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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skerJ Nov 01. 2024

남편의 기대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연습

나를 바라보는 기준 바꾸기

나는 심리상담을 하는 상담사이기도 하지만 상담을 받기도 하는 사람이다.

나 역시 삶에서 더 편안해지고 나아지고 싶은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한 동안은 '엄마인 나'로서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부족하다고 느껴지는데 되지 않는 부분을  주제로 다뤘었는데, 이번 회기에서는 '아내인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지금껏 타인의 기대에 맞춰 살아온 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상대의 나에 대한 기대에 민감하고, 나에 대한 실망 비난 미움을 두려워한다는 것을 모르고 살아온 것은 아니다. 다만 이 부분이 힘들기도 하지만 동시에 상대의 기대를 채우기 위한 노력을 하게 만들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이상의 성취와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그걸 동력으로 계속 이대로 달려왔겠지.

나와 가까울수록, 그러니까 사랑 받고 싶고 인정 받고 싶은 사람일수록 그 기대에 많이 휘둘리게 된다. 그 사람이 대놓고 말하는 기대 뿐 아니라 말하지 않은 부분까지도 내가 추측하고 예상해서 움직일 정도다. 

결혼 이 전에는 또 다른 누군가였겠지만 결혼하고 아이들을 낳고 나서는 당연히 그 대상이 신체적으로도, 심적으로도 가까운 남편과 아이들이 되었다. 


그 중에서도 사랑 받고 기대고 싶은 성인인 남편에게 점차 기울기 시작했는데, 문제는 내 남편이 높은 기준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 본인에게 높은 잣대를 들이미는 사람들이 흔히 그렇듯 당연하게 주위 사람들에게도 같은 기준을 가지고 기대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그 기대를 의식하다 못해 추측하면서까지 파고들어 충족시키려는 나와 시너지가 날 수 밖에. 게다가 남편의 기대가 가장 크게 작용할 뿐, 그 외에도 크고 작게 여러 대상들의 기대를 의식하고 휘둘리며 살다 보니 어느 순간 나는 너덜너덜 지쳐 있는게 기본 상태가 되었다.


그렇게 아등바등 해서 얼추 기대를 충족시키면 안심이라도 하는데 (그렇게 애썼는데도 뿌듯함이라는 플러스가 아니라 '안도'라는 0의 댓가가 고작이라는게 슬프지만) 어쩌다 그 결과가 남편의 양에 차지 않았다는 리액션이 오면 그야말로 와르르 맨션이 된다.

내가 이렇게 기를 쓰고 애쓰는데, 그러다 이렇게나 지쳐버렸는데
그런 나한테 만족을 못해??????????? 


그런 순간에 내가 참아 넘길만한 에너지까지 부족하면, 바로 부부싸움으로 터지게 되는거다. 그게 2주 전 이야기다. 남편의 선 넘는 비난 앞에서 나는 퓨즈가 나가버렸다. 내 쪽에서는 불만이 없어서 말 안하는 줄 아나, 가만히 있으니까 가마니로 보나 싶어 배에 힘을 잔뜩 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평소의 진심이 가득 담긴 욕을 잔뜩 퍼부어주었다. 내가 잠시 자리를 피할 곳도 없는 차 안에서 이루어진 일이다. 의외로 먼저 성질 돋군 남편은 고래고래 퍼붓는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 그게 그나마 거기서 멈출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다. 이 기분으로 여행가고 싶지 않으니 당장 휴게소에서 멈추라 했더니 그제야 화나서 한 소리라고 미안하다고 하는 남편. 일차적으로는 시원했으나 여전히 어딘가 개운치 않았다. 여전히 그의 마음 속에 나는 본인 기준만큼 일처리를 제대로 못하는 '기대에 못 미치는 아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런 남편이랑 계속 살면서 내가 위축되어야 하나, 이렇게 주기적으로 같이 고래고래 분노를 토해야 하는 삶을 살고 싶지 않은데. 상대적으로 쉬워서 내가 그간 택해 온 방법은 남편을 욕하다 그런 남편을 택한 나를 욕하기. 그러나 지금껏 써 왔기에 그게 얼마나 효과도 없고 의미도 없는지 잘 안다. 그래서 나를 들여다보기로 했다. 그러고 싶지 않아도 자꾸만 그의 기준으로 나를 바라보며 남편 못지 않게 나를 기죽이는 나를. 그의 기대를 파악할 순 있으나 왜 그 기대대로 살아야 하지? 실망 좀 시키면 어때? 그 기대는 그의 몫이지 내 몫이 아닌데? 심지어 그는 내가 어떤 기대를 말하면 당당하게 "그건 내가 아닌데?" 라고 하지 않나? (열받는 포인트222...)


오늘 2주 전 못지 않게 분노를 토해내다 (나의 수퍼바이저이시기도 한 선생님은 덕분에 내 뻐큐..까지 보셔야 했다..ㅋㅋㅋ)한숨을 쉬다 나의 막막함과 마주했다.


제가 상대의 기대로부터 자유로워지려면,
상대에 대한 애정을 없애고 멀어져야 가능해요...
남편이라 그게 안되는데 어째야 할지 모르겠어요...


실제로 남편에 대한 애정을 좀 거두고 냉랭해졌던 적이 있다. 정확히는 냉랭해져보려 했다. 웃긴 건, 내가 먼저 거리를 두고 멀어지면서 동시에 그 멀어짐을 불안해한다는 것이다. 마치 내가 아니라 남편이 나를 두고 멀어지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러다 남편이 애정 표현을 하면 다시 안심 하는 나를 보면 한심하기 그지 없었다. 이렇게 남편의 애정이 중요하면서 어떻게 기대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건지... 

다행히, 막막함에 대해 말하고 느끼면서 서서히 안개가 걷히듯 답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남편(을 포함한 타인)의 기대를 기준으로 나를 바라보지 않고, 
나를 그냥 나로서 바라보는 연습하기.


심지어 남편도 말한 적 있다. "당신이 내 모든 기대를 채워줘서 같이 사는게 아니라고. 실망시킨다 해도 당신을 떠나지 않는다"고. 서로 다 만족스러워서 사는게 아니고, 어떤 부분은 기대에 못 미칠 수도 있지 않냐는 남편은 어찌나 내 기대로부터 자유로운지! -_- 그에 비해 나는 남편이 어쩌면 비난 못지 않게 자주 했을 말들, 애정표현 뿐 아니라 나라는 사람에 대한 인정의 표현들은 자꾸 지나치게 되고 농담일지라도 나에 대한 불만이라고 느껴지는 말들은 얼마나 곱씹어가며 되새겼는지... 


울고 소리치고 마침내는 차분해져서 "저를 저로 바라보고 여러 기대 앞에서 그걸 그냥 그 사람의 몫으로 넘기고 의연해지는 연습 해볼게요" 하고 나온 나는 집으로 가며 생각했다. 


이왕 새로운 기준으로 나를 바라보기로 결심한 거, 정말 바르고 사랑이 넘치고 관대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자고. 그런 분을 딱 한 분 알고 있으니, 그 분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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