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있는 일이었다. 아무도 그런 일에 관한 경험이 없었다. 남편이 맡은 프로젝트는 결국 위기에 빠졌다.
10년 가까이 부동산 시장은 호황을 누렸다. 덕분에 부동산을 개발하는 회사에 다니는 남편의 일은 거침이 없었다. 회사가 투자하면 큰 이익을 얻었고, 그 힘으로 회사는 계속해서 규모를 키웠다. 투자할 곳은 넘쳐났다. 너나없이 경쟁적으로 부동산 시장에 달려들었다. 부동산 사업의 호황은 끝이 날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1~2년 전부터 불안한 신호가 아슬아슬하게 나타났다. 그리고 곧 한 대형 건설회사가 재정 위기를 맞으며 부도의 전 단계를 밟기 시작했다. 회사에서 그 건설사와 관련된 몇 개의 프로젝트는 대부분 중단되었다. 남편이 맡은 프로젝트는 다행히 그대로 진행이 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오는 많은 예상치 못한 크고 작은 문제들로 남편은 괴로워했다.
“물어볼 곳이 없어. 큰 건설회사가 무너지는 일은 IMF 때나 있던 일이야. 모두가 이번 일로 패닉에 빠졌어. 20년 넘게 벌어지지 않은 일인 거야. 주변에서 조언을 구하려고 해도 투자자도 개발자도 모두 처음 겪는 일이래. 방법을 모르겠는데, 나도 모르겠다고 인정하면 너무 큰일이 돼버리고 말 거야.”
팀장으로 지내고 있는 탓에 맡은 업무를 모르겠다고 할 수 없는 남편의 처지가 안쓰러웠다. 처음 맞이한 위기지만 능숙한 듯 대처해야 했다. 이제는 처음이라서 실수하는 일은 냉정하게도 무능력한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어릴 적 ‘실수하면서 배우는 거야.’, ‘처음인데 틀리는 게 당연하지.’ 하고 들었던 무조건적인 응원과 조언들이 아련하기만 했다.
며칠 전, 내가 자주 가는 동네 카페는 주문받는 방법을 키오스크로 바꾸었다. 평소 즐겨 먹었던 쿠키와 아메리카노 세트 메뉴를 골랐지만, 아무리 살펴봐도 일반 커피를 디카페인으로 바꾸는 버튼은 찾을 수가 없었다. 키오스크 주문도 못 하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았다. 화면 앞에서 방황하는 손가락을 본 아르바이트생이 “처음이세요?” 물었고, 나도 디카페인 버튼의 위치를 되물었다. 아르바이트생은 “제가 그냥 해드릴게요.” 했다. 나는 결국 계산대에서 주문해야만 했다.
‘처음이세요?’가 마치 ‘해본 적 없으세요?’ 같은 다른 질문으로 들린 건 괜히 소심해진 기분의 문제였다. 하지만 ‘그냥’은 내가 일을 하면서 무언가 설명할 시간에 내가 하는 것이 더 빠르다고 느낄 때나 쓰는 단어였다. 단지 디카페인을 키오스크로 처음 주문해 보는 문제였을 뿐인데 바쁜 아르바이트생에게 민폐가 된 것 같아 나는 미안해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처음’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시간이 모든 것을 알려주는 것이 아닌데도, 어느 순간부터는 해보지 않은 것들이 모두 ‘용기’나 ‘도전’ 같은 것들이 되진 않았다. 오히려 때에 따라 아직 그것도 모르는 사람, 그런 경험도 없는 사람, 그렇게 뒤처져 있는 사람이 되어버리기도 했다. 그리고 일 앞에서는 결국 무능력한 사람이 되어버리기도 한다는 걸. 나이를 먹는 건 ‘처음’을 보는 시각이 달라졌다는 뜻인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남편은 벌어지는 많은 이슈를 잘 대처해 내고 있다. 매일 새로운 문제가 터졌다는 전화를 받았고 저녁 늦게까지 방법을 고민했다. 처음 보는 위기 앞에서 무너질 것만 같았던 남편이었지만, 다시 무던히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문득 우리가 만난 ‘처음’은 진짜 ‘처음’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와는 다르게 우리에게는 새로운 것을 무수히 마주했던 지난날이 있다.
피할 수 없는 일이라는 지각,
무사히 해내겠다는 의지,
내가 겪은 일과 비교해 보는 여유,
그런 마음가짐을 알고 있다.
우리에게는
‘처음’을 능히 감당할 힘이 쌓여있다.
무엇이 또 ‘시작’이 될지 모르는 하루가 온다. 우리는 매일 새로운 하루를 겪으며 처음을 맞이할 연습을 하는지 모른다. ‘처음’ 앞에서, 어릴 때나 듣던 실패에 관대한 지지 따위는 이제 없다. 하지만 경계를 내려놓고 바라보자. 우리는 두려움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 앞에서 그것을 ‘별거’ 아닌 것으로 만들어 내는 처음을 대하는 태도를 갖추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