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후는 등용되고 창희는 죽은 이유
이 원칙의 의도를 잘 생각해 보면, 전황이 불리해졌다고 자신의 책무를 쉽사리 포기하는 사람을 받아주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 이직의 시대'라는 말을 한다. 과거에 비해 이직이 자유로워졌고, 이직에 대한 시선도 과거와 비교해 많이 달라졌다. 이직은 더 이상 '배신'의 상징이 아닌 '능력'의 상징이 되었다. 특히 젊은 나이에 높은 성과를 낸 사람은 노동 시장에서 인기가 높아 점점 더 좋은 대우를 받으며 이 회사 저 회사를 옮겨 다닌다. 이처럼 이직을 할 때면 면접장에서 종종 이직 사유를 묻곤 한다. 특히 이직을 그전에도 수차례 했던 지원자라면 이 질문을 결코 피할 수 없다. 인터넷에 조금만 검색해 봐도 이직 사유를 어떻게 답변해야 하는지 질문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은 것을 보면, 이것이 한 두 사람의 고민거리가 아닌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채용사에서는 지원자의 이직 사유를 묻는 이유가 무엇일까? 지원자로부터 어떤 답변을 듣고 싶은 것일까?
지금보다 충성심의 가치가 더 중요했던 그 옛날에도 소속을 바꾼 사례는 많이 있었으며, 심지어 수차례 적을 옮긴 사례도 제법 있었다. 그 대표적인 인물로 가후의 경우를 살펴보자. 가후는 장수 휘하에서 조조의 장난 조앙, 조카 조안민, 총애하던 부하인 전위를 죽게 만든 장본인이었다. 이후 가후는 자신의 주군인 장수가 조조군으로 투항하도록 조언했는데, 당시 장수 역시 '내가 조조의 원수인데 그가 우리를 받아주겠는가?'라며 걱정했었다. 하지만 가후는 조조가 받아줄 것이라고 확신했고 이는 적중했다. 또한, 가후도 조조군에 임관하면서 '지금까지 여러 번 주군을 바꾸었는데, 매번 왜 이적했던 것인지 설명 부탁드립니다.'와 같은 요청을 받지 않았다. 그렇다면 혹시 조조가 자신에게 임관(또는 투항)하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누구든 받아주었던 것은 아닌가 싶지만 그렇지 않다. 분명 누구는 임관을 거절당했고, 또 누구는 환영받았다. 이 차이는 어디에서 기인했을까?
조조는 포위당하는 등 패색이 짙어졌을 때 투항하는 자는 사면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다고 한다. 이 원칙의 의도를 잘 생각해 보면, 전황이 불리해졌다고 자신의 책무를 쉽사리 포기하는 사람을 받아주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관점에서 보면, 가후는 이각군과 장수군에 있을 때 자신의 주군에게 수차례 헌책함으로써 큰 공을 세웠으며, 큰 위협을 받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조조군에 투항했기 때문에 조조에게 환영받았다고 볼 수 있다. (당시 장수군은 원소, 유표 동맹과 함께 오히려 조조군을 압박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물론 조조에게는 원소군과의 전면전을 앞두고 조금이라도 전력을 강화하고자 하는 의도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같은 상황에서 조조는 창희에 대해서는 상반되게 행동했다. 창희는 우금과 하후연이 이끄는 군단에 밀려 패색이 짙어지자 자신을 따르는 무리를 뒤로 한 채 투항하였고, 그는 조조 및 그의 세력과 친분이 있었음에도 결국 처형당했다. 또한, 유종이 조조군의 남하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조조군에 투항하였는데, 이에 조조는 단 한 번의 저항 없이 무책임하게 자신의 세력을 포기한 유종의 모습을 비난하며 유종에게 벌을 내렸다.
이러한 관점으로 보면 '이직하고자 하는(또는 이직했던) 사유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은 '혹시 무책임하게 맡은 바 소임을 뒤로한 채 도주(또는 포기)하는 것은 아닌가요?'라고 바꿔볼 수 있다. 채용사 입장에서 이직 사유를 묻는 이유는, 혹시 해당 지원자가 어떠한 이유에서든 주요 업무를 마치지 않은 상태로 다시 퇴사할 것을 우려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특히, 중간관리자급 이상의 고연차 지원자를 채용하는 경우, 그에게 주어진 역할이란 단순히 몇 가지의 과업만을 뜻하는 것 뿐 아니라 중장기적인 발전 계획까지 포함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따라서 지원자가 본인이 과거 이전 회사에서 이러한 주어진 미션을 달성하는 도중에 이탈하지는 않았으며 매번 요구되는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였음을 충분히 설명한다면, 채용사가 우려하는 바를 줄여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