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이 아니라 집착일까요?

by 느하

가방이 사라졌다. 남편과 나는 프랑스 운영 항공사를 타고 모스크바에서 출발하여 파리로 도착했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내 수화물은 나오지 않았다. 프랑스 남부까지 돌아보고 올 제법 긴 일정이라는 생각에 나는 꽤 큰 캐리어를 준비했었다. 남편의 캐리어는 도착했지만, 나의 가방은 같은 비행기를 탄 사람들이 모두 공항에서 빠져나갈 때까지도 보이지 않았다. 출발지, 가방의 크기, 색깔, 브랜드까지 긴 양식의 짐을 분실했다는 리포트를 작성했다. 그리고 곧, 불편을 끼쳐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분실된 가방은 보통 3일 이내에 찾을 수 있다는 메일을 한 통 받았다.


여행에 대한 기대감이 당장 내일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걱정으로 바뀌었다. 뜻대로 되지 않을 것이라는 실망감과 막막함 같은 것들로 마음이 뒤틀어졌다. 도착한 호텔은 데스크에서 미소짓는 곰 같은 덩치의 F를 제외하고는 마음에 드는 것이 없는 공간이었다. 사실 사라진 가방 탓이었다. 마음이 좁아진 탓인데 로비가 좁고 엘리베이터가 삐걱거렸다.

“가방이 하나 더 있었으면 엘리베이터를 두 번 탈 뻔했네요.”

F는 귀 끝까지 양쪽 입꼬리를 올려 나를 위로했다. F는 불어를 하지 못하는 우리를 대신해서 항공사와 매일 연락을 했다. 외출을 하고 돌아올 때마다 하루. 이틀. 우리와 마주치는 그의 긴 입꼬리가 축 늘어질수록 나의 마음이 점점 소란해졌다. F에게 전화가 왔다. 리옹에서 짐을 찾아 파리 공항에 짐이 도착했다고 했다. 더 이상 기다리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바로 공항으로 갔지만 항공사 직원의 말에 다시 나는 아연했다. 직원은 짐의 행방을 알지 못했다. 벌써 내일이면 파리를 떠나야 했다.


다시 시내로 돌아오는 택시에서 나는 말이 줄었다. 택시가 개선문을 지나 샹젤리제를 달렸고, 콩코르드 광장을 지나 센강까지 다다랐다. 느직한 오후의 태양이 센강에 빠져 반짝거렸다. 강물 위로 빛이 산발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택시가 달려가는 방향을 따라 강물 속에서 파리의 온갖 피사체들이 꿀렁댔다. 햇살의 노란 그림자와 강물의 푸른 반짝임이 섞여 센강은 그야말로 아무도 가질 수 없는 거대한 하나의 어항 같았다. 그리고 그 어항 한가운데 오르세미술관이 나타났다. 인상주의 작품을 품고 있어 빛의 미술관이라 불린다지만 오후의 빛을 받은 오르세는 스스로 고상한 한 폭의 그림같이 서 있었다. 그리고 이 화폭같은 오르세 미술관 위로 유리창에 비친 내 얼굴이 보였다. 이토록 다시 오고 싶었던 파리에서 온통 짐짝에 사로잡힌 딱한 내 모습이었다.


“정말 짐이 되어 버렸네.” 며칠 사이, 내 가방은 그야말로 수고로운 일이 되어 있었다.

“버리자. 한국으로 보내버리든지. 포기해도 아무렇지 않은 것 같아.”


파리에 도착한 이후로 내내 매달렸던 가방이었다. 가방을 포기하면 정말 포기해야 할 것들을 생각해 봐야 했다. 하지만 여기서 지내는 며칠 동안 내가 가장 힘들었던 건 고대기가 없어서 곱슬머리를 정리하지 못했던 것, 양말이나 속옷을 더 사러 가야 하는 그런 것들뿐이었다. 좀 더 따뜻한 아비뇽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흰색 원피스를 한 벌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필요한 건 다시 사고 가방은 한국에 보내버리면 그만이었다. 어쩌면 나는 가방이 없어서 불편했던 것이 아니라, 가방을 찾아야만 한다는 나의 집착 때문에 불편했던 건지도 모른다.


나는 한때 ‘생산병’ 같은 것에 걸린 적이 있었다. 나의 생활 속에 온갖 루틴을 만들어 내고 오롯이 숨만 쉬는 시간을 견디지 못했다. 책을 의무적으로 읽어대고, 덤뻑 무언가를 새로 배웠다. 무언가 ‘생산적인’ 일을 해야만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어느 순간 몸보다 마음이 더 빠른 속도로 달렸다. 그러다 내가 정한 일을 다 해내지 못하는 순간이 오면 머릿속에서 무거워진 구름이 느껴졌다. 하루는 분주하게 굴다 책상 위의 유리컵을 떨어뜨려 와장창 깨뜨린 일이 있었다. 옆에 쌓여있던 책들도 같이 넘어져 페이지 사이사이에서 유릿가루가 가늘게 반짝거렸다. 운동 시간에 늦어 그마저도 서두르게 치우다 발바닥에 유리 조각이 박혀 다쳤다. 결국 운동을 취소하고 미처 다 치우지 못한 유리 조각 위로 떨어진 핏자국을 보면서 나는 ‘왜 이렇게 바쁜 거지?’하고 혼자 답 없는 질문을 웅얼거렸다.


내 삶에 집중하고 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하고 있던 것들은
스스로 만들어 낸 함정처럼 나오기만 힘든,
그저 집착이었다.


유릿가루가 유영하는 것만 같은 센강을 보고 있자니 괜히 발바닥이 욱신거렸다.

“내일 출발할 때는 엘리베이터를 두 번 타야겠네요. 짐이 꽤 크네요.”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F는 나에게 짐을 건넸다. 받아 드는 내 손이 멋쩍었다. 짐이 유럽 아저씨가 들고 있어도 커 보였다. 드디어 짐이 돌아왔다. 하지만 당장 가방에서 꺼내려고 했던 것들이 마땅히 생각나질 않았다. 나는 아비뇽에서 흰색 원피스를 새로 살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 못내 아쉬웠다. 이 크고 무거운 짐을 챙겨야 할 프랑스 남부 여행은 더욱 수고로워질 것이었다.


어쩌면 우리는 어느 순간 방향을 잃은 여행을 하기도 한다. 그것이 때론 집착이 되기도 하고, 그것이 집착인지 모르고 많은 걸 쏟아붓기도 한다. 해보고 싶은 일들을 적어보고는, 어느 순간 반드시 해야 할 일처럼 가지지 않아도 그만인 일들로 가쁘게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 소중한 것들이라고 착각했던 것들을 짐처럼 가득 짊어지고, 보아야 할 것을 놓친다면 그건 집중이 아니라 집착이다.

오늘도 여전히 바쁘고 치열한 시간에 아등거린다. 그러다 그때처럼 짐의 부피가 느껴지면 나를 천천히 다독거려야 한다. 집착은 내려놓으라고 혼내듯 어깨를 툭툭.

내가
손마디까지 힘주며 꼭 쥐고 있던 것들을
놓아도 된다고 포기하듯
어깨를 툭툭.

내가 가진 짐을 조금씩 덜어내도 된다고 나를 위로하듯 한 번 더 툭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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