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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skerJ Apr 06. 2022

두려움을 잊은 사람들에게

학대가 이루어지는 이유



좀 지난 일이지만, 한 동안 정인이 학대 사건으로 참 떠들썩했다.

굉장히 끔찍하고, 슬프고, 아픈 일이지만 고통스럽다고 해서 쉽게 외면할 수만은 없는 중요한 사건이기도 하다.

정인이 사건뿐만 아니라 연이어 아픈 학대 소식들이 들려왔다.

어떤 사람들은 '재미있을 것 같아' 강아지를 허공에다 돌리기도 했다.


사람이길 포기하지 않고서야 할 수 없을 것처럼 여겨지는 일들이 이렇게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이유는 뭘까.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겠지만 그 이유 중 하나로 나는 '두려움의 망각'을 들고 싶다.


우리가 보통 마음에 거리끼는 행동이나 선택을 하고 나서 드는 마음은 '두려움'이다.

'죄책감'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죄책감 역시 자신의 행동과 선택에 대한 두려움이기 때문에 같은 종류이다.

이 두려움은 상당히 불편하고 무거워서 마주할 용기보다는 본능적으로 도망치고 싶어 진다.

누구든 처음부터 완전히 도망치거나 외면할 수는 없기에 여러 시행착오를 거칠 것이다.

마주할 용기를 내기보다 피하는 시도가 누적되면 그때부터는 두려움에 무뎌지기 시작한다.

이 시점이 점점 소위 말하는 '인간됨'으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하는 시점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때부터는 자신의 행동과 선택에 점점 무감각해지기 시작한다.

자신의 감각과 마음에 무감각해지니, 자신의 행동이 가해지는 대상의 감각 역시 의식될 리 없다.

끔찍한 행동들이 더 이상 끔찍하지 않고 가벼워진다.

다음 행동은 더 쉽고 즉각적으로 이루어진다. 그 정도가 더해지는 것도 자연스럽다.


살면서 우리가 그토록 피하고 싶어 하는 두려움을 잊는 댓가는 자신이 '인간 이하의 존재'가 되어간다는 것이고

자신의 행동이 의식 없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누가 봐도 끔찍하고 상식 이하의 행동임에도 정작 자신은 이런 비난에 억울해하고 원통해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이 글을 적는 이유는 사실 정인이 사건의 가해자나 그 밖의 여러 학대 사건의 가해자들을 겨냥한 것이 아니다.

바로 나 자신에게 경각심을 주려는 것이다.


특히나 쌍둥이 육아를 시작하면서부터는 내가 이 약한 존재들에게 얼마나 쉽게 상처 줄 수 있는지,

그리고 그 행동이 얼마나 내 감정과 상태에 따라 쉽게 이루어질 수 있는지를 몸소 체험하면서 너무 두려워졌다.

정말 두려운 건, 이 두려움이 차츰 옅어져 간다는 것이었다.



아이들에게 내가 힘들고 지친다는 이유로 소리를 친다거나,

궁둥이 팡팡을 한다거나 하고 나서 정신이 들면 몰려드는 자괴감, 자책과 함께 아이들에게 미쳤을 부정적인 영향들을 생각하면서 두려워졌다.

가뜩이나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지치는 와중에

스스로를 몰아세우기까지 하니 참으로 고통스러웠다. 끔찍하게도 어느 날에는 자책으로 혼자 그 대가를 치른 것처럼 넘어가기도 했다.


꼭 뉴스에 나올법한 수준의 학대만이 학대는 아니

그렇다고 우리 모두가 언제나 항상 다정하고 친절한 부모로 완벽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 한계는 인정하되, 두려움을 잊지는 말자.

두려워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내일은 조금 더 나아지려는 노력을 하자. 그 노력에는 내 상태를 온전하게 지키기 위한 것도 포함될 것이다.

내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내가 놓친 나의 상태로 인해서 아무런 죄 없는 대상이 상처받고, 슬퍼하고, 아파할 수 있다는 걸 잊지 말자.

그 대상은 때로 자신의 선택과 상관없이 이 세상에 나로 인해 온 소중한 생명이 될 수 있음을 잊지 말자.

오늘도 되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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