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워하면 안 되나요?

by 느하

이름만 들어도 많은 이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는 도시가 있다. 미국 영화가 만들어낸 환상일지라도, 실체를 알 수 없는 열망만 가득했던 20대 대학원생이었던 나에게 뉴욕은 성공과 낭만이 함께 존재하는 도시였다. 나는 대학교에서 개최했던 해외 자유 탐방 프로그램에 공모하여 학부생 2명과 한 팀이 되어 경비를 지원받아 뉴욕으로 가는 기회를 얻었다. 2011년 2월, 뉴욕의 겨울은 쓸데없이 추웠다.


우리의 프로젝트는 몇 군데의 학교를 탐방하고 인터뷰를 하는 과정이었다. 우리가 선정한 뉴저지의 C고등학교는 여러 분야에서 지속해서 상위권을 기록하고 있는 미국 동부의 권위 있는 명문 중등학교였다. 인터뷰를 모두 끝내고 돌아가려는 데 한 학생이 복도에서 한국어로 우리에게 인사를 했다. 남의 나라 언어 속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 정신이 팔려있는 탓에 눈치채지 못했다. 그 학생은 모두가 백인 학생이었던 학교에서 눈에 띄는 동양인이었다. 학생은 수줍게 부모님께서 우리와 저녁을 함께 먹고 싶어 한다고 했다.

학생의 어머니는 다정했다. 오랜 시간 한국인 사회를 벗어난 가족에게 우리는 뜻밖의 손님이었다. 오롯이 한국에서 온 학생이라는 이유로 어머니께서는 우리를 정말 반가워하시며 저녁을 사주셨다. 백인만 사는 본인 동네에 관한 이야기, 여기도 아이비리그를 향한 탐욕과 사교육이 난무한다는 이야기 등의 이런저런 대화 끝에 그녀는 “요즘 한국은 어떠한가요?” 하셨다. 좋은 환경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는 자부심 뒤에도 불안과 고민이 담겨있는 눈빛이었다. 그리고는 “부모님들께서 자랑스러우셨겠어요. 우리 아이도 한국에서 키웠으면 어땠을까 생각이 드네요.” 하셨다. ‘평범한’ 선택 속에서 잘 해내고 있는 또 다른 자녀들의 모습이 그녀를 적잖이 흔들어놓은 것 같았다. 고단했던 도시의 경쟁에서 버티고 있는 그녀의 복잡한 마음이 나에게도 복잡하게 전해졌다. 재력 있는 집안에서 곱게 자라 미국의 명문고등학교를 다니는 딸아이가 옆에서 눈을 끔벅거렸다.


프로젝트의 마지막 날,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인터뷰를 끝내고 나는 중학교 때부터 알고 지낸 친구를 만났다. 친구는 손에 꼽는 특목고를 졸업하고 재수를 선택했지만, 다시 본 수능도 원하는 점수를 얻지 못했다. 어릴 때부터 나보다 모든 것이 앞서 나가는 친구라고 생각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은 누구에게나 온다. 친구는 결국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은행에서 2년 정도 근무를 했다. 그리고 이제 곧 컬럼비아 대학교 대학원을 다니게 될 예정이었다. 마침, 영화 속 장면 같은 컬럼비아 대학교 건물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나온지라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새삼 우리가 다른 세상을 사는 것 같았다.

그런 친구가 레스토랑 직원과 본인의 감기 이야기를 하며 미국인다운 특유의 제스처와 눈빛으로 별거 아닌 농담과 웃음을 주고받았다. 며칠째 나는 영어 인터뷰에 고군분투하며 영어과인 학부생 동생들에게 의지해야 했다. 친구와 직원의 대화에는 끼어들 틈이 없었다. 또다시 꾸깃꾸깃 구겨놓은 종이처럼 복잡한 마음의 덩어리 무게가 느껴졌다.


