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난 봄

by 느하

2020년, 낯선 봄이었다. 알 수 없는 전염병의 공포 속에서 누군가는 책임감으로, 누군가는 두려움으로 3월을 시작해야 했다. 거리는 조용했지만, 세상은 끊임없이 떠들썩했다. 불안은 번져갔고 불안은 물리적인 거리만큼 정서적인 관계마저 멀어지게 했다. 우리는 차츰 모든 사회에서 고립되었지만, 그런 날들이 오래 잠든 기억 속의 관계를 다시 떠올리게 해줄 줄은 몰랐다.


선생님. 안녕하셨어요. 너무 오랜만에 연락드렸죠. 동생이랑 엄마랑 가끔 선생님 보고 싶다고 얘기하곤 했었는데 그동안 연락은 못 드렸어요. 초등학생 때 썼던 일기장을 읽다가 선생님께서 하나하나 써주신 답글을 보고 마음이 울컥하더라고요. 선생님께서 주신 큰사랑으로 아직도 살아가고 있어요. 요즘 코로나 때문에 힘드시죠. 얼른 예쁜 봄날이 와서 선생님께 행복한 2020이 얼른 다가오길 기도할게요.


S를 만난 건 2008년이었다. S는 겨우 초등학생 2학년이었고, 나도 겨우 20대 신규 선생님이었다. 경력이 없는 2학기 발령자였고 아이들보다 학교를 더 몰랐다. 자연스럽게 인사했다고 생각했지만, 둘 곳 없는 눈동자가 아무렇게 돌아다녔다. S가 갑자기 가까이 다가와 귓속말을 했다. ‘선생님, 제가 부반장이에요. 필요하신 건 저한테 물어보셔도 괜찮아요.’ 과연 9살의 용기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귓가가 간지러운 만큼 마음이 간질거렸다. 하지만 곧 다리를 절면서 들어가는 S의 뒷모습에 내 마음이 같이 절뚝거렸다.

S는 어릴 적 큰 교통사고를 겪은 아이였다. 이후 양쪽 다리가 자라는 속도가 조금 달라 성장에 따라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S는 학급에서 키가 가장 큰 여학생이었다. 키 번호에 민감한 아이들에게 큰 키는 항상 부러운 일이었지만 빨리 자라는 키는 S에게만큼은 걱정거리였다. 키가 클수록 S는 조금씩 불편하게 걸었다. 철없는 아이들이 뱉는 어린 말들이 혹시 S에게 상처가 될까 매일 날을 세우고 가까이 지켜봐야 했다. S가 짓궂은 말을 들은 날은 내가 잘못한 것 같아 마음이 졸아들었다.

S에게 학교에서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생기면 망설이지 않고 S의 어머니와 통화를 했다. S는 재활치료를 적극적으로 받았고, 어머니도 아이의 정서적 치료 프로그램에 항상 열성껏 참여하셨다. 학생의 어머니에게는 한때의 좌절과 고통을 이겨낸 삶의 단단한 근력이 느껴졌다. 어린 나이에 장애등급을 받은 S가 주눅이 들지 않고 밝게 자라길 바라는 어머니의 간절함을 S도 알고 있는 것만 같았다. S에게서 사고의 그늘을 느끼긴 어려웠다. 누구보다 환하게 웃었고, 누구보다 바르게 행동했다. 오히려 하루를 생존처럼 고군분투하는 담임 선생님에겐 S는 과분한 학생이었다.


내가 새 학교로 발령이 나던 해, S는 다리 수술을 받았다. 기존 학교로 마지막 출근을 하던 날 휠체어를 탄 S가 어머니와 함께 복도 끝에서부터 천천히 나에게 다가왔다. 우리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어떤 말로 이별을 해야 할지 결정하지 못한 많은 문장이 목구멍 주변에서만 되풀이되며 주저거렸다. 위로해야 맞는 건지, 어설픈 교과서 같은 응원이 맞는 건지 하던 분주한 생각들은 소용이 없었다.

“선생님께 인사하려고요. 다른 학교로 가신다면서요. 저 이번에 다리 수술받았어요.”

곱게 덮은 무른 담요 뒤로 보이는 큰 상처는 아이가 감당하기엔 전혀 곱지 않았다. 굵은 철심이 다리 전체에 고루 박혀 있었다. 철심이 박힌 가장자리마다 붉은 흔적이 선명했다. ‘많이 아팠겠다....’하는 나에게 어머니는 담담하고 강한 미소로 나를 향해 웃어 주셨지만, 어머니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나는 나약하게 무너졌다. ‘괜찮아요.’하는 S의 목소리가 들렸다. 익숙한 일이라고 괜찮은 일이 되는 건 아니다, 굳센 의지로 버티는 아이에게 보여주면 안 됐을 눈물이 마음대로 쏟아졌다. S의 눈을 볼 수가 없었다. 교실로 돌아와 S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한 번, 오히려 상처를 준 것 같아서 또 한 번 나를 원망하며 정신없이 울었다.

S의 문자를 한 글자, 한 글자 여러 번 다시 읽었다. 단단한 두 모녀를 마주하고 서서 복도에서 울고 있는 물렁물렁한 내가 보였다. 부족했고 서툴렀던 신규 담임이었던 나에게 와준 S는 그때도 지금도 여전히 나에겐 봄이구나. 귓가가 다시 간질거렸다.


잘 지내지? 잊을 리가 없지. 선생님도 갑자기 울컥하네. 선생님에게는 아직도 특별한 학생인걸. 첫해 발령받았을 때라 너무 낯설고 모자랐을 때잖아. 아직도 첫 출근 날, 귓속말로 선생님 도와준걸, 그걸 어떻게 잊겠어. 지금 S가 우리 반이면 훨씬 더 많은 걸 해줄 수 있을 텐데. 벌써 대학생이지? 아우 얼마나 이쁘게 컸을까. 그때처럼 지금도 따뜻하고 용기 있는 사람으로 컸을 거야. 어머님도 잘 지내시고 동생도 잘 지내고 있는 거지? 꼭 안부 전해줘. 연락해 줘서 고마워. 진짜 봄날은 올 테니 항상 힘내고 돌아오는 일상을 더 감사하게 여기면서 살자. 사랑해.


시작이라는 것이
반드시 설레는 일은 아니다.

예상할 수 없는 일들로 염려되고, 때론 예상할 수 있는 일이기에 마음이 여위어 가기도 한다. 옳고 그름을 알 수 없고, 옳은 일이라 알고 있어도 확신이 없는 때이다. 그래서 우린 틀린 대답을 내놓고 실수한다. 하지만 처음이기에 더 애를 쓰고, 잘 모르기에 가진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쏟아 낸다.


학교에서의 첫 순간을 떠올리라 하면 나는 항상 S와 학생의 어머니를 생각한다. 가르칠 수 있는 것보다 내가 많은 걸 배웠던 첫해. 처음이라서 잊기가 어렵고, 소중해서 비교하기도 어렵다. 내가 잘 해내는 것이 없을 때 그들을 만난 것이 미안한 일이라 여긴 때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그때, 더 애를 쓰고 더 많은 것을 쏟았다. 처음이어서 할 수 있었던 말들과 행동들로 나는 온 마음을 다했다. 그리고 그것을 다 알고 있었다는 듯이 숙녀가 된 S는 단절의 시간 동안 궁핍해진 나를 구원해 내듯 봄날의 기억을 보내왔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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