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퇴근한 아내가 만 30개월 된 여자아이를 어린이집에서 픽업해 집에 데리고 온다. 아이를 부랴부랴 씻기고 저녁을 준비해서 먹이고 나니 오후 8시 30분이다. 평소보다 시간이 더 걸렸다. 항상 남편이 오후 7시에 퇴근해서 공동육아의 중대한 역할을 담당하는데 오늘 남편은 야근을 한다.
오래간만에 독박 육아이자 비상인 수요일 저녁이다. 오늘의 마지막 미션은 오후 10시 육아 퇴근이다. 오후 9시가 되었다. 강제로 집안의 모든 불을 꺼버린다.
엄마는 더 놀고 싶은 아이에게 단호하게 말한다.
“빨리 자라!”
이 상황에서 “빨리 자라” 의미는 성장호르몬 방출이 수면 시작 후 90분경에 최고치에 이르고 새벽에 다시 한번 나오기 때문에 키가 크기 위해서는 일찍 자는 게 좋다는 의미가 아니다.
"딸아, 오늘 엄마가 좋아하는 드라마 본방사수를 해야 되는데 도와줄래?"라는 의미다.
늦은 밤이 되어도 아이는 엄마와 달리 에너지가 넘친다. 오늘은 평소보다 더욱 활기차고 씩씩하다. 이런 상태면 아이를 일찍 재우기는 애초에 글렀다. 엄마는 육퇴(육아 퇴근)가 힘들어 보인다. 그녀는 평소와 다른 전략을 쓰기로 한다. 일단 게임을 하면서 운동도 할 수 있는 닌텐도 링피트를 TV 화면으로 틀어준다. 운동 강도나 타입은 시간 대비 최대 칼로리 소모를 목표로 한다.
한바탕 신나게 운동을 한 아이는 미리 물을 받아 놓은 욕조에서 간단히 물놀이를 한다. 목욕 후 따뜻한 우유도 한 잔 마신다. 움직여서 에너지를 충분히 소모했지만 아이는 겉으로 보기에 아직은 팔팔하다. 본방송 1시간 전이다. 아이는 늦게 자고 싶어 자꾸 말을 건다. 습관적으로 자라 자라 하니 자기 이름이 ‘자라’냐고 아이가 되물어 본다.
아이는 잠자기 싫은 온갖 핑곗거리를 늘어놓는다. 그럼에도 그녀는 단호하다. 아이는 자기 전에 물을 마시고 화장실도 다녀왔다. 그러나 아이는 잠자리에 누워서도 그녀에게 요청사항이 많다.
인형을 안 가지고 왔다. 목이 자꾸 마른다
화장실을 한번 더 가야 될 것 같다. 무슨 소리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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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노력을 방송국이 알까?
아이가 좋아하는 자장가를 틀고 그녀는 이불을 뒤집어쓴다. 같이 자는 척하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다. 스마트폰 화면 밝기를 최대한 어둡게 한 후 뒤돌아 눕는다. 장보기를 위해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린다. 시간 날 때 미리미리 쇼핑해 놓지 않으면 집에 먹을거리가 떨어져 버리는 낭패를 본다.
오늘은 아이를 재우다가 같이 잠들지 않겠노라고 그녀는 다짐한다. 오래간만에 꽂힌 드라마가 오후 10시부터 시작한다. 다시 보기로 시청하면 되지만 본방송을 보는 맛은 정말 다르다. 현실세계의 우울함을 조금이라도 빨리 벗어나 위로와 치유를 받고 싶다.
역시나 아이는 잠을 못 이루고 뒤척인다. 본방사수를 하고 싶은데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될 것 같다. 더 이상 아이에게 버럭 하고 싶지 않은데 말 안 하기 게임을 할까? 순간 고심해 본다. 얼마 전 그녀는 최신 블루투스 이어폰을 드라마 청취용으로 하나 샀다. 아이 옆에서 이어폰을 한쪽 귀에 꽂고 드라마를 듣고 있어도 거추장스럽지 않다.
아이를 좀 더 재우고 싶다
워킹맘 아내는 오전 6시 30분에 기상하여 만 30개월 된 여자아이를 씻기고 옷을 입혀 밥을 먹인다. 오전 8시에 그녀는 출근하고 오전 7시에 일어난 남편이 아이를 어린이집에 등원시킨다. 아이는 어린이집 종일반에 다닌다. 오후 5시 30분에 그녀는 칼퇴근을 해서 아이를 픽업해 집으로 데리고 온다. 꽉 짜인 스케줄에 의해 부부는 기계적으로 움직인다.
그녀가 집에 와서 아이를 간단히 씻기고 저녁을 준비하고 있으면 남편이 퇴근하고 온다. 남편이 아이를 목욕시키고 놀아주고 있으면 그녀는 저녁 준비 및 다음날 가족 아침까지 준비한다. 전날 아침에 입을 옷과 준비물을 챙겨 두면 몸도 편하고 안심이 된다.
진짜 아침마다 전쟁이고 월요일이 제일 싫다. 온 가족이 주말을 기다리고 불타는 금요일이 되면 제일 좋다. 아이는 주말에 많이 놀아주면 된다. 딸아이만 일등으로 어린이집에 가고 제일 꼴찌로 오는 것 같아 그녀는 미안하다. 그녀는 잠도 안 깬 아이를 억지로 깨워서 씻기고 밥 먹여 보내는 게 제일 마음이 아프다. 가기 싫다고 하면 그날은 기분 좋게 제 끼고 싶다. 그녀는 여전히 풀타임을 파트로 바꿀까 아니면 휴직을 할까 고민만 한다.
아이가 아프다
아이가 감기에 걸렸다. 그녀는 안 먹던 영양제를 손수 챙겨 먹는다. 엄마라도 건강해야 아이의 병간호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위안을 삼을 수 있는 것은 아이가 감기약을 먹으면 쉽게 잠이 든다. 원하는 시간에 맞춰 아이에게 감기약을 먹이면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의 맘대로 육퇴를 할 수 있다. 육퇴와 동시에 피곤이 밀려온다. 쟁여 놓은 과자 한 봉지, 맥주 한 캔, 냉동실에 아이스크림 한 통이 눈에 아른거리지만 그녀도 모르게 잠이 든다.
요즘 들어 아이가 자꾸 코피를 흘린다. 코가 건조하지 않게 연고를 발라주고 가습기도 틀어주지만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코 안에 혈관이 약하고 예민하다고 하는데 한 바가지 이상 아이가 코피를 쏟을 때는 걱정스럽다. 그녀는 아이에게 코를 절대 파면 안 되고 코를 세게 풀지 않도록 계속해서 주의를 준다. 코피 예방에 연근이 좋다고 해서 말린 연근을 갈아 매일 요플레에 섞어 먹인다. 간병하느라 그녀의 얼굴이 수척하다.
아침 전쟁을 치르고 회사에 출근해 잠시나마 여유롭게 커피를 한잔할 때가 그녀의 공식적인 힐링타임이다. 이렇게 산다고 부귀영화를 거머쥐는 것도 아니고 현상 유지를 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멀리 보고 하루하루 힘낼 뿐이다. 그녀는 그냥 어른이다. 그러나 아이 앞에서는 아직까지 천하무적 엄마여야 한다. 엄마라는 타이틀이 무거워도 지금은 지키고 버틸 때다. 간간히 숨 쉴 틈이 생기면 그것으로 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