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이트 클럽〉(1999) 속 불면증 이야기
슬립X라이브러리는 우리 일상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수면에 관한 상식과 오해에 관한 이야기를 담습니다. 이번 포스트에서는 영화 <파이트클럽>에 등장한 수면제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수면제 처방과 복용에 대한 정보를 담았습니다.
자기 개선은 해답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자기 파괴가 해답일 수도.
〈세븐〉 〈소셜 네트워크〉 등을 연출한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영화 〈파이트 클럽〉은 1999년 개봉 당시 위와 같은 메시지를 던지며 뜨거운 논쟁거리가 되었던 작품입니다. 물질만능주의와 과도한 소비문화를 날카롭게 비판하는 이 영화의 원작은 미국의 대표적인 컬트 작가이자 블랙 유머의 대가인 척 팔라닉의 동명의 소설(『파이트 클럽』(1996))로, 소설 역시 출간과 동시에 큰 화제가 되었죠.
영화는 주인공(극 중 에드워드 노튼)이 끊임없이 스스로를 해치고 구타당하도록 만들며 관객의 숨통을 조여옵니다.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채 매일 불면에 시달리던 주인공은 어느 날 비행기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친구 테일러 더든(극 중 브래드 피트)과 ‘파이트 클럽’을 결성합니다. 둘은 매주 토요일 늦은 밤, 허름한 술집 지하에서 그들처럼 자발적으로 스스로를 파괴하고자 모인 남자들과 나름의 철저한 규칙 아래 ‘싸움판’을 벌이죠. 그러면서 주인공은 역설적으로 생에 대한 감각을 생생히 되찾아 갑니다. 오랜 불면증으로부터도 잠시나마 해방되고요.
사실 주인공이 제대로 살아보겠다며 처음부터 다짜고짜 파이트 클럽을 결성한 건 아니었습니다. 그전에 수면제를 처방받기 위해 병원부터 찾아갔죠. 잠부터 잘 자야 일상이 회복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는 6개월 가까이 잠을 제대로 못 자고 있다며 다크 써클로 퀭해진 얼굴로 의사에게 요구합니다.
―약 좀 주면 안 됩니까? 빨강과 파랑이 섞인 튜이날과 립스틱처럼 빨간 세코날.
이에 의사는 “자연스럽고 건강하게 잠을 자야죠”라고 대답하며 처방을 거부합니다. 그저 “길초근을 씹고 운동을 더 하라”고 말할 뿐이었죠. 의사는 주인공이 상습적으로 약을 처방받아왔다는 걸 감지하고는 그가 약에 의존하지 못하도록 유도한 것입니다.
실제로 주인공이 요구한 세코날은 중독성이 굉장히 강한 약으로, 장기간 복용하면 위험할 수 있거든요. 세코날과 같은 바르비탈 계통의 약물, 할시온 같은 벤조디아제핀 계열 약물은 중독성이나 부작용이 상당해 최근엔 널리 처방되지 않는 추세입니다. 대신 비(非) 벤조디아제핀 계열 수면제인 졸피뎀이 초기 처방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죠. 스틸녹스 같은 약품이 대표적인 졸피뎀 성분의 약입니다. 졸피뎀은 복용 후 빠르면 10분, 늦으면 30분 내로 신속하게 체내에 흡수돼 즉각적으로 효과가 나타납니다. 거의 한나절은 잠에 취해 있게 되는 세코날과 달리 지속 시간도 7시간 정도로 적당하다는 장점도 있죠.
하지만 졸피뎀도 물론 너무 의존하게 되면 위험이 따르는 약물입니다. 특히 이 약은 지속 시간이 짧고 수면 유도력이 강한 편이 아니기에 부작용을 일으키기 쉽거든요. 수면제는 기본적으로 뇌의 활동을 강제로 억제해 잠들도록 유도하는데, 그러한 약의 작용이 뇌가 스스로 깨어나려는 작용과 충돌하게 되면 졸림, 두통, 어지러움 같은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습니다. 졸피뎀은 물론 독세핀이나 멜라토닌 등 수면을 도와주는 약물을 장기간 복용하게 되면 금단증상과 주의 집중 장애, 기억력 저하, 우울감 증폭 등 여러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수면제는 의사와 약 종류, 복용 기간을 상의 후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운동이나 수면 환경 개선 등 인지행동치료를 유도하거나, 좀 더 검사가 필요하다고 판단될 땐 수면다원검사를 통해 정확한 원인을 분석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죠. 실제로 소설 『파이트 클럽』에서도 의사는 주인공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불면증은 그저 좀 더 큰 병의 증상일 뿐입니다. 문제가 뭔지 찾아보도록 하죠. 몸이 내는 소리를 가만히 들어보세요.”
작품 속에서 의사는 수면다원검사까진 제안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주인공이 “너무 고통스러우니 제발 약을 처방해달라”라고 보채자 운동과 길초근 복용을 제안하며 말했죠. “진짜 고통을 보고 싶으면 화요일 밤 제일 감리교회에 가서 고환암 환자들을 봐요. 거기 진짜 고통이 있죠.” 주인공은 의사의 말대로 고환암 환자 모임에 가서 죽음을 코앞에 둔 시한부 삶을 사는 사람들을 마주합니다. 그곳에서 “인생의 종착역을 똑똑히 확인”하자 삶의 일 분 일 초가 소중해졌고, 그 기분을 만끽하기 위해 온갖 질병의 시한부 모임들을 정기적으로 찾아갑니다. 덕분에 다시 숙면을 취하게 되죠. 하지만 2년 후, 모임에서 자신과 똑같은 목적으로 시한부 환자들을 찾아다니는 말라 싱어(극 중 헬레나 본햄 카터)를 마주친 뒤 자신의 거짓이 들통날까 봐 고민하며 또다시 불면에 시달립니다. 그러다 우연히 테일러 더든을 만나고, 그와 함께 파이트 클럽을 결성하고, 자신을 삶의 벼랑 끝으로 몰아가면서 그 ‘살아 있음’의 희열을 아슬아슬하게 만끽해나가는데…….
사실 주인공이 겪은 증상은 단순한 불면증만은 아니었습니다. 그가 “졸다가 깨면 이상한 데 가 있다”고 느꼈던 이유는 자신이 바로 테일러 더든이었기 때문이죠. 테일러 더든은 그가 환상 속에서 만들어낸 자기 분신이었던 겁니다. 주인공이 이런 정신분열증에 시달리고 있었다는 걸 미리 알았다면 수면제를 찾기 전 정신과 상담 예약부터 하지 않았을까요. 물론 상담보다 파이트 클럽에서의 싸움이 테일러에겐 더욱 매력적이었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