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륵의 양수는 왜 죽었는가
공을 세우기 위해 무리하다 보면 오히려 처단의 명분을 제공할 수 있어 매우 위험하다.
인사평가 또는 구조조정의 바람이 불 때면 긴장의 분위기가 고조된다. 물론 리더의 신임을 받고 있거나 최근에 높은 성과를 거두었거나 하여 여기서 비교적 자유로운 사람도 있겠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존재한다. 특히 업무 성과가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으나 개인 성향 등 업무 외적인 부분에서 리더와 불협화음이 있었다면, 불안한 마음이 생기는 것도 당연하다. 어쩌면 리더는 그 사람을 내보내고 싶지만 그럴싸한 명분이 없어 소위 말하는 꼬투리를 찾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전략이 좋을까? 당장 평소보다 더 열심히 일해서 높은 업무 성과를 만듦으로써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것일까?
'계륵'의 일화로 유명한 양수는 조조가 한중 근방에서 유비와 충돌할 때 조조군 내에서 책사로 활약하고 있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알다시피 조조가 던진 '계륵'이라는 말의 속 뜻을 가장 먼저 알아채고 서둘러 군 철수를 준비하다가 참형에 처해지게 된다. 이 일화를 보며 누군가는 군대에서 지휘체계를 무시하고 철수를 준비하였으니 참형이 당연하다고 말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즉결처형은 너무하다고 말한다. 그간 조조는 자신의 속 뜻을 알아채고 먼저 움직이는 사람을 칭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양수가 누구인지 살펴보면 처형은 피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조는 자신의 아들들인 조비와 조식 중 누구를 공식적인 후계자로 삼을 것인지 오래 고민하였고, 신하들 역시 두 파벌로 나뉘어 대립했다. 결국 조비가 후계자로 최종 선정되었지만, 양수는 대표적인 조식의 지지자였다. 따라서 조조는 정치적 대립을 없애기 위해 양수를 처단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양수 역시 이를 모르고 있었을 리는 없지만, 단지 조식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처형을 당하기엔 명분이 부족하고 또한 자신은 양표의 아들로 정치적 입지가 탄탄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안도하고 있던 것 같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양수는 이번 전투에서 큰 군공을 세워 조조에게 자신을 어필하고 다시 한 번 입지를 굳건히 만드는 계기로 삼고자 했던 것 같다. 하지만 결과는 처형이었다.
반면, 비슷한 상황 속에서 유기는 다른 행동을 취했다. '계륵'의 일화가 있기 몇 년 전, 유표 역시 자신의 자신의 두 아들 중 누구를 후계자로 삼을 것인지 고민 중에 있었다. 그에겐 장자 유기가 있었으나 그의 동생 유종을 더 총애했다. 게다가 유기는 지병이 있어 건강이 좋지 않았고, 유종은 형주 지역의 유력 가문 채씨 집안과 혈연관계여서 그들의 강한 지지를 받고 있어 유종이 후사를 이을 것이 유력했다. (유표가 유종을 총애해서가 아니라, 채씨 가문과의 관계 때문에 후계자로 점찍었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유기도 이를 알고 있었고, 그는 현자로 유명한 제갈량을 만나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지 자문을 구한다. 제갈량은 유기에게 국경을 강화하겠다는 명분으로 변방인 강하군으로 가라고 조언한다. 당시 강하군은 태수가 공석인 상태였기에 유기는 쉽사리 강하군으로 부임할 수 있었고, 유종과 채씨 일파의 정적 제거의 칼날을 피할 수 있었다.
조직 내에서 자신의 입지가 좁아지거나 위협받으면 불안해지는 것이 당연하다. 특히 이전에 입지가 탄탄했던 사람일수록 자신의 입지가 좁아진 것에 대해 더 극심한 불안함을 느낀다. 이 상황을 개선시킬 가장 좋은 방법은 공을 세우는 등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는 것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조급한 마음에 공을 세우기 위해 무리하다 보면 오히려 처단의 명분을 제공할 수 있어 매우 위험하다. 이럴 때는 차라리 잠시 몸을 숙여 태풍이 지나가길 기다리고 이후에 차분히 다시 시작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학창 시절 성적표가 나온 날 시험 성적이 좋지 않아 부모님의 감정이 상했다면, 집안일을 돕는 등 부모님의 기분을 풀어주려 애쓰기보단 독서실을 핑계로 잠시 집을 나가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일 수 있는 것이다. 가후와 사마의도 조조의 후계 문제로 조급해하는 조비에게, 무언가를 하려고 하지 말고 그저 품행을 단정히 하라고만 조언했다. 만약 가후나 사마의, 제갈량 등이 양수의 친우였다면, 그에게 '군공에 욕심내지 말고 그저 주어진 임무에 성실히 임하기만 하십시오.'라고 조언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