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로빈의 소원〉(2020) 속 불면증 이야기
슬립X라이브러리는 우리 일상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수면에 관한 상식과 오해에 관한 이야기를 담습니다. 이번 포스트에서는 다큐멘터리 <로빈의 소원>(2020)에 등장한 불면증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2014년 8월 11일은 갑작스러운 비보에 전 세계 영화 팬들이 충격에 휩싸였던 날이었습니다. 배우 로빈 윌리엄스가 우울증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속보가 전해지면서 많은 이들이 슬픔과 혼란에 빠졌죠. 정말이지 믿을 수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우리에게 그는 〈굿 윌 헌팅〉에서 맷 데이먼(극 중 윌 헌팅)을 위로하며 안아주던 교수이자 〈죽은 시인의 사회〉 속 학생들의 ‘영원한 캡틴’ 존 키팅 선생님, 정신병동 환자들을 마음으로 치료해줬던 ‘패치 아담스’이자 유쾌한 여장 가정부 ‘미세스 다웃파이어’ 등으로 남아 있는, 따뜻한 미소와 재치 있는 유머로 관객을 울고 웃게 한 존재였으니까요. 영화계 동료들과 친구들, 지인들 사이에서도 그는 웃음과 희망의 대표 아이콘이었고요.
당시 언론은 검시관의 보고서가 나오기도 전 온갖 추측성 기사를 쏟아냈습니다. 로빈의 사인으로 우울증은 물론 알코올 중독, 마약 복용, 자금난 등까지 연관 지어 보도했죠. 로빈은 순식간에 ‘슬픈 광대’의 이미지로 전락했고, 그를 믿었던 사람들은 슬퍼하면서도 동시에 실망했습니다. ‘로빈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랐던 거야’ 하고요.
하지만 소문은 그저 소문일 뿐이었습니다. 다큐멘터리 영화 〈로빈의 소원〉(2020)은 당시 그의 죽음을 둘러싼 숱한 소문들이 거짓이었음을 폭로하며, 로빈이 병명도 제대로 알지 못했던 끔찍한 질병에 시달리며 매일 밤 불면증으로 고통받았음을 전합니다. 로빈의 가족과 친구들, 여러 의료진이 그에 대한 진실을 증언해주었습니다.
로빈이 사망한 지 두 달 후(2014년 10월), 그의 아내 수잔은 검시관의 보고서를 받으러 갔다가 놀라운 소식을 듣게 됩니다. 검시관은 로빈이 알코올과 약물 반응도 음성이었음을 전하며 이런 말을 전했습니다. “로빈은 루이소체 치매 때문에 숨진 겁니다”. 파킨슨병도, 우울증도 로빈의 정확한 병명은 아니었습니다. 생전에 그가 겪었던 우울증과 공포, 불안, 환각, 망상적 사고, 수면장애 등은 모두 루이소체 치매에서 비롯된 증상들이었던 거죠.
수잔은 그날에야 남편이 겪었던 병명을 처음으로 정확히 알게 됩니다. 그는 “로빈이 진단만 명확히 받았어도 마음이 조금은 편했을 것”이라고 말하며 눈물을 글썽였습니다. “로빈이 자신이 무엇 때문에 그토록 불안하고 우울해하는지 원인을 제대로 알지 못해 괴로워했다”라고 떠올리면서요.
UCSF 기억-노화센터 센터장인 의학박사 브루스 밀러는 인터뷰에서 “루이소체 치매는 뇌의 뉴런이 서서히 망가지는 파괴적 형태의 치매로, 치료 자체가 쉽지 않아 자살을 택하는 환자들도 종종 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루이소체 치매에 따르는 가장 고통스러운 증상은 바로 불면증”이라고 밝혔죠. 실제로 수잔도 로빈이 사망 전 수개월 동안 장기간 수면 부족에 시달리며 힘들어했다고 말합니다.
“우울증은 치료가 가능해 로빈도 초기에 잘 극복했어요. 힘들었던 건 그 병(루이소체 치매)으로 인한 수면 부족 증상 때문에 올바른 정신상태를 유지할 수 없었다는 거예요.”
수잔은 로빈이 늦은 밤에도 낮에 말하듯 큰 소리로 질문하거나, 새벽에 갑자기 “친구가 위급할지도 모르니 당장 가봐야 한다”며 망상에 시달릴 때도 있었다고 기억합니다. 전문가들은 로빈에게 잠을 못 자면 위험할 수도 있다고 말했지만, 로빈은 좀처럼 잠에 들지 못했습니다. 수잔은 로빈이 사망했던 주에도 그가 일주일 내내 잠을 거의 못 잤다고 말했습니다.
우울증과 불안, 망상, 환각 등 루이소체 치매의 여러 증상 가운데 불면증은 특히 치명적인 증상이었던 것입니다. 더욱이 깨어 있으면 우울감과 불안, 망상 등의 증상을 계속 느끼게 되니 불면으로 인한 로빈의 괴로움은 배가 되었을 겁니다.
수면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삶은 정말 하루하루가 고통일 겁니다. 특히 불면증은 수면장애 가운데서도 가장 흔한 유형으로, 불면증을 일으키는 원인 또한 다양합니다. 로빈 윌리엄스처럼 루이소체 치매 같은 치명적인 질병이 그 원인이 될 수도 있고, 단순히 가벼운 스트레스나 우울감, 수면주기 변화로 인해 밤잠을 설치게 될 수도 있죠. 불면 증상이 장기간 계속되는데도 이를 방치하거나 그 원인에 대해 정확한 진단을 받지 못한다면 일상을 제대로 영위하기 힘들어집니다.
잠을 잘 동안 우리 몸은 기억과 같은 지적 활동 관련 기능은 물론 육체적 기능을 회복하는 시간을 갖게 됩니다. 잠을 곤히 자고 일어나면 에너지가 충전되는 듯한 기분을 느끼곤 하지 않나요? 그만큼 수면이 원활하지 않게 됐다는 걸 감지할 경우 이를 건강의 적신호로 받아들이고 자신에게 맞는 생활패턴을 되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운동을 규칙적으로 시작해본다든지, 수면을 방해하는 식음료들(ex. 커피나 홍차, 초콜릿 등)을 피해본다든지, 침실의 조도 및 온도 등을 수면에 적합한 환경으로 조절해본다든지 등 여러 방법을 시도해볼 수 있을 겁니다. 다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불면증이 계속된다면 곧장 병원에 가서 보다 정밀한 검사와 진단을 받아보시는 게 좋습니다.
로빈이 죽은 지 1년 뒤, 수잔은 루이소체 치매에 대해 그간 공부해 온 내용을 바탕으로 마침내 남편의 정확한 사인을 언론에 알립니다. 그는 로빈의 자살은 우울증 때문이 아니었다고, 그에게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없도록 불가항력의 고통을 가져다준 '루이소체 치매'라는 치명적인 질병 때문이었다고 밝힙니다. 수잔은 세상이 이 질병에 더욱 주목하고 관심을 가져야 남편과 같은 고통을 반복하는 사람이 더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이를 위해 그는 신경학 저널에 로빈의 사례를 인용한 기사를 쓰기도 했으며, 루이소체 치매를 앓는 환자들의 가족을 대상으로 수차례 강연도 나갔죠.
수잔은 남편이 보고 싶을 때면 그가 생전에 알코올 중독 치료 책 맨 앞장에 친필 사인과 함께 남긴 문장을 찾아보곤 했습니다.
“사람들이 두려워하지 않도록 돕고 싶다.”
로빈의 그 소원은 이제 아내 수잔이 이어서 실천하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