내부 전시는 광화문에 있는 서울 박물관의 축소판 같은데 가격 대비 나쁘지 않다. 그보다도 여길 추천하는 이유는 내부 카페.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를 통틀어 가장 맛있는 커피를 여기에서 마셨으니... 아이스커피 가격 5링깃. 입장료를 더해도 10링깃! 추천, 추천. 


(음식 사진이 제대로 나온 게 없어서 동행분의 그림일기를 링크한다: https://brunch.co.kr/@boida/2 ) 



2층에서는 KL 도시모형으로 레이저쇼를 볼 수 있다. 같이 나오는 영상물은 흠... 서울/한국에서 흔히 보는 홍보 영상과 센스가 비슷하다. 아래 모형을 보아도 메르데카 광장 주변 (차이나타운과 뻬르다나 식물원&공원까지 포함하여)을 제외하면 고층건물과 아파트 단지 위주의 현대 도시다. 


이상하게도 중정에 장식된 천이 제일 눈에 들어왔다... 이거 화장실 가는 길인데...; 




이상 메르데카 광장은 모두 마스지드 자멕 역에서 걸어갈 수 있고, 이 역은 마스지드 자멕Masjid Jamek이라는 사원 바로 옆이다. 


1909년 설립하여 이 도시에서 가장 오래된 이슬람 사원. 숙소에서 코앞이니 한 번쯤은 들어가 볼 줄 알았는데, 계속 열린 시간을 못 맞추거나 복장을 못 맞춰서 들어가지 못했다. 관광지이기보다 종교시설이다 보니 오전 9시 반부터 12시, 오후 2시 반부터 4시까지밖에 들어가 볼 수 없고 긴 옷에 스카프 착용 필수. 


그런데 출입 시간과 복장 규정 옆에 새로 프린트한 종이가 한 장 붙어 있었다. 



[ ENTER AT YOUR OWN RISK ] 라... 흠. 


... 머리를 가려야 한다거나, 다리를 가려야 한다거나를 출입 조건으로 다는 사원이야 어떤 종교 문화권에서든 접해봤고, 앞뒤 맥락을 생각해보면 아마 여기 안내문을 무시하고 지역 주민들을 화나게 한 관광객들이 있었으리라 짐작은 가지만. (그것도 아마 최근에)  

그래도 그렇지 그냥 위험은 알아서 감수하라는 경고는 처음 봤다. 


말이 나온 김에 도착한 날 밤에 나섰던 밤 산책의 인상을 같이 적어야겠는데. 


말레이시아는 동남아시아 국가 중에서 치안, 위생, 공공 시스템이 상위권이다. 치안은 여자 혼자 여행하기에도 문제없는 수준. 그럼에도 쿠알라룸푸르에는 미묘한 구석이 있었다.


딱 집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가난하고 공공기반이 약하거나 부재해도 곧 긴장을 풀고 다닐 수 있는 지역이 있고(좋은 예가 크로아티아나 인도네시아), 부유한 유럽권 국가라도 긴장이 풀리지 않는 곳이 있는데(내 경우에 그런 경험으로는 프랑스가 있다), 여기는 후자에 기운 느낌이었달까. 


내 느낌만은 아니었나 보다. 확인해보니 론리플래닛 말레이시아에도 '여성 여행자는 현지인과 비슷한 옷을 입고 다니는 편이 안전하다' 등의 주의사항이 올라가 있다. 


말레이시아는 인구의 60프로가 무슬림, 인도네시아는 인구의 87프로가 무슬림인데 정작 더 엄격한 이슬람 분위기는 말레이시아가 풍기는 건 어찌 된 일인지. 빠른 성장, 도시화, 그리고 정치 사회적인 어떤 요소들이 결합해서 이 분위기가 형성되었을까 궁금해진다.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를 겨냥한 테러의 목적이 주로 이 나라들의,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이슬람을 경직시키고 근본 주의화하는 데 있다는 점이 떠오르면서 걱정도 되고. 실은 다른 이슬람권보다 오히려 한국과 겹쳐지는 구석도 있고 그렇다... 


생각이 한참 굴러가 버렸는데, 현재 쿠알라룸푸르는 위험한 곳은 아니다. 위에 적은 대로 밤늦게, 번화가도 아닌 곳을, 딱 봐도 외국 여행자 차림으로 돌아다니지는 않는 게 좋겠다는 정도로만 생각하면 좋을 듯. 그러니까 너무 짧은 반바지나 미니스커트는 피하는 정도... 낮에 걸어 다니려면 햇빛이 강하니 얇고 시원한 재질의 긴 옷도 괜찮은 선택이다. 반바지에 사롱이나 랩스카트를 두르는 방법도 있다.  

평소에 스카프를 쓸 필요는 없지만 사원에 들어갈 때는 꼭꼭 예의를 갖추고. 


3월 3일 밤에 산책하다가 본 KL타워와 페트로누스 쌍둥이탑. 


저 두 건물이 원래 쿠알라룸푸르의 상징물이고 쇼핑 명소인데, 일주일 머물면서 이 이상 가까이 가본 적이 없다...; 


2016.03.04



끄적끄적 생각나는 정보 


쿠알라룸푸르: 인천에서 비행기로 일곱 시간. 동남아시아 일대는 물론이고 호주나 인도까지 어지간한 곳은 3시간 안쪽으로 갈 수 있는 교통 요지. 3월-4월까지 우기라 저녁에도 덥다. 태국이나 캄보디아가 에어컨 없이 지낼 만한 곳이어서 방심했는데, 더 남쪽인 데다가 대도시 한가운데의 더위란 그 정도 수준이 아니다. 


마스지드 자멕 역: 공항에서 공항선을 타고 KL센트럴 역에 도착, 자판기에서 동그란 토큰을 사서 5호선을 타고 두 정거장이라 어렵지 않다. 5호선과 3, 4호선이 교차하는 역인데, 나중에 경험해보니 갈아타려면 안에서 꽤 멀고 복잡한 경로로 움직여야 한다.  


메르데카 광장에서는 시티갤러리 내부 카페를 추천하지만, 광장 지하에 그보다 싼 대중 음식점도 있다. 쿠알라룸푸르는 기사식당 분위기의 싼 음식점이나 노점 음식도 먹어서 탈이 날 일은 없으니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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