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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skerJ Apr 02. 2022

결혼생활 | 버려지는 고통에 대하여

피해자의 자리에는 내가 스스로 앉았다.



내가 겪어온 변화와 여러 사건들, 그에 비해 꽤나 멀쩡하다고 생각했던 내 상태는 말 그대로 '내 바람과 생각'에 가까운 것이었나 보다.


어젯밤의 나를 보며 나는 내가 바라는 것보다 아직 괜찮지 않구나 라는 걸 절절히 깨달았으니.

어제의 나는 내 기억으로는 거의 인생 처음으로 '신체적 자해'를 했다.


남편이 내 말을 듣고는 가타부타 말도 없이 방으로 들어가 버린 뒤로 나는 머리를 싱크대 아래에 쿵쿵 박고, 붙박이 옷장을 주먹으로 쾅쾅 치고, 그러고도 더 뭔가를 부수고 싶은 충동을 참기가 어려웠다. 아마 내가 가장 부수고 싶은 건 바로 나였을 것이다.


사랑받지 못하고, 버려졌다고 여겨진 나를 견딜 수가 없었다. 그 고통 속에 있기가 너무 힘들어서 나를 내던져버리고 싶을 정도였지만 그럴 수가 없어서 내 몸을 아프게 했다.


마음 한편에서 아주 작은 목소리로 '남편은 너를 버리고 가버린게 아니라 자기의 화를 삭이기 위해서 타임아웃하러 들어간 거잖아.'라는 소리가 들렸나 그 소리는 곧 절망과 슬픔을 태운 분노의 폭주기관차 소리에 완벽하게 묻혀버리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신체적 자해까지 한 게 처음일 뿐이지, 생각해보면 나를 '버림받은 사람'으로 만들며 고통스러워했던 역사는 기억나는 것만 해도 꽤 된 부분이다.


대학생활을 하며 시작한 첫 연애에서도 그랬다. 내가 뭔가에 화나서 제대로 이야기 좀 하려고 하면 상대는 도망치듯 사라져 버렸고, 헤어진 게 아님에도 나는 그때마다 버림받은 사람이 되어 매번 당장 헤어진 것처럼 고통스러워했다.


나도 상대도 자신이 왜 그러는지, 어떻게 하고 있는지 알아차리고 이해하기엔 미성숙하고 어렸던지라 그저 자신의 무의식적인 패턴대로 욕구대로 움직이기 바빴을 거다.


미성숙하다고 표현했지만 그 때로부터 십 년도 넘게 지난 지금도 나는 아직 미숙한 내가 새롭다. 새로운 나는 반가울 때보다 한탄스러울 때가 많다. 나는 왜 아직도 이럴까.. 싶은. 급기야는 결혼반지도 집어던져버렸다. 나를 이렇게 버려두고 가면서 결혼이라는 약속이 다 무슨 소용인가 싶어서.


 결국엔 내가 몸으로 쿵쿵거리는 소리에 남편이 내가 있는 방으로 왔다. 여전히 싸늘했다. '힘들면 약을 먹어.' 하고는 다시 돌아가버렸다. 오히려 그 냉정함으로 조금 정신이 들었다. 그도 그대로 감정을 가라앉히기 위해 노력하는 중인데 나는 오히려 폭주하고 있구나. 나도 나만의 방법을 찾아야겠다 싶어 추운 겨울날이었지만 밖으로 나가 지하주차장에 있는 차로 향했다. 코로나로 인해 야밤에는 어디 갈 곳도 없는 처지였기에.. 그래도 차 안은 그럴싸한 아지트가 되어주었다. 몸을 뒤로 젖혀 뉘이고 차분한 음악도 틀어놓은 채 눈을 감았다. 내가 스스로 걸어 들어간 '버림받은 나'의 자리에 대해 생각했다. 여전히 서럽고 슬펐지만 어쩐지 아까보단 견딜만해졌다. 내가 나가버리니 놀란 남편이 어디냐고 들어오라고 전화해서 그 시간은 끝났지만 나도 완전한 피해자가 아니고, 감정적으로 폭발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나를 위해 뭔가를 해줄 수 있는 주체라는 게 느껴져 마음이 좀 더 나아졌다.


다음 날에는 용기를 내어 남편에게 어제 어떤 마음으로 아무 얘기도 없이 그 자리를 떠서 방으로 들어가 버렸는지 물었다. 남편은 내가 얘기할 때의 그 눈빛이 너무 공격적이어서 자기도 모르게 화가 나 우선 자리를 피했다고 말했다. 좀 당황스러웠다. 나는 입으로는 말을 고르고 골라 덜 공격적으로 말했다고 생각했는데 눈으로는 그 마음을 전혀 숨기지 못한 것이다. 결국 남편 입장에서는 내가 먼저 덤볐고, 반격하지 않기 위해 피했다는 얘기다. 그걸 나는 '버림받았다'라고 받아들인 것이다.


그제야 간 밤에 나는 스스로 '버림받은 나'의 자리로, '피해자'의 자리로 걸어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 놓고 그 자리가 너무 슬프고 무서워 스스로를 상처 내기까지 했다는 것도. 왜인지는 알 것 같다. 워낙 사람은 가장 실제가 되는걸 두려워하는 바로 그 시나리오대로 생각해버리곤 하니까. 그러나 이제는 내가 자꾸 늪처럼 빠지는 시나리오를 알았으니, 그 시나리오 속 피해자의 역할을 맡는 것도 이제 적당히 하려고 한다. 이제부터는 시나리오의 주인공으로서 선택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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