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만 공격하는 너희들은 다 계획이 있구나
어른 또한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권력욕에 사로잡힌 어른들은 반쪽짜리 대의명분을 앞세워 자신들의 지지세력을 규합하고 소소한 일에 연연하는 사람들을 경시하며 철권을 입맛대로 휘둘렀다. 역사는 그들을 잊지 않고 재평가를 했지만 때로는 객관적 자료가 최대한 확보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관적 관점 하에 재해석하고 그들이 살아온 흔적과 다른 상대적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평가의 행위를 하기 위해서는 선택의 절차가 필요하다.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쉬워 보이지만 한편 제일 어려운 일이다. 인생을 살면서 우리는 많은 선택을 하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진다. 간혹 낯선 경험이 인생을 통째로 버퍼링에 걸리게 해서 아예 재부팅하게 하기도 하지만 어떤 선택이든 끝까지 지켜봐야 한다.
중국 명나라 말기의 문인이었던 홍자성의 채근담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작은 일이라 하여 허술히 하지 않고 남이 보지 않는 곳이라 하여 속이고 숨기지 않으며 실패한 경우에도 스스로 포기하지 않으면 진정한 대장부이다.
작은 일도 소홀히 하지 않는 사람은 진정한 대장부라는데 작은 일에만 집착하는 나는 대장부인가? 작은 돌이라고 하찮게 여기는 사람은 그 돌에 걸려 넘어진다. 큰 돌은 눈에 잘 띄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피해 가지만 작은 돌은 얕보기 때문에 화를 자초할 수 있다. 작은 일은 손이 많이 가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피한다. 그러나 선망과 존경의 대상도 처음에는 모두 작았다. 모든 일은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방어 태세를 취하다
올해 여름은 역대 최장 장마로 모기 유충이 증식하기에 나쁜 환경이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모기에 덜 물려서 너무 좋았다. 그런데 가을이 되고 기온이 떨어지면서 모기들이 따뜻한 실내를 찾다 보니 우리 가족 역시 모기들의 만만한 저녁식사가 되었다.
전기모기채는 철망이 촘촘하지 않아 눈앞에 날아다니는 모기한테 휘둘러도 다 빠져나간다. 또한 스위치를 누르면 빨간색 불은 들어오는데 도무지 반응이 없다. 제품을 산지 이틀밖에 안 지났는데 벌써 불량이다. 뽑기 운을 탓하기에는 모기떼 극성에 밤잠을 설친다.
게다가 전자모기향을 방과 거실에 피우면 냄새가 집안 전체에 퍼져 모기를 잡다 사람 잡겠다. 눈도 따갑고 숨쉬기도 힘들다. 다시 창문을 열어 환기를 하고 싶지만 숨어있던 모기들이 한꺼번에 다시 집안으로 들어올까 망설인다. 결국 답은 원터치 모기장인가? 설치도 쉽고 접기도 쉬운데 모기장 안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게 몹시 불편하다. 방어막이 공고한 것 같은데 적의 침입을 막을 수 없다. 맹렬한 공격도 아닌 데 아군의 피해만 늘어간다.
적의 집중 공격 대상
모든 일에 집착을 버리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삶의 매 순간을 대하라고 역사를 통해 배웠지만 여전히 나는 한 마리의 모기에 나의 인생을 건다. 오늘 밤도 어김없이 모기와 나의 일대일 배틀이 치열하다. 지극히 사소한 이 순간들 사이로 내 가족의 오늘 밤 숙면이 결정된다. 내가 목숨을 걸 수밖에 없는 명목적인 이유다. 나는 부모이자 아빠 육아의 대표주자로서 나의 일상을 깨뜨리는 적을 소탕하리라.
어차피 나는 적의 집중 공격 대상이 아니다. 나의 아이가 1순위이고 아내가 2순위다. 모기가 혈중 지방 농도가 높은 피를 선호한다고 하는데 오히려 신선하고 건강한 피를 더 좋아하는 것 같다. 내 피는 고농축 스테로이드로 이루어진 최첨단 진통제 방어막으로 보호되고 있다. 또한 고지혈증과 고혈압이라는 보조 무기를 몸 전체에 배치하고 있어 웬만한 모기들은 내 주위를 배회만 하지 쉽게 공격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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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만 공격하는 너희들은 다 계획이 있구나
적의 동태를 파악하고 적의 전술에 적절히 대응한다. 현관문과 방충망을 점검하고 하수구를 소독한 후 막아버린다. 그럼에도 적은 나를 기만한다. 어떻게 잡아도 매번 계속 나오지? 적의 숫자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한 명만 집중 공략하는 모기 너희들은 훈련을 따로 받았나? 얼굴만 잔뜩 물린 아이가 간지러워서 계속 긁다 보니 피가 잔뜩이다. 농가진이 생길까 봐 걱정이다. 연고를 열심히 발라주고 얼굴에 흉이 질까 봐 아이의 손톱을 짧게 잘라준다. 쿨링 기능이 있는 모기 패치를 붙여주고 집에서도 모기 팔찌를 채워준다.
갑자기 앵앵대는 모기 소리가 난다. 문을 급하게 닫고 불을 켜보지만 눈에 잘 안 보인다. 눈에서 레이저를 쏘며 집 전체를 유심히 스캔해보지만 역시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일단 유인한다. 불을 다 끈다. 그리고 미동도 하지 않고 스마트폰 화면 불빛만을 켠다. 갑자기 귀 쪽으로 지나가는 모기 소리가 난다. 불을 잽싸게 켠다. 드디어 블라인드에 매달려 있는 모기를 발견한다. 파리채로 사정없이 내려친다. 모기가 피를 토하면서 죽는다. 이런, 내 아이의 피가 분명하다.
시련과 마주치다
순간적으로 움직인다고 옆구리에 담이 왔다. 분명 자고 일어나도 통증에는 차도가 없을 것이다. 파스와 진통제 값만 더 들게 생겼다. 사람은 시련을 겪으면 성숙해진다고 하는데 내 심신은 바람만 스쳐도 쓰라린다. 사소한 시련에도 기운이 쭉쭉 빠진다.
겨울이 될수록 벌들은 면역력이 약해져 사라지고 반대로 모기들은 더욱 왕성하게 움직인다. 나이가 들수록 나의 면역력은 감소하는데 타고난 모기의 활동력이 부럽다. 우리 몸의 면역력은 장이 70%를 담당한다고 한다. 장이 건강하려면 적게 먹고 식이섬유가 풍부한 식단으로 바꿔야 한다. 유산균도 장 건강에 도움이 된다. 모든지 하루아침에 효과를 보기 힘들다. 망가진 숲이 회복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린다. 사소해 보이는 현재 일을 묵묵히 하다 보면 어제와 오늘, 내일이 쌓여 어느새 시련을 뒤로한 채 저 멀리 걷고 있지 않을까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