사나운 눈이 계속 내렸다.
낭만은 짧고 체증은 길었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날, 야경을 찾아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 들렀다. 하지만 1층에서 들은 안내원의 경고처럼 우리는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뉴욕을 발밑에 두고 있었지만, 불빛 하나 전해지지 않는 안개만 가득했다. 참 딱한 날이었다. 안개 속을 휘적휘적하면서 난간 끝에서 보이지 않는 야경을 내려다보았다. 뉴욕의 한가운데에서도 최대한 멀리 손을 뻗어 보지만 무엇이 스쳐 갔는지 사르르 사라질 뿐이었다. 다들 여기서도 이 짙은 안개를 걷어내면서 살아가는 거구나. 장소만 바뀌면 생길 것 같은 ‘비범’도, 볼 수 없는 야경을 상상하며 바라보듯 다 허상이구나. 환상만 가득했던 뉴욕이었지만, 눈을 뚫고 생존에 가까운 귀갓길을 마지막으로 나의 뉴욕은 그렇게 끝이 났다.


“한국에 돌아가지 않을 것 같아.” 친구와 헤어지긴 전 대화였다.

“한국에서 다른 친구들을 보니깐 조급해지더라고. 질투 같은 걸 하게 되더라. 내가 여기서 이루어 낸 것들이 있지만 또 나름 한국에서 무언가를 쌓은 사람들과 경쟁에서 이길 자신도 없어.”

“야, 부러워할 것도 많다. 뉴욕의 베이글을 들고 출근하는 너에게 듣기엔 참 어울리지 않는 말이야. 걱정마. 너는 나의 로망 뉴요커.”


사실, 그때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부러워할 만한 것들이 넘쳐났다. 겨우 ‘다르다’라는 이유만으로도 눈이 부셨다. 닿지 않는 세상이라는 것에 대한 재능의 한계를 느꼈고, 이를 인정하는 것 또한 쉽지 않았다. 불안했다. 나는 해내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 때문에 내가 원하는 것을 누군가 가졌을 때 오는 감정적인 분노를 감당하기 힘들었다. 철없이 나는 운을 만나지 못했다며 누군가의 성공을 운에 섞어 해석하기도 했다. 그런 마음을 가지는 것조차도 못나 보여 누군가에게 쉽게 쏟아내지도 못했다. 경험해 보지 못한 세상이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밀려오는 감정이었을 텐데도 나에게 수고했다는 위로보다는 그런 감정에 대한 비난이 더 쉬웠던 것 같다.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찾지 못한
한 젊은이의 ‘질투’는 그런 것들이었다.


어릴 때는 ‘평범’한 삶은 내 것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며칠 전 고향에 내려갔다가 산더미처럼 모아놓은 학생 때 쓰던 다이어리를 꺼내 보았다. 중학생이었던 내가 써 놓은 메모에는 ‘내가 가보지 않은 곳은 존재하는 곳이 아니며, 내가 보기 전에는 진짜가 아니다.’라고 쓰여있었다.


안타깝지만 가보지 않은 곳은 분명히 존재한다. 보지 못해도 더 굉장한 것들이 있다. 하지만 질투 속에서 헤매는 감정을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 분노를 걷어내고 무엇을 부러워해야 하는지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것이 내가 원하는 것인지, 왜 필요한지 살펴보지 않으면 질투는 두드러기처럼 미움이나 원망 같은 감정으로 번진다. 하지만 부러움의 대상이 명확해지면 때론 도전이 되기도 하고, 때론 용기가 되기도 한다. 새로운 목표가 생기기도 하고, 그런 목표는 더 나아가기 위한 원동력이 된다.

부러운 것은 부러워해도 괜찮다. 가끔 다른 사람 인생과 비교해 봐도 잘못된 것이 아니다. 질투심에 내가 해내지 못한 것을 내가 마치 하지 않은 것처럼 합리화하지 말고, 받아들일 부분과 걷어낼 부분을 찾아내면 된다. 그런 감정들이 한때의 바람에 흔들려 나를 스쳐 가는 버드나무의 잎인지, 아니면 꼭 두 손으로 잡아내 삶 속에 심어야 할 나에게 달려드는 버드나무 씨앗인지 살펴보면 되는 것이다. 심어서 가꿀 씨앗이 아니라면, 오늘은 잠시 부러워하고 내일은 내 일을 살아가면 그만이다. 충분히 해내고 있고, 부러운 감정 때문에 스스로에게 다른 평가는 내리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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