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하는 날이었다. 더운 여름, 너무 화창한 날씨를 바란 건 아니었지만 축축 속없이 비가 내렸다. 짐 하나에 걱정 하나를 같이 쌓아 놓은 이사 초보인 우리와 달리 이사팀은 모든 과정을 유쾌하게 해냈다. 첫 이사라는 낭만보다는 집주인, 새로운 세입자, 부동산, 이삿짐센터 사람들이 아침부터 ‘우리집’에 뒤엉켰다. 그동안 신중히 채워왔던 것들이 거침없고 형편없이 상자 안으로 들어갔다. 잊고 지내던 물건과 돌아보고 싶은 기억들이 모두 한데 섞여 순식간에 그 집을 떠났다. 마지막 빗자루질에 남은 미련마저 가볍게 쓸려나갔다. 모든 흔적은 사라졌지만, 감정이 많은 나는 사랑하는 공간을 떠나는 일이 간단하지 않았다.
오랫동안 함께한 것은
장소든 사람이든 주변의 모든 것들은 기억이 되고 영향을 미친다.
‘처음’은 특별하다. 그곳은 남편과 내가 가족이 되고 처음 선택한 집이었다. 집을 구해야 했던 겨울, 다른 누군가의 삶이 채워진 공간이 우리의 것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은 어려웠다. 그런 가운데 ‘우리집’을 만난 건 행운이었다. 우리가 같이 살아갈 집이 생겼다는 게 신기했다. 햇살이 창의 노란 커튼에 묻어 들어와 하얀 바닥에 노란 그림자가 지는 곳이었다.
집을 계약한 날, 추위를 피해 집 앞 찐빵을 파는 가게를 들렀었다. 좋아하지도 않는 찐빵을 먹으면서 춥고 배고파하는 서로를 안쓰럽게 쳐다봤다. 퍽퍽한 팥을 가득 물고 집이 없어서 서럽다고 했지만, 터진 웃음에 튀어 나갈 것 같은 팥알을 막으려 입을 틀어막고 큭큭거렸다. 그 후로도 그 가게는 오랫동안 우리가 소소하게 추억하는 장소가 되었다. 그 가게가 문을 닫을 거라는 걸 알게 됐을 때, 감정 표현이 많지 않은 남편마저도 가게가 사라지는 일을 아쉬워했다.
그 집에서 우리는 싸워도 반드시 화해해야 한다는 사실, 맛없는 요리도 맛있게 먹는 법, 함께 살아도 각자의 시간이 필요한 이유, 그리고 내가 가장 의지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확신 같은 것들을 배워갔다. 시간은 쉽게 지나온 것 같았지만 하나씩 떼어놓고 보면 굉장한 날들이었다.
정리를 끝내고 나오는 길, 경비아저씨는 멀리서부터 눈이 마주치자 눈물을 글썽거리셨다. 매일 택배가 오는 나는 항상 아저씨에게 죄송하다고 했지만, 아저씨는 내가 택배를 찾아가는 시간을 좋아하셨다. 내가 덩달아 울먹이며 ‘건강하세요.’하고 인사했다. 아저씨는 ‘주차 걱정하지 말고 동네로 놀러 오라.’ 하셨다. 내가 애정을 쏟은 장소에는 좋은 사람들이 함께 있었다.
동네를 떠난다는 것이 갑자기 슬픈 일처럼 느껴져 눈물이 쏟아졌다. 돌아서는데 많은 소중한 것들을 두고 가는 것처럼 슬펐다. 슬픈 일과 그리운 일은 다르다. 나는 가끔 두 감정이 헷갈려 울고 만다. 모든 게 그리운 일이며 슬퍼할 일이 아니란 걸 잘 안다. 곧 익숙해질 거고, 곧 잊기도 하겠지만 ‘처음’을 떠나는 일은 오래도록 슬픈 일처럼 기억될 것만 같았다.
“여기는 평생 우리가 살아갈 날들의 발판이 되어줄 거야. 좋은 곳이었지만 더 좋은 곳으로 가자.”
남편은 천천히 내 어깨를 두드렸다. 그 박자에 맞게 나는 천천히 좋은 날들을 떠나가기로 했다. 우리는 그렇게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했다.
며칠 전, 우연히 우리의 첫 집 근처를 지나게 됐다. 그 동네에서 그저 행인이 되어버렸다는 것이 너무 낯설었다. 이미 서먹서먹해졌다는 게 괜히 안타까웠다. 낯선 거리에서 우리가 살았던 집을 올려보자니 다시 몽글몽글한 기억이 꽉 차올랐다.
‘처음’의 기억은 이리도 설레어서 사람들은 ‘처음’을 이토록 사랑하나보다.
같은 계절이지만 처음 맞는 계절이 온다. 계절마다 새로운 기억을 심고, 그리운 처음을 만들어가며 살고 있다. 그리고 그런 좋은 기억을 발판 삼아 우리는 더 좋은 곳으로